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을 작년에 만나 뵙고 새해를 맞이해서 올해 이렇게 또 만나 뵙게 됐습니다. 우리가 사람 사람이 있기 때문에 질서가 있고, 또는 작년이라는 말을 해놨고, 올해라는 말을 해놨습니다. 만약에 그런 말이 없다면 질서가 문란하겠죠.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질서와 교양, 교육, 충성, 효도, 의례의식이나 모든 천(天)ㆍ지(地)ㆍ인(人) 삼재(三才)의 그 질서적인 자연의 법칙, 이러한 문제들을 새삼스럽게 말하기 이전에 여러분이 더욱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화엄 세계를 저렇게 (뒤편의 목탱화를 가리키시며) 해놓은 것은 천·지·인 그 삼재의 상세계ㆍ중세계ㆍ하세계를, 세상 살아나가는 도리를 그대로 묘사한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주인공이라는 그 자체. 영화를 봐도 주인공 죽는 법은 없죠. 그거 실감하셨습니까? 이렇게 구르든 저렇게 구르든 주인공 죽는 법은 없어. 죽었어도 또 되살아나. 그게 무슨 원리인가? 주인공이 없다면 마땅히 이 세상이 돌아가질 않아. 또 살림살이에서도 자기의 마음이 없으면 육체가 돌아가질 않아. 주인공 죽는 법은 없어. 아무리 똑똑하지 않고 제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뛰어나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결국 주인공이 살지 그 외의 사람들은 다 죽어, 영화를 봐도. 여러분이 아마 실감하시리라고 믿어요.
그와 같이 여러분은 여러분의 각자 주인공을 진실히 믿습니까? (잠시 말씀을 멈추시고) 믿습니까?
대중: 예.
스님: 그 믿는 마음은 ‘주인공, 이런 걸 해주십시오, 저런 걸 해주십시오.’ 이런 게 아닙니다. 진짜로 믿는 마음에서 일차적으로는, 한 말을 되한다고 그러시지 말고 잘 들으세요. 일차적으로 내가 믿는다, 진짜로 믿는다면 죽고 사는 것을 거기에다가 다 놔버릴 수 있는 겁니다. 그럼 악과 선 일체 모든 돌아가는 것을 다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놓을 수가 있다면, 바로 놓고 난 뒤에, 양면을 돌아가면서 다 놓을 때에 비로소 무엇이 거기서 생산이 되느냐? 생각 내는 마음입니다. 믿고 놓아서 생산할 수 있는 마음! 이 마음이라는 게 천 리를 갈 수도 있고, 한 찰나에 저승에 갈 수도 있고, 미래에 갈 수도 있고, 과거로 갈 수도 있는 거거든. 여기 앉아서 집도 갈 수 있고, 부산도 갈 수 있고 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우주와 더불어 이 세상에 광대무변하게 있다는 거를 여러분이 잘 아시기 때문에 그 근본이, 바로 우주의 근본이 마음입니다.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그 근본을 알 수가 없어. 또 이 세상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근본을 알 수가 없어. 근본입니다! 내놓을 수도 없고 쥘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그 근본자리에서 광대무변하게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아는 겁니다.
그래서 아는 까닭에 여러분은 “아이구, 이렇게 놓고 가는데도 안됩니다.” 그러거든요. 그래서 항상 말하기를 ‘안되는 것도 놔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안되는 것도 놓는다면 우리 어떻게 살고요?” 이렇게 말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마는 진짜로 믿는다면 다 거기에 진짜로 믿고 놓고, 마음을 잘 낸다면 일이 잘 돌아가게 돼 있어요. 마음을 잘 내! 꿈을 꾸고도 자기가 언짢게 생각을 하고 ‘아이구, 꿈 잘못 꿨구나. 이거 언짢은 꿈이로구나.’ 하고 생각을 한다면 반드시 언짢게 재앙이 옵니다.
