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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形의 세계 업그레이드를
김징자 칼럼니스트
이천 냉동 창고 화재 참사가 일어났을 때 매스컴에서 비슷하게 뽑은 제목들은 ‘아직도 이런 후진국 형 人災가…’였다. 마치 선진국 문턱 앞에 서 있는 한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듯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주변은 그런 참사가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안전이 잘 보장돼 있는 것일까? 여기에 ‘그렇다’고 답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멀쩡하던 한강의 다리가 무너져 내리고, 정원을 넘긴 여객선이 강물에 가라앉고, 쇼핑객으로 붐비던 백화점이 천정 째 무너지던 지난 90년대에 비해 빈도는 낮아졌을지언정 재난의 규모나 재난 형태의 다양성 등 위험성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지난 연말에 있었던 태안 유조선 기름 유출사고는 보다 큰 배를 건조할 수 있는 기술이 보다 엄청난 규모의 재난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이었으며, 1년 전 일어났던 여수 출입국 관리소 외국인 보호시설 화재 사고는 그 희생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밀입국한, 그래서 철창 속에 갇혀 빠져 나올 수 없었던 외국인들이었다는 점에서 재난의 새로운 유형으로 꼽을만하다.
이번 이천 냉동 창고 화재에도 희생자 가운데 중국동포가 많아 중국 매스컴을 비롯해 중국 당국이 당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사건 사고 하나도 앞으로는 세계화라는 입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도 짚어 나가야 할 부분이다.
따져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산업화 이후 ‘대형사건사고’라는 달갑지 않은 동행객이 따라 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산업화가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조심성과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도 없이 성급한 경제적 성과, 대형화, 효율화 등을 서둘러 왔기 때문이다. 그 성급함이 ‘빨리 빨리’ 증상을 불러왔고 오죽하면 외국인들에게 그 ‘빨리 빨리’란 말이 한국인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을까.
어쩌면 1971년 165명의 생명을 앗아갔던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는 산업화 이후 그런 사건 사고의 끊임없는 역사를 예고한 것일 터이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나 이천 지하 냉동 창고 화재 참사도 그 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그동안 우리가 안전 불감증에 대한 충분한 자각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이천 참사 역시 ‘빨리 빨리’ 진행된 위험했던 공사가 그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이전에 있었던 여러 건의 비슷했던 냉동 창고 대형화재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금 한국 유형(有形)의 산업 시설은 거의 선진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안전 불감증’이란, 형체가 없는 무형(無形)의 것이다. 이는 ‘빨리 빨리’ ‘속전속결’ 등의 마인드에서 나온다. 그 마인드가 초기 산업화 시대 이후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이며 바로 이점이 문제다. 선진이란 이런 유형, 무형이 보조를 함께 하고 있는 사회에 붙일 수 있는 수식어일 것이다.
사실 어떠한 사건 사고 한 가지도 그 사회의 모든 것과 아무 고리 없이 독단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다행이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느리게 살기’운동 등 ‘빨리 빨리’와 대칭되는 그 무엇들이 환영받기 시작하고 있다. 부작용 많았던 숨 가쁜 질주에서 크게 한숨돌려보자는 자각에서 나온 것일 터이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후 전국 규모 자원봉사자들의 눈부신 활동 역시 무형의 마인드가 선진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새로 들어 설 ‘이명박 정권’은 ‘경제 제일주의’를 앞세우고 있다. 연초에 일어난 대형 참사는 그 속도 문제에서 경제 제일주의에도 일깨워주는 바가 많을 것이다.
2008-01-14 오후 5: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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