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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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은 자기 마음의 보배를 겁탈
고통부르는 악업 일으켜, 외부서 찾아온 도적처럼 여겨야
四訶味欲者 所謂若酸甘辛鹹淡等 種種飮食希膳美味 能令凡夫心生染著 起不善業 如一沙彌染著酪味 命終之後 生在酪中 受其蟲身 如是等種種因緣 知味過罪
4. 여기에서는 오욕 가운데 네 번째로 맛에 대한 욕구[味欲]를 꾸짖었다. 수행하는 사람은 색성향미촉인 오욕을 마주하게 되면 외부에서 찾아온 도적처럼 여겨야만 한다. 왜냐하면 자기 마음의 보배를 겁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급히 멀리하여 탐착하지 않아야만 한다.
맛에는 다섯 종류가 있다. 즉 쓰고 시고 달고 맵고 짠맛과 그 바탕이 되는 싱거운 맛을 말한다.
음식의 갖가지 좋은 맛은 범부의 마음에 애착을 일으켜 악업을 짓게 한다. 세상사람들 가운데 누군들 음식을 탐애하여 그것을 충족시키려고 살생을 하지 않겠는가.
가령 바다와 육지와 허공에서 살아있는 생명체를 살생하여 자기의 입맛에 따라 먹기도 하며, 또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겁탈하여 맛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한다. 맛에 대한 욕구의 해로움은 이와 같이 크다. 하늘은 모든 생명을 살리기를 좋아하는데 하늘의 이치를 손상하고, 불법은 자비를 근본으로 삼는데 대자비심을 끊는 길이 살생보다 큰 것은 없다.
옛날에 어떤 사미는 버터의 맛에 집착하더니 죽은 뒤에 버터속의 벌레가 되었다 한다. 수행자는 반드시 그 죄과를 알아서 욕구를 버려야만 한다.

五訶觸欲者 男女身分柔軟細滑 寒時體溫 熱時體凉 及諸好觸 愚人無智 爲之沈沒 起障道業 如一角仙因觸欲故 遂失神通 爲淫女騎頸 如是等種種因緣 知觸過罪
5. 다섯 번째는 감촉에 대한 욕구를 꾸짖어야 한다. 다섯 욕구 가운데서 감촉[觸]의 욕구가 가장 사납고 해로워 생사의 근본이 된다.
경전에서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체중생은 모두가 색으로서 그의 올바른 성명으로 삼는다. [一切衆生 皆以色欲而正其性命]”
앞에서 열거한 색성향미 등 네 가지 욕구는 각각 한계가 있다. 색욕은 안계의 일부분에, 성욕은 이계의 일부분에, 향욕은 비계의 일부분에, 미욕은 설계의 일부분에 소속된다.
이러한 사근이 사진을 마주하면 각자마다 수용하는 한계가 다르다. 그러나 감촉에 대한 욕구만은 우리의 신체에 두루 퍼져있다.
감촉의 욕구는 남녀의 신체에 대한 욕구를 말하는데, 신체는 유연하고 부드러워 서로 안마를 해주거나 갖가지 다른 오묘한 감촉을 일으켜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곳에 침몰하여 수행자의 도업을 장애한다.
앞에서 나왔던 일각선인은 감촉의 욕구 때문에 신통을 잃어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말라고 악한 발원을 했다. 그 뒤 음란한 여인의 유혹에 빠져 신통을 잃어버린 후 그 여인은 말처럼 부리면서 선인의 목을 타고 다녔다고 한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감촉에 대한 욕구의 과오와 죄업이 지극히 크고 위태롭다는 점이다. 이를 삼가해야 되지 않겠는가.