또 조상에게도 너무 집착을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조상들에게도 그 자리가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여러 형제가 있다면 형에게도 자식이 있고 나한테도 자식이 있고 동생한테도 자식이 있겠죠. 형에게 자식이 있으면 형의 제사는 그 자식에게 밀어 던져라 이겁니다. 그래서 그 자식이 마음으로 ‘내가 부모님이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이 세상에 났나. 참 감사하구나.’ 하고서 그 날을 맞이해서 심중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제삿날입니다. 그런데 이거는 덮어놓고 착을 붙일 거나 안 붙일 거나 다 붙여 돌아가서는 집안의 가환을 불러일으킨단 말입니다.
여러분은 생각 내는 걸 그냥 우습게 보고 하루 살면서 그냥 그냥 쉽게 생각 낸다고 그러지마는 보이지 않는 그 자체에서는, 생각 한 번 내는 데 보이지 않는 물질 없는 물체들이 얼마나 아우성을 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그 도리를, 그렇게 마음 한 번 내는 게 귀중하다는 거를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내는 그 생산처가 천차만별로 돌아가면서 만약에 있다면, 이것이 돌아가게 해줄 수 있는 그 능력의 심봉은 그냥 거기에 심봉으로 있지 않습니까? 그건 움죽거리지 않죠, 비교한다면. 생산처에 자동적으로 번호 없는 번호가 매겨져 있다면 넝마전은 넝마, 무쇠전은 무쇠,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전부 부처님의 말씀 그대로 그냥 줄줄이 줄줄이 붙어서 돌아갑니다. 그러면 그 심봉에다가 생각하는 걸 좋게 생각해서 놓는다면 자동적으로 자연의 법칙으로 인해서 스스로 돌아가서 나한테 생산이 돼서 나옵니다. 그렇게 자세히 가르쳐드려도 모르신다면 이건 큰일이죠. 자기가 자기를 믿고 생산을 해내는 데 마음을 잘 써야 합니다.
마음을 잘 쓰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여러분이 조금만 남이 억울한 소리를 해도 억울하다고 생각을 하고, 내 탓으로 돌리질 않고 남을 원망하게 되고, 착을 두게 되고, 욕심을 두게 되는 건 내가 생각 한번 잘못한 까닭입니다. 내 앞에 닥치는 거 닥치는 것대로 갖게 되면 갖게 되는 거고, 가진 것 내버릴 필요도 없고 끌어당길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 보고 욕심 부리지 말랬다고 재산을 다 버리라는 게 아닙니다. 마음의 착을 두지 말라는 얘깁니다.
여러분은 관리인이에요. 잘 쓸 수 있는 관리인입니다. 마음을 잘 쓰느냐, 못 쓰느냐에 달려 있어요. 또 생각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생각을 잘하면 말도 잘하게 되고 행도 잘하게 되지마는, 생각을 잘못하게 되면 행과 말이 잘못 나갑니다. 우리가 번연히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는 건 알면서 받고, 몰라서 지키지 못하고 행을 저지르는 것은 모르고 받습니다. 그래서 모르고 받는 일은 여러분이 이렇게 말하죠. ‘나는 억울하다. 나쁜 일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업보가 많아서 이러느냐?’ 이런 말들을 하십니다. 어저께 없는 오늘은 없죠. 그럼으로써 내가 하지 않은 게 어디 내 앞에 붙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라는 생산처! 이것을 어떻게 여러분 앞에 말로 해줄 수가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렇게 하면 만 가지 생산을 할 수 있다, 닥치는 대로 생각을 잘해서 놓는다면 스스로 아주 훌륭하게 만 가지 생산을 한다는 뜻입니다. 이 법칙에 의해서, 자연법에 의해서 아주 출중합니다. 깨닫지 못하면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한다’ 하는 속담의 말이 있듯이, 여러분이 깨달으면 독 안도 없고, 나올 것도 없고, 들어갈 것도 없다는 얘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어느 날, 어느 날 할 것 없이 매일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삼천 년 전에 그렇게 했고 단군 할아버지도 그렇게 했고 그때그때 시대에 따라서 가르쳤던 겁니다.
