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는 얼마 전 공무로 중국 북경을 방문하게 되었다. 마침 북경의 명소인 만리장성에 가게 되었다. 안내해주는 분이 “운 좋은 줄 아세요. 예전에는 무조건 몇 시간을 걸어 올라가야만 했어요” 한다. 이제는 케이블카가 생겨서 산 위까지 6인용을 타고 올라갔다. 거기에서 정상까지 약 한 시간을 걸어 올라갔다.
사방 어느 쪽을 둘러보아도 능선마다 장성은 끝없이 굽이굽이 펼쳐지고 있었다.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그 어마어마한 규모는 과연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 옛날에 이렇게 높은 산 위에까지 그 큰 돌을 어떻게 운반할 수 있었는지부터가 의문이었다. 또한 크기를 맞추어 정교하게 쌓아올린 돌을 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지 짐작이 되었다. 묘지라고 불릴 정도로 성을 쌓는 과정에서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특히 정상근처의 길은 무척 가팔라서 옆의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야할 정도였다. 걸어만 가도 힘든 이 산길 위에 어떻게 이런 공사를 했을까 생각하는데 동행하던 분이 “정말 인간에게 불가능은 없는가 봐요”라고 하였다. 동감이었다. 그 옛날에 이런 성을 쌓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진시황의 명령으로 중국인들은 해낸 것이다. 이씨는 그 모든 무명영가들을 위해 마음을 내었다. ‘부디 모든 고통과 집착을 놓으시고 벗어나소서. 부처님, 그들의 마음을 밝혀 주소서.’ 원래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성을 쌓은 후에는 감히 중국을 넘보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온 남녀노소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으니 역사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입장권에는 2008년 북경올림픽 상징문구가 자랑스럽게 쓰여 있었다. ‘One World, One Dream(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다. 만리장성을 쌓은 진시황은 죽지 않는 불사약을 구하려고 애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꿈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것이었다. 진시황은 불교의 가르침을 알지 못했다. 자신이 그렇게 간절히 찾았던 영원히 죽지 않는 불성, 부처님의 마음이 바로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헛되이 세상 속에서 찾으며 많은 악업을 지었다. 절대 권력을 행사했던 그는 중국에서 최초로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씨가 웃으며 “난 비록 평범한 사람이지만 영원한 불성을 믿고 마음정진을 하고 있잖아요. 제가 그 황제와는 비할 수 없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기는 세간의 황제일지 모르지만 전 불자, 부처님의 자식인걸요” 한다.
‘이 우주 삼라만상에 불성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다. 불성은 무시(無始) 이래로 있어 왔고 지금도 있으며 영원토록 있을 것이다. 불성은 진리요 영원이요 모든 것이다’하는 말씀이 떠올랐다. 세상 모든 이의 꿈은 바로 성불의 깨달음이었다.
성불의 꿈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적군은 탐진치에 젖은 습관과 무기력감, 고통과 문제를 극복하기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정작 견고하게 쌓아야 할 성은 내 자신 내면의 마음의 힘임을 절실하게 느꼈다.
또 아무리 만리장성이라 해도 첫 돌부터 하나하나 쌓아서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래, 아무리 성불의 길이 멀다 해도 또 가다가다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꼭 보살의 원력을 이루어내어야지. 다음 생 또 다음 생에도 역시 계속해서 이 길을 가야겠다” 하는 다짐을 이씨는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만리장성을 보며 이씨의 내면에는 광대무변한 부처님 마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