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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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본성 가리는 ‘五蓋’
所言棄蓋者 謂五蓋也 一棄貪欲蓋 前說外五塵中生欲 今約內意根中生欲 謂行者端坐修禪 心生欲覺 念念相續 覆蓋善心 令不生長 覺已應棄
제3장 기개(棄蓋)에서는 오개(五蓋)를 버려야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개’는 혼탁한 번뇌가 우리의 청정한 본성을 가려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개’는 번뇌의 또 다른 명칭인 것이다.
오개는 탐욕개(貪慾蓋),진에개(瞋 蓋),수면개(睡眠蓋), 도회개(掉悔蓋), 의개(疑蓋)등을 말한다. 이 다섯 가지 번뇌법 때문에 우리의 자성청정심이 가려져 밝은 지혜가 환하게 드러나지 못한다.
앞에서 오욕을 꾸짖었던 것은 밖의 오진경계에 대한 욕구가 내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위한 것이었고, 지금 여기에서 오개를 버리라고 하는 것은 내적으로 외부 오진경계에 대한 욕구의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는 뜻이다. 이렇게 할 경우 우리의 의식은 청정해지고, 의식이 청정해지면 올바르게 도를 감당하고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오개 가운데 첫 번째 ‘탐욕개’는 앞에서 말했던 외부의 오진을 대상으로 탐욕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오근(內五根)이 밖으로 외오진(外五塵)과 마주할 때 그에 대해서 일으키는 탐욕과 집착이다.
지금은 내적으로 의근(意根) 가운데서 밖으로 오진경계에 대해서 일으키는 탐욕의 편에서 하는 말인데, 목전의 오진은 우리 의식 속에 그림자로 나타나 그 실체없는 그림자의 과거모습을 추억할 뿐만 아니라,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까지도 미리 분별한다.
비록 내오근이 외부의 오진을 부여잡고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동일하지 않지만, 내적으로 마음속으로 의식에서 망상이 무더기로 일어나 이로 인해 목전의 오진경계를 인식하고 분별하는데, 이것이 일종의 탐욕개이다. 그 때문에 마음속에서 일으키는 탐욕이라고 말한다.
수행자가 외적으로는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단정히 앉아서, 다시 말해 구업과 의업을 고요하게 잠재운 상태에서 외적으로 위의는 갖추었다 해도 마음속에 망상의 의업이 어지럽게 일어나 사랑스러운 음성을 들으면 탐욕심을 일으키거나, 혹은 과거 보았던 미모가 단정한 사람을 추억하면서 그를 잊지 못하는 등의 사량분별이 염념이 상속하면서 단절하지 않는 것을 비유하면 마치 폭포수와 같아서 전념과 후념이 한 찰라도 휴식하지 않는다.
이 같이 외적인 위의는 갖추었다 해도 내적으로 의식을 조복받지 못하면 우리가 본래 갖추고 있는 착한 마음이 망상 속에 침몰하여 지혜의 싹을 틔우고 자라나게 할 수가 없다. 이것은 실로 수행자에게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장애가 된다. 때문에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알았다면 그 즉시 탐욕을 제멸해야만 한다 .
옛사람들은 이를 두고 말하기를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망념이 본래 없음을 깨닫는 것이 더딜까봐 염려하라”고 하였는데, 이는 반드시 일찍 깨닫고 급히 버려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所以者何 如術婆伽欲心內發 尙能燒身 況復心生欲火 而不燒諸善法 貪欲之人 去道甚遠 所以者何 欲爲種種惱亂住處 若心著欲 無由近道
탐욕의 망상은 해로움이 지극히 광대하다. 예를 들면 인도에는 술바가라는 음란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내적으로 음욕심이 발동했을 뿐인데도 그 불길로 인해 자기의 몸이 타서 무너졌다고 한다. 하물며 마음속에서 스스로 외부오진에 대한 탐욕의 불길을 일으킨다면 모든 선법을 태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땅히 알아야할 것은 탐욕스러운 사람은 도와의 거리가 매우 멀다는 점이다.
대체로 탐욕은 갖가지 시끄러운 번뇌가 머무는 처소이고, 보리의 도는 갖가지 청정하고 안온한 마음이 안주하는 처소이다. 이처럼 한쪽은 더럽고 한쪽은 청정하며, 한쪽은 생사로 유전하고 한쪽은 열반의 길로 향하면서 피차의 간격이 천지차이로 달라 성인과 범부의 간격이 아득히 멀어지게 된다. 그 때문에 탐욕을 일으킨 사람은 도와의 거리가 매우 멀다고 말하였다.
만일 마음이 탐욕심으로 애착을 일으키게 된다면 올바른 도로 진수할 길이 없다. 그 때문에 게송에서는 말하기를

탐욕은 사나운 물과 같아
반야 나루터를 침몰 시킨다네
보리도를 수행하고자 한다면
탐욕을 버리고 진심을 보호하게나

라고 하였는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탐욕의 번뇌가 올바른 도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탐욕심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如除蓋偈說
入道慙愧人 持鉢福衆生 云何縱塵欲 沈沒於五情 已捨五欲樂 棄之而不顧 如何還欲得 如愚自食吐 諸欲求時苦 得時多怖畏 失時懷熱惱 一切無樂處 諸欲患如是 以何能捨之 得深禪定樂 卽不爲所欺
‘입도참괴인(入道慙愧人)’이라고 한 이 구절은 도를 닦는 수행인이라면 반드시 크게 부끄러운 마음과 공포심을 일으켜 중생이 미혹 속에 있는 것을 불쌍히 여기고 생사를 끝내지 못한 것을 탄식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수행인이라면 도업을 일찍 성취하도록 노력하여 반드시 탐욕을 버린 상태에서 발우를 지녀 일체중생에게 복전과 이익이 되고 끝내는 삼계제불에 모범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오욕과 육진에 끝없는 망상을 일으키고 있는가.
오욕 전체는 털끝만큼도 되돌아보지 않는 체 버려야만 되는데, 어찌하여 오욕경계를 얻지 못하는 것을 다시 탐욕으로 구하려 하는가.
이런 수행인은 미혹한 가운데 갑절이나 미혹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이를 비유하자면 어리석은 사람이 음식을 먹었다가 다시 토하는 것과 같다. 그것이 어찌 불쌍하고도 가소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탐욕을 일으킬 때는 괴롭고, 욕구를 많이 충족할 때는 공포스러우며, 얻었던 욕구를 잃을 때는 번뇌가 뜨겁게 타오른다. 모든 중생을 살펴보라. 그 어느 누구도 오욕을 탐애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탐욕스러운 사람은 높은 산을 오르기도 하고, 먼 바다를 항해하기도 하며, 때로는 풍찬노숙을 하면서까지 탐욕을 추구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분주하게 오락가락 한다. 설사 자기의 욕구를 채웠다 하더라도 공포와 두려움이 많고, 얻었던 물건을 다시 잃어버릴 때는 그 마음에 근심과 번뇌가 더욱 가득할 것이다.
이를 따라 관찰해보면 삼계 내에서는 쾌락을 즐길 곳이라고는 한 치의 땅도 없다. 모든 욕구의 환란이 이와 같은데 어떤 방법으로 탐욕을 버릴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심오한 선정의 즐거움을 체득하면 탐욕의 망상에 속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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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1 오전 10: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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