오늘날에 우리가 주인공을 타파 못한다면, 자기 내공을 타파 못한다면 과거심(過去心)·현재심(現在心)·미래심(未來心)의 삼세심(三世心) 내공을 타파 못합니다. 삼세심의 내공을 타파 못한다면 사공법을 몰라. 사공법을 모른다면 원심력을 기르지 못해서 원통자활을 못해. 이것이 바로 자기한테 부(父)가 있고, 자기한테 스승이 있고, 자기한테 부처가 있고, 자기한테 법신(法身)이 있는 것을, 그것을 모르고 바깥에서 콩싹이 바깥에서 콩씨 찾듯이 그렇게 찾는다면 그거는 여러분이 백 년을 가도 안되고 천 년을 가도 안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진짜로 믿는다면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는 얘깁니다. 왜 걱정하게 만드느냐는 얘깁니다. 자식이 죽든지 살든지 가든지 오든지 우리는 또 교육을 받음으로써 좋고 그른 거는 다 알고 있습니다, 어린애라도. 그렇기 때문에 뿌리에다가 습기와 모든 에너지를 넣어줄 수 있는 그런 어머니, 아버지가 되시라는 얘깁니다. 그러면 주인공은 다 평등해.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거기에다 놔라. 둘이 아니니까 주인공에 전해진다면 바로 자기가 아들이 되기 때문에 아들이 생각을 내면 아비가 돼버리고, 둘이 아닌데 그게 어디로 가겠습니까? 아비가 생각했던 마음 그대로 자식이 전달받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무질서하게 굴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이 세상 살아나오면서 경험을 쌓은 것을 토대로 해서 여러분한테 “너희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모르는구나.” 할 때 에너지로 인해서 그냥 넣어주란 얘깁니다. 주인공에 맡겨놔, 잘 끌고 다니라고. 그런다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밀어서 그렇게 가게끔 한다면 여러분한테 걱정이 뭐 있겠습니까? 잘되고자 생각을 짓는다든지 ‘이렇게 하면 잘된다더라.’ 하는 것도 거기다 놓으세요.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습니까. 일찍 가나 늦게 가나 마찬가지야, 죽고 사는 거는. 한울에 매여 있어.
각본대로 이렇게, 깨치지 못한 중생들은 여기에 (뒤편의 목탱화를 가리키시며) 중세계도 해놨고 하세계도 해놨지만, 각본대로 여러분이 한 것만치 받아서 지금 나온 거거든. 그러니 그 한 것만치 악과 선 속에서 그냥 허덕이지 말고 그 속에서 활짝 벗어나란 얘깁니다.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모든 것을 믿고 놓고 모르고 아는 거를 다 감사하게 놓고 ‘거기서밖엔 할 수 없지.’ 하고 놓고, 그러고 난 뒤 생각을 잘하시란 얘깁니다. ‘언짢다’라고 마음에서 나오는 그 생각을 절대로 언짢다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언짢을 게 없습니다. 어저께도 오늘이고, 오늘도 내일이고, 내일도 오늘입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자연법칙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만 가지 생산처가 있다면 여러분이 만 가지 생각을 하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만 가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생산이 돌아갑니다. 이걸 이해해서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저께도 과거지마는 과거로 한번 돌아가서 볼 때에, 체가 있는 몸뚱이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마음입니다! 또 미래로 돌아간다 하는 것도 역시 마음입니다. 우리가 듣고 본다 하는 것은 초보적인 문제인데도 그거를 몰라서 과거를 묻고 현재를 묻습니다, 여러분이. 또 미래를 묻습니다. 예전에 여기에다 법당을 지을 때에 그런 말을 했죠. 어느 스님께서 “여기에다가 지으면 궁색함을 면할 수 없어서 여기가 좋질 않은데….” 했습니다. 그러나 전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우리들은 좋고 좋지 않고 따지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거 아닙니까? 전 잘되는 거 바라지도 않고 못되는 거 바라지도 않습니다. 만약에 부처님이 계시다면 이 자리가 좋을 거고, 부처님이 안 계시다면 안 좋겠죠, 뭐.” (대중 웃음) 그렇게 얘기했죠.