如上訶欲之法 出摩訶衍論中說
옛날에 한 수행자가 있었는데, 이 수행자는 항상 조용한 물가나 숲속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하였으나 이익을 얻지 못하였다. 수행자는 어느 날 밤, 한 마리 검은 거북이가 물속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마침 밤은 깊고 인적은 고요해 달빛이 우주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바로 그 때 한 마리의 여우가 나타나 거북이의 머리를 씹으려 하자 머리가 바로 수축되었고, 다리를 씹으려 하자 다리를 감추어 버렸다. 여우는 거북이를 잡아먹으려다가 피로만 느꼈고, 거북에게는 털끝만큼도 손상을 주지 못했다. 그러자 여우는 거북이 잡아먹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수행인은 이로부터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여우는 외부 오진경계에, 거북은 수행인에, 머리와 사지는 우리의 내육근(內六根)에 비유하였다는 점이다.
우리 중생들은 무량겁 이래로 내육근이 항상 외육진을 집착하면서 그 마음을 한 처소로 수습하려 하지 않는다. 때문에 누생누겁토록 원한의 생사윤회를 만나면서 여우의 먹이감이 되는 것이다.
만일 여우에게 잡혀 먹히지 않는 거북이의 법을 배운다면 생사는 스스로 끝이 나게 될 것이다.

復云 哀哉衆生 常爲五欲所惱 而猶求之不已
슬프다. 일체 육도중생이여, 항상 오진경계에 대한 욕구에 사로잡혀 거기에 미혹하여 살펴도 꿰뚫지 못하고 알면서도 타파하지 못한다. 중생들은 비단 오진경계를 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경계를 싫증내지 않고 끝없이 추구한다.
이상에서는 오욕마군의 힘이 지극히 심하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此五欲者 得之轉劇 如火益薪 其焰轉熾 五欲無樂 如狗 枯骨 五欲增諍 如鳥競肉 五欲燒人 如逆風執炬 五欲害人 如踐毒蛇 五欲無實 如夢所得 五欲不久 假借須臾 如擊石火 智者思之 亦如怨賊 世人愚惑 貧著五欲 至死不捨 後受無量苦惱
다음으로는 다섯 욕구가 사람을 해치는 모습을 밝히고 있다. 이 오욕경계를 만나면 그 해로움이 더더욱 심해져 이는 마치 타는 불에 섶을 더하면 그 불꽃이 더욱 치성하는 것과 같다.
오욕은 즐거움이라고는 없다. 그것은 마치 개가 마른 뼈를 씹는 것과 같은데, 살이 없는 마른 뼈를 씹는 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중생들의 마음은 망상으로 전도되어 이와 같은 오욕의 경계를 버리려 하지 않는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오욕은 마치 새가 고기를 서로 먼저 뜯어먹으려고 경쟁하는 것과 같이 시비를 증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또 오욕이 사람을 뜨겁게 태우는 것은 마치 맹렬히 타오르는 횃불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고, 오욕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독사를 밟는 것과 같고, 오욕이 실재함이 없는 것은 꿈속에서 얻은 경계와 같아서 오욕은 오래가지 못하고 임시로 잠깐 빌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랑스러운 색욕은 보고 지난 뒤엔 바로 소멸하며, 사랑스러운 성욕은 듣고 나면 사라지며, 사랑스러운 촉경은 항상 있지 않고 찰라 간에 없어진다.
오욕은 또 비유하면 전광석화와 같아서 눈 깜짝하는 사이에 소멸한다. 이를 지혜로운 사람은 마치 원수와 같이 여기는데, 세상 사람은 그 이치를 모르고 허망하게 집착심을 일으켜 죽음에 이를 때까지 버리지 못해 한량없는 고뇌를 세세생생에 단절없이 받는다.
마땅이 알아야만 한다. 색욕은 뜨거운 쇳덩어리와 같아서 그것을 잡는 순간 몸이 타고, 소리는 독을 바른 북과 같아서 듣는 순간 반드시 죽게 되며, 냄새는 독룡의 기운과 같아서 맡는 즉시 병이 들며, 맛은 끓는 꿀맛과 같아서 맛보는 순간 살이 문드러지며, 감촉은 누워있는 사자와 같아서 가까이 하는 순간 물린다.
오욕의 해로움이 진실로 이와 같다. 수행자라면 그 오욕의 허물이 과연 어떠한지 깊이 생각해 보라.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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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8 오전 9: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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