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 종합 > 기사보기
영원한 보배는 바로 여러분 마음의 주인공!
이곳 제주도에 오늘 도착하고 보니까 비가 오더니 지금은 날이 이렇게 활짝 개었습니다. 여러분과 같이 마음도 활짝 개인 한마음으로 한자리를 하고 앉았으니 너무나 기쁩니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마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 마음에 의해 사람이 지옥고에 떨어지는가 하면 승천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마음 한번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바로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고 구덩이에서 나올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마음 하나가 귀중하며 묘법이고 광대무변하다는 거를 여러분은 아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몸은 바로 마음의 시자인 것입니다. 위로는 일체제불, 일체 조상을 자기 근본에 한마음으로 귀합을 해서 주인공이라고 이름을 해서 섬기고, 아래로는 자기 몸뚱이를 돌보면서, 또 몸뚱이 속에 있는 수억 마리의 중생들을 돌보면서, 그리고 바깥의 내 식구들을 돌보면서 내 모든 동포와 민족을 돌보니 이 한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를 것입니다.
내가 제주도에 와서 가만히 살펴보니까 병자들이 많습니다. 환경에 따라서 식모 노릇을 할 때는 식모가 되고 또 하인 노릇을 할 때는 하인이 되고, 의사 노릇 할 때는 의사가 되고 또 사장 노릇 할 때는 사장이 되고 하듯이 이 세상에는 고정관념도 없고, 보는 거 듣는 거 가고 오는 거 먹는 거 또는 마음먹는 거까지도 고정됨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 한 사람의 수없이 바뀌는 마음에 의해서 행이 주어지니 얼마나 천차만별로 많겠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여러분이 아파하는 것을 볼 때마다 바로 내 몸이 아픈 것처럼, 내가 괴로운 것처럼 내가 울부짖어집니다. 그런고로 여기 와서는 설법을 할 때도 여러분의 차원에 맞춰서 설법을 하게 되니까 이런 소리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스님은 병에 대해서만 얘기하더라.” 이렇게 말씀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환경이 그렇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서 말이 나간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내 몸을 하나 잘 끌고 다니는 것이 바로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고 말씀을 드린 그 뜻을 여러분은 잘 아시겠죠? 두 가지 여건이 있는데 내부와 외부의 문제입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 하면, 나부터 알아서 나를 이끌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 돼야만이 남을 이끌어 줄 수도 있고 일체제불과 같이 한자리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위로는 부처님을 나와 더불어 모시고 아래로는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는 그 광대무변한 능력이 생김으로써 공덕법행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도리를 알면 계율은 저절로 지켜지고 지혜도 늘어나고 물리도 터지는 거죠. 그럼 우리 스스로의 마음, 그 한자리에서 스스로 지혜로운 마음으로써 빛보다 더 빠르게 오고 갈 수가 있고 볼 수가 있고 할 수가 있고 들을 수가 있고 일체 만법을 이렇게 수레바퀴 굴리듯이 무변하게 할 수 있는 겁니다. 만 가지의 꽃이 피고 만 가지 향내가 나고 만 가지 열매가 맺혀서 무르익어 만 가지 맛을 낼 수가 있는 신비하고도 도도한 이것이 바로 공덕법행입니다.
아까도 한 분 한 분 만났습니다만, 지금 제가 여러분한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보배는 바로 여러분 마음의 주인공이라는 겁니다. 그것도 이름 해서 주인공이라고 했습니다. ‘주인공’ 하면 그 안에 일체 만법이 다 들어 있으니, 삼천대천세계의 우주의 섭류까지도 그 속에 다 들어 있으니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묘법입니까? 불가사의한 뜻이 거기에 다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주인공!’ 하고 부를 때에 말로 부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입에만 올리라는 게 아니라 ‘주인공! 당신은 수만 겁, 수억 겁을 거쳐 오면서 나를 형성시키고 모습을 바꿔 가면서 화해서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장본인이자 나의 뿌리이다. 삼천대천세계가 공생(共生)으로서 공용(共用)으로서 공체(共體)로서 돌아가는 이치를 합해서 바로 주인공이라고 이름을 일컫는 것이다. 당신이 형성시켰으니까 안되는 것도 바로 당신이 할 수밖에는 없다.’ 하고 뜻으로서 받아들일 때라야 그 진실하게 믿는 마음으로 거기다가 일임시킬 수 있습니다.
또 잘되는 것은 감사하게 일임시킬 수 있고요. 안되는 것은 ‘그렇게 안되는 것도 당신만이 되게 할 수 있어.’ 하고 믿고 일임시킬 수 있는 것은 진정코 믿기 때문입니다. 믿으면서도 ‘주인공! 나 좀 낫게 해 줘.’ 이런다면 벌써 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길을 가도 돌아서 가는 격이 되죠.
공을 쳤는데 바로 들어가서 저기 가서 탁 맞아야 그 공의 힘을 100% 쓸 수가 있는 거지, 공을 쳤는데 돌아서 저기 가서 맞는다면 공의 힘을 전부 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둘로 보지 마시고 직속으로 ‘네가 형성시켰고 네가 수억겁을 끌고 다녔고 현재에도 끌고 다니니까 바로 네가 할 수밖엔 없지 않은가! 너밖에는 못한다.’ 하고 믿고 맡기