실크로드는 서역(西域)의 각국들과 상업뿐 아니라 민간인과 구법승, 사신의 잦은 왕래로 인해 동ㆍ서 문화 교류를 촉진했다. 교역품 중 찻잔과 다호(茶壺)같은 종류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였으며, 차를 마시는 풍속 또한 전파되어 ‘차의 길’을 따라 퍼졌다.
중국의 차는 파ㆍ촉 지역에서 이미 시작되어 한대(漢代) 이후 동방과 서북으로 전파(傳播)되었다. 하지만 차가 자라지 않았던 북방에서는 아직 음다(飮茶)가 습관화 되지 않아 낙양에 사는 북조 관원들은 차가 우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낙양에 이주한 남조 사람들은 음다 풍속을 유지하면서 북조 관원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차(茶)를 다른 물건들과 물물 교환하는 형태로 장사를 했다. 서방 상인들도 북쪽 변강에서 교역을 하였던 관계로 중국 상인과 터키 상인은 자연스럽게 차로 물물 교환을 하면서 수출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서아시아와 아랍 국가들도 지속적으로 차를 수입하게 된다. 수ㆍ당 이후 서쪽 변경과도 끊임없이 교역이 있었고 더욱 당대부터 대량으로 말(馬)과 차(茶)를 바꾸었으며 이것을 다마호시(茶馬互市)라 한다. 대규모 다마호시는 차가 서북민족만이 아니라 서아시아 까지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남방의 차는 북조를 통하여 사막과 초원을 가로 질러 서아시아와 유럽까지 외부로 전파됐다.
차의 전파는 실크로드를 따라 더욱 확산되어 나갔으며 북방의 소수 민족들이 중계자 역할을 했다. 이들은 유차(乳茶)와 밀차(蜜茶)로 우정을 표시하고 경의를 표하였다. 이러한 풍습은 점차적으로 근접한 나라에 영향을 주었다.
이슬람교를 믿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손님이 오면 차로서 예의를 표했다. 즉 단결과 화목을 돕는데 차를 이용하는 풍습을 만든 것이다. 이들은 우유를 먼저 끓인 후 아주 진한 차와 소금을 넣어 저어서 마신다.
서아시아와 북아시아, 시베리아 산림지구는 대부분 우유를 마셨지만 차가 수입된 후에 우유에 차를 넣어 마셨다. 초원 지역에서 사는 몽골 인들은 조의(朝儀) 때 차를 주며, 다른 때에는 곡식과 우유로 만든 유제품과 차죽(茶粥)과 유차(乳茶)를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송(宋)대에는 아라비아, 이탈리아, 일본, 인도 등 각국과 무역을 하고 외국 상인들이 항구를 자주 왕래하여 상품화된 찻잎을 직접 수입할 뿐 아니라 점차적으로 차를 재배하는 기술도 배워갔다. 찻잎을 음식과 결합하여 필수 식품이 되는 지역도 있었다.
한편 인도인들은 본래 오래전부터 차를 마시는 습속이 있었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차를 유입하여 무역에 관여하면서 점차적으로 세계의 차 생산지가 되었다. 동남아의 유력한 자연 조건과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차를 대량 생산하였으며, 유럽지역으로 운송되었다. 이것은 직접 중국에서 차 무역을 하는 것 보다 경제적면에서 이익이 되었다.
17세기에 이르러서는 남아시아 지역이 서방으로 나가는 중계지 역할을 하는 하나의 ‘차 문화권’을 형성했다. 이처럼 일찍이 중국 서부,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국가 및 북방의 몽골, 러시아 등에 차가 유입됐지만 한국과 일본처럼 흥성하지 않았다.
■이창숙(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