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 이근식 교수(서울시립대 경제학)
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강당
일시 : 2008년 1월 12일
주최 : 한국학술진흥재단 (hlectures.krf.or.kr)
‘인문학 위기’에서 인문학을 논하다
인문학은 무엇일까? 인문학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와 같은 추상적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학문이다. 현재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인문대 졸업생의 낮은 정규직 취업률. 대학의 인문학과 폐지와 정원 축소로 인한 학내 갈등 등은 인문학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인문학을 넘어 인간사회 전반의 혼란을 예고한다는 데서 큰 문제다.
이런 가운데 인문학이 직접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자리가 마련됐다. 학술학술진흥재단(이사장 허상만) 주최로 마련된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는 인간과 사회의 본질적 문제를 고민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논의하고자 기획됐다.
동서양 고전해석과 현대. 자유-정의-상생과 사회발전. 사회의 도덕적 기초. 21세기 역사학-우주과학과의 만남. 법-사회-인권 등. ‘사회의 인문적 기초’라는 대주제로 각 분야 석학을 초청해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되는 강좌는 우리 사회의 인문적 화두를 놓고 공감하는 자리다.
강의를 들은 정훈식(오산고 교사)씨는 “정보화 시대 교육이 단순히 요점 정리를 전달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전락한 인문학 부재가 오늘의 강좌를 더욱 가치 있게 한다. 이번 강좌를 통해 <국부론>을 읽게 됐다”고 말한다. 문학에 평소 관심 있었거나 이번 강좌로 관심을 갖게됐다는 다른 참석자들도 석학들의 연구 성과를 통해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공유해보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오늘 강좌는 이근식 교수(서울시립대 경제학과)가 ‘자유-정의-상생과 사회발전’을 주제로 강의한 다섯 번째 시간으로 ‘사회발전의 의미와 방법’을 주제로 인문학적 사유를 함께 나눴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좋은 사회란 자유, 평등 그리고 상생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사회라고 볼 수 있지요.
이 강좌에서 자유, 평등, 그리고 상생이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아울러 이 강좌는 인간성의 핵심이
윤리의식에 있다고 보고자 합니다.
과학에서 가치판단을 배제해야 한다는
과학실증주의를 배격하고,
건강한 윤리의식에 입각한 건전한
가치판단을 견지할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사회 발전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완성되는가’ 입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보이는 구름 잡는 소리입니다. 내가 자유주의를 좋아하는 것은 자유주의가 인간의 불완전성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이 강연에서 고찰하는 ‘자유-평등-사회발전’ 등의 주제는 추상적인 문제입니다. 내 공부는 한계가 있기에 내 생각은 주관적이며 한정적입니다. 여러분들은 내 생각을 듣고 나름대로 자유롭게 비판하고 생각하기를 당부합니다.
사회가 발전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쉽게 합니다. 그러나 이 생각을 동양에서 하게 된 것은 불과 100여 년 전입니다. 동양은 중국이 중심인데 중국인에게는 4000여년 전 과거 속 요임금과 순임금 시절이 이상향이었습니다. 성경에서도 옛날 에덴동산이 이상이었지 앞으로 올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렇듯 이상향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생각은 동서양이 공통적으로 지닌 것으로 기껏해야 사회라는 것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할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국가의 등장은 중앙아시아는 4000~5000여 년 전이었고 중국은 3000~4000여 년으로 지역마다 다릅니다. 국가가 생기기 이전에는 원시공산사회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계급도 없이 평등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이 추앙하는 아담 스미스의 표현을 빌리면, ‘수렵과 채집이 지나 생산력이 발전하고 목축시대 단계가 되자 사유재산이 생기고 빈부 격차로 계급이 생겼다. 소수의 부자는 다수의 빈자로부터 재산을 지키기 위해 국가와 법과 군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국가가 등장한 이래로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지배층의 소수는 다수의 백성을 착취했기에 사회발전이란 것이 나타날 이유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사회발전이란 생각은 상당히 근대적입니다. 이 생각이 시작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자본주의 덕분입니다. 근대 중소상공업자(부르조아)들의 시민혁명 이후 사회가 발전하리라는 생각을 지니게 됐습니다.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이 가장 명료하게 보이는 것은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사회발전단계설’입니다. 아담 스미스는 ‘수렵사회-목축사회-농업사회-상공업사회’로 인류사회가 발전했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사람이 노력하면 더욱 빨리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발전은 아주 근대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자본주의로 경제가 발전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전제군주가 민주주의로 대체되면서 나타난 현상이 바로 사회발전입니다.
아담 스미스의 오버오바(‘지론’에 대한 이근식 교수의 표현) “사회발전을 믿은 나머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모두가 잘 살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부자 혼자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 입장에서 피고용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낙원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기독교적 낙관론이 작용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평생을 유복하게 살았던 아담 스미스 본인으로부터 비롯됐습니다.
마르크스의 오버오바 “원시공산사회-거대노예사회-중세봉건사회-자본주의사회-사회주의사회.” 마지막 사회주의사회는 마르크스가 확신하는 이상세계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둘 다 틀렸습니다. 경제발전론에 관한 최고인 아서 루이스가 발표한 기술적 경제모델이론은 단순합니다. “튼튼한 엄마가 튼튼한 아기를 낳는다. 애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어른들은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해답은 섞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섞는 비율이 문제가 되겠지요. 자본주의 비율을 많이 하고, 사회주의 정부 부분을 적절히 혼합해야 합니다. 그 비율은 공무원 수준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여기에 투명성을 높여준 다면 저절로 알아서 열심히 이뤄질 것입니다.
제 말의 요지는 정치를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은 가난의 추방입니다. 밀(Mill)은 생존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인간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자유’라 했습니다. 자유란 본인이 원하는 인생을 자기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입니다. 자유의 확대는 평등 확대의 과정과 일치합니다. 억압의 추방이 자유입니다. 사람간 차별을 없애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와 풍요만 가지고서는 인간사회가 조화롭지 못합니다.
‘상생’ 해야만 훈훈하고 따뜻한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결국 사회발전은 풍요. 자유와 평등. 상생의 확대입니다. 총체적 사회발전을 의미하는 ‘사회발전의 인과관계’도표처럼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산성 향상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과 물적 시설 두 요소의 발전이 중요함은 자명합니다. 또한 경제사회제도와 의식문화라는 두 요소의 발전도 생산성 향상에 필수적입니다. 도표에 표시된 것처럼 사회 요인들은 서로 쌍방향으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어느 시대나 세속적 권력에서 독립된 계급이 있었습니다. 중세에는 승려가 그 역할을 했고, 현대 사회에서도 그 역할은 요구됩니다. 현대판 승려는 세 가지 부류입니다. 언론인. 판사. 학자가 바로 그들입니다.
독일 재건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빌헬름 레프케의 <휴머니즘의 경제학> 원문을 봅시다. 이성적 사회발전에서 의존하는 이성은 사실판단력 뿐 아니라 가치판단력(윤리의식)을 합한 것입니다. 이성을 활용해 적극적인 개혁을 추진하십시오. 개혁은 점진적으로 신중하게 그리고 평화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허용하는 관용의 풍토가 조성돼야함은 물론입니다. 이 모두의 조화를 위한 의식개혁을 위해 사회분위기를 바꾸고자 노력합시다. 사회 공감대를 얻어 사회분위기를 바꾸는 시대정신이 형성될 때 이성적 사회개혁은 이뤄집니다.
글·사진=가연숙 객원기자 omflow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