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등가경(摩登伽經)>과 <능엄경>에는 아난을 유혹한 마등가의 딸 프라크리티(鉢吉帝)가 등장한다. 마등가는 고대 인도에서 천한 직업을 가졌던 전다라(백정)와 같은 계급의 남자를 가리키며, 여자는 마등기(摩登祇)라고 부른다. 특히 사술(邪術)을 이용하여 사람을 현혹시키는 예가 많았다.
두 경에 따르면, 이른 아침 아난이 사밧티성에 들어가 걸식을 하고 나오다 우물가에서 마등가 출신의 프라크리티로부터 물을 얻어 마신다. 이때 이 여자가 아난의 용모와 음성 등에 반하여 남편으로 삼고자 하는 마음을 내어 어머니의 주력을 빌어 아난을 자기 집으로 끌어들였다. 어머니는 주술로써 아난을 결박하고 저녁때가 되어 아난의 곁에 잠자리를 펴놓았다. 딸은 기뻐하며 몸치장을 한 다음 아난에게 그녀의 소원을 들어 줄 것을 간절히 청했다. 아난은 자신이 출가승이 되어 황발외도(黃髮外道)의 주력(呪力)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면서 합장한 채 부처님이 계시는 쪽을 향하여 구원을 호소했다.
이 때 부처님은 칠월 보름 여름 해제날이자 파사익왕 아버지의 제삿날이므로 그의 청을 받아 왕궁에서 공양하시던 중이었다. 아난의 결박을 신통력으로 아신 부처님은 공양이 끝난 즉시 능엄대신주(楞嚴大神呪)를 설하여 문수보살로 하여금 이 주문을 가지고 가서 마등가의 주력을 소멸하고 아난을 구출하라고 명했다.
아난이 풀려나자 다음 날, 여자는 성안에서 아난을 기다리고 있다가 아난이 걸식을 하고 돌아가는 뒤를 따라 기원정사까지 가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의 눈, 코, 입, 귀와 소리, 몸매, 걸음걸이 등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설했다.
“아난의 눈에는 다만 눈물이 있을 뿐이며 코에는 콧물, 입에는 침, 귀에는 귀지, 몸뚱이에는 대ㆍ소변이 담겨 있는 한 때의 가죽주머니에 불과하지 않는가?”
부처님께서 여러 비유를 들어 무상(無常) 법문을 설하자, 그녀는 이 몸은 추악하고 부정한 동시에, 송장이 변한 몸에 불과하다는 것이 뚜렷해졌다. 숙세의 인연이 무르익은 그녀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모든 애욕에서 벗어났다. 그녀의 마음에서 아난에 대한 음욕과 갈애, 미움이 모두 힘을 잃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의 마음을 비춰보는 회광반조(廻光返照)를 통해, 그녀는 마침내 모든 속박에서 훤출히 벗어나 아라한이 되었다.
이를 본 대중들은 비천한 여인이 어떻게 이처럼 쉽게 아라한이 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그 까닭을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그녀의 전생 인연을 말씀하셨다. “이들은 과거 500년 동안을 계속 부부가 되어 서로 아끼고 사랑하여 왔고 또한 나의 법 중에 깊은 숙연이 있었으므로, 이제 나를 만나 도를 깨친 것이다. 이제 그들은 마치 형제자매와 같다.”
프라크리티는 비록 현생에서는 욕망의 사슬에 매여 있었지만,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곧바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도리를 깨달아 해탈하였다. 특별한 수행법으로 오랜 기간의 수련 없이 법문을 듣는 즉시 깨닫는 언하변오(言下便悟)는 무상(無常)ㆍ고(苦)ㆍ무아(無我)의 3법인(三法印)을 철저히 요달한 자에게만 나타난다.
부처님께서 프라크리티에게 제행무상을 철견하도록 한 법문은 탐욕을 없애기 위해 나와 남의 몸을 백골 등 더러운 것으로 보는 골상관(骨想觀)ㆍ백골관(白骨觀)ㆍ부정관(不淨觀)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부정관은 오늘날도 태국과 미얀마 등 남방불교권에서 널리 권장되는 기초 수행법이다.
부처님은 “애욕만큼 즐거운 것이 둘만 있어도 아무도 출가하지 않을 것이다”고 했을 정도로 윤회의 근원인 갈애(渴愛), 그 가운데도 애욕을 극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정복하고, 모든 것을 알았다. 타는 듯한 애욕을 극복하고 해탈을 이루었다”(법구경)는 부처님 말씀처럼, 애욕의 정복은 구도의 마지막 관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성우 객원기자 buddhapia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