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잡기 멀리하고 출세간 학문까지도 버려야
三息工巧技術緣務 不作世間工匠技術醫方禁呪卜相書數算計等事
세 번째는 세간의 기술적인 일을 쉬어야 한다. 출가인이라면 세간의 기술을 익히지 않아야 하는데, 무술을 배운다든가 기계 조작 등을 연구하는 것을 세간적인 기술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사람들의 병을 치료한다고 비법을 연구한다든가 사악함을 금지하는 주술을 외워서 병을 치료한다든가 하는 것은 삿된 주술이지 불교의 진실한 가르침이 아니다.
또한 사주와 관상을 보는 등 운명을 점치는 일은 모두가 도업을 방해한다. 재가인이 생활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불교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하지 않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수행인이 이같은 일을 하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오로지 세간적인 욕망만 일어나 도를 이루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옛날 큰스님들은 말씀하시기를 “하나의 일을 버리면 하나의 망상을 소멸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또 “한 분야의 망상을 제거하면 한 분야의 근본지혜를 증득하게 되고 한 분야의 경계를 제멸하면 한 분야의 법신을 증득한다” 라고 하였다. 이는 광명이 일어나면 어둠이 소멸되고 어둠이 일어나면 광명이 소멸되어 광명과 어둠이 서로 함께 하지 못하는 것과 같고, 물과 불이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는 이치와도 같다.
四息學問緣務 讀誦聽學等悉皆棄捨 此爲息諸緣務
네 번째로 학문에 관한 일을 쉬어야만 한다. 학문의 근본은 지식을 자라나게 하는 것이므로 박식하게 보고 널리 듣는 것이며 이를 따라서 이뤄지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이미 불교를 배웠다면 세간의 학문을 멀리 버려야만 한다. 세간의 학문이라는 것은 시나 소설 등 문장 짓는 일과 과학이나 철학 등을 연구하는 모든 것을 포괄해서 하는 말이다.
출세간인이라면 세간의 학문뿐만 아니라 출세간 경전까지도 버려야만 한다. 예를 들면 독송하는 경전이나 논서 혹은 강의를 듣는 것 까지도 모두 쉬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세간학문은 유루법이기 때문에 당연히 버려야겠지만 출세간 학문은 무루무위법으로서 구경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는데도 무엇 때문에 세간학문과 똑같이 버려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학문을 공부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견해가 분명하기 이전에는 반드시 경전강의를 듣고 이치를 밝혀야 하지만 이미 견해가 열린 이후에는 일체 견해를 모두 다 버리고 실제 수행에만 정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수행하기가 쉬워 기로에서 헤매는 어리석음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수행인이 언어 문자에만 집착하고 진실하게 공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끝내 바다에 들어가서 모래를 세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을 면치 못한다. 또 그림속의 떡은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선종에서 오직 화두만 관조하면서 단도직입적으로 수행에만 전념하는 이유가 일 많은 데서 오는 병통을 면하기 위함 때문이다.
所以者何 若多緣務 則行道事廢 心亂難攝
왜냐하면 일이 많으면 마음이 얽매여 도를 수행하는 일이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많으면 망상도 역시 많아져 마음을 수습하기 힘든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다.
분명히 알아야할 점은 경전을 독송하고 강의를 듣는 등 불경을 배우는 일은 멀리해야 하는데, 이 문제를 결코 오해해서는 안된다.
도를 깨닫는 법문은 비록 팔만사천 방편문이라고는 하나 그 모두에는 각각 정수행과 보조수행이 있다. 예를 들어 법화경을 독송할 경우 그것 역시 지관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경우 법화경 독송이 정수행이 되고 예불ㆍ참회 등은 보조수행이 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관으로서 정수행을 삼았다면 그 나머지 모든 방편법문은 다 보조수행이 된다. 따라서 정수행을 전일하게 하면서 잡다한 것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 수행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第五近善知識 善知識有三 一外護善知識 經營供養 善能將護行人 不相惱亂
이상으로 네 가지 인연에 대한 설명은 끝내고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선지식에 대한 인연을 설명하기로 한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선지식은 도를 얻는 전체의 인연이다” 라고 하셨다. 선지식은 일체중생의 병통을 알고 일체 중생의 병을 치료하는 약까지도 잘 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이른바 병을 알고 약을 알아서 병에 따라서 약을 주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예를 들면 아사세왕이 기파라는 선지식을 만나서 부처님에게 귀의하고 통렬한 고통으로부터 해탈을 하였는데, 이는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를 의지해서 올바르게 자라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선지식을 잠시도 떠나서는 안된다.
선지식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첫 번째는 외호선지식이다. 외호는 ‘외부에서 옹호한다’라는 뜻인데, 외면에서 옹호하여 훌륭하게 도업을 성취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후학을 위해서 지극한 마음으로 필요한 의복과 음식을 제공하면서 이들이 수행하는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도록 해주어야만 한다.
또 갖가지로 공양을 올리기 때문에 외호를 ‘경영을 한다’ 고 말하기도 하며, 훌륭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호를 하기 때문에 수행하는 사람 스스로가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역시 타인들까지도 혼란하게 만들지 않는다.
二者同行善知識 共修一道 互相勸發 不相擾亂
다음으로 함께 수행하는 선지식이다. 이는 함께 참여하고 함께 수행하며 함께 공부하고 함께 하나의 도를 닦으면서 피차가 함께 지관을 닦아 서로가 서로를 돕고 연마해주고 경책하고 바로 잡아주는 도반 같은 선지식을 말한다.
한 배를 타고 가는 사람과 같은 의미인데, 이를 두고 옛날 큰 스님들은 말하기를 “스승을 구하는 것이 도반을 구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이는 진실한 말이라고 하겠다.
三者敎授善知識 以內外方便禪定法門 示敎利喜 略明五種緣務竟
세 번째로 교수선지식은 교도를 하는 스승을 말한다. 이는 교도를 함에 있어서 훌륭한 방편으로 교화하여 내외신심을 조복받고 선정법문을 분명하게 교시하여 수행자가 큰 이익을 얻게 하는 선지식을 말한다. 교수선지식은 오음(五陰)을 타파하고 오탁(五濁)세계를 초월하고 일체마구니 경계까지도 모두 다 명료하게 통달한다.
예를 들면 지자대사께서 법화경을 오묘하게 깨우치자 그의 스승인 남악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아니면 법화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 것이고, 내가 아니면 그대의 견처를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였다. 이것이 바로 선지식의 이익된 처소이다. 이는 “산 아래 길을 알려면 그 길을 지나온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한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총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지관을 닦는다면 외호하고 경책하고 지도해주는 선지식이 가장 요긴하다는 점이다.
이상으로 다섯 가지 종류의 갖추어야 할 인연을 밝히는 일은 모두 끝났다.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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