그러고 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충 아는 사람은 알 것입니다, 그때 얘기를 했기 때문에. “여기가 고속도로가 나고, 수원이 앞으로는 큰 도시가 되고, 또 여기도 집들이 많이 들어서고 좋게 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을 누가 들으면 아는 소리도 잘한다고 하겠죠. 그래서 마음대로 말 못하는 것은 모르는 분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나쁘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만 배우면 건방져지고 ‘내가 보고 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데, 듣고 있는데….’ 하고 말을 한다 이겁니다. 그렇게 보고 듣는 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진짜 자기가 작용을 할 수 있는, 자기가 나빠진 부분을 좋게 할 수 있고 좋아진 걸 더 좋게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필요한 거지, 보고 듣고 그러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왜 그렇게 말을 하느냐 하면, 만약에 그랬다면 미래를 본 거 아닙니까? 미래가 아닐까요? 과거로 한번 돌아가서, 50년 전 과거로 돌아가서 이 안양을 보십시오. 그때 50년 전에 있었다 생각하고 한번 미래로 돌아서 지금을 보십시오.
미래를 가지고 얘기할 때 여러분 앞에 그러한 말을 하면 “그럼 왜 부처님 법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느냐?” 하겠죠. 자유권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은 깨달아서 자유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산을 얕게도 해놓고 높게도 해놓을 수 있으니까 높다는 말을 할 수 없고 얕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가 어떻고, 과거가 어떻고라고 말 안 합니다. 여러분, 그 의미를 잘 생각하셔야 됩니다. 자유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높게도 해놓을 수 있고 얕게도 해놓을 수 있는데, ‘저기는 몇 해 전에 이렇게 왔고 저기는 몇 해 있으면 높고’라고 얘기하겠습니까?
그러니 조금도 의심 마시고 믿고 자기 주인공 자체의 근본자리에다 맡기세요. 우주의 근본도 인간의 마음의 근본이요, 태양의 근본도 마음의 근본이요, 세상의 근본도 마음의 근본이라. 이 마음을 타파할 때에 삼세의 공한 마음이 탁 터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과거도 알고 미래도 알고, 미래도 보고 과거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놓고 가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때 가서 아! 자연적으로 스스로서 마음의 능력이, 샘물이 나오게끔 돼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아니라면 어떻게 여러분이, 지금 여러분이 공부를 해서 어느 회사에 들어가는데 공부하려는 노력을 안 했다면 어떻게 회사에 가셨겠습니까? 노력이 있지 않고는 내 내공의 타파를 못하며, 삼심 내공의 타파를 못합니다. 이 세상 사공법을 모릅니다. 오심력을 기르지 못합니다. 즉 원심력 말입니다. 원통력을 스스로 활용하지 못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린 뛰어넘을 수가 없어.
여러분이 생각해서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이건 취하면 안 된다’ 하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고등동물인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의례의식이나 모든 절차 계율 같은 거는 이미 아시리라고 믿고 넘어가자 이겁니다. 그런 거는 으레 할 줄 알아야지 우리가 세상에 있는 거는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걸 배울 수 있는 여건도 내가 있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 법과 인간의 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짐승들을 보세요. 천차만별의 짐승들을 말입니다.
그러면 옛날 얘기 삼아, 지금 얘기도 됩니다마는 얘기 한마디 할까요? 어느 큰 황새가 날다가 깃을 다쳐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깃을 질질 끌면서 돌 틈으로 들어갔답니다. 돌 틈으로 들어가서 한쪽 구석으로 자꾸 들어가니까, 큰 구렁이가 있다가 하는 소리가 “당신, 이렇게 만날 줄 몰랐소.” 하는 겁니다. “아니, 누구십니까?” 하니까 사실 얘길 하는 겁니다. “나는 당신 남편이었고, 당신은 내 아내였는데 내가 불미스럽게 돈을 훔쳐다 주었고 당신은 그 돈을 썼기 때문에 당신도 사람의 탈을 잃고 이렇게 황새가 됐으니 참 미안하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사람으로 화현을 하려면 소로 태어나야 사람이 될 수 있소.” 하면서 구렁이가 얘길 했습니다. 당신은 사람으로 지금이라도 태어날 수 있지만 나는 남의 것을 훔쳐오고 남을 죽였으니 아픔을 주고 모질게 했던 걸 책임지고 다 해결해야만이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데 나는 며칠 안 남았다고 하는 겁니다, 소로 갈 날이.
그러면서 얘기했습니다. 지금 저 아래 돌 틈 굴에 박쥐란 놈들이 우글우글합니다. 박쥐란 놈들이 우글우글한데 거기 박쥐 소굴로 들어갔었다 이겁니다. 그런데 그때는 박쥐 소굴인지 모르고, 그 영혼은 박쥐의 암컷, 수컷 사랑하는 데로 들어갔단 말입니다. 그러니 박쥐가 될 수밖에. 수만 마리가 우글우글 있으면서 어미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또 새끼를 낳고 말입니다.
그런 연후에 죽은 뒤에 다시 그 돌 틈 속에 큰 구렁이 부부가 사랑하는 데로 그만 들어갔으니 자기가 구렁이가 됐다 이겁니다. 그래서 구렁이 어머니가 자기더러 하는 소리가 “나는 어차피 이렇게 돼서 이 굴 안에서 살고 있지만 너를 배고서부터 그 뜻을 알았으니 너는 앞으로 자라면서 조금도 남의 생명을 빼앗지 말고 풀뿌리로써 연명하고, 습기로써 연명해라.” 하고 가르쳐 주면서 또 말하기를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고 오백 년을 여기서 견뎌야 소로 환토할 수 있느니라. 소로 환토를 해가지고도 남의 것 훔친 거 일하면서 다 갚아야 된다. 그래야 인간 모습으로 다시 나올 수 있다.”라는 얘기를 그 구렁이 어머니가 구렁이 자식한테 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그때까지 그렇게 지키고 있노라고 얘기를 황새에게 했어요. 황새가 그 소릴 주욱 듣더니만 그 소릴 듣는 순간에 생각이 난 겁니다, 자기 과거 생각이. 그래 “나도 같이 먹었으니 같이 갑시다.” 하는 거야. 그래서 둘이는 참, 그 외양간으로 가서 영령은 허물을 벗고 외양간의 부부 속으로 즉, 말하자면 소 암컷 수컷이 서로 사랑하는 거기에 그만 들어갔어요. 그래서 형제로 태어났단 말이야, 둘이. 그러고는 죽는지 사는지도 모를 만큼 열심히 소로서의 일을 하면서 닦아 나갔던 거야. 그 소는 알기 때문에 그렇게 닦고 자기 어머니의 말씀을 진짜로 믿고 닦아서 다음 생엔 사람이 돼서 부처님의 제자로서 착하게 세상을 살면서 벗어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렇듯이 거듭거듭 거쳐 오면서 우리 인간 되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생각을 해보십시오. 인간에게 접근 안 하면 태어날 수가 없어요. 금방 뭐가 되고 금방 뭐가 되는 게 아닙니다. 박쥐였을 땐 현재고 구렁이였을 때는 미래죠? 그런데 구렁이가 또 과거가 되고 소가 현재가 되고요. 또 소가 과거가 되고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그게 현실이겠죠. 한 찰나입니다. 몸을 바꿔 태어나게 하는 거는 한 찰나야. 그러니 이 도리를 모른다면 몹시 어렵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천만 가지 나오는 모든 것이 전자의 과거로부터 미래로 오는 것이니 생각나는 모든 것을 다 놓고 생각을 좋게 해라 이겁니다. 만 가지 생각을 좋게 하면 만 가지로 좋게 생산돼 나온다. 이것이 옛날 얘기만이 아니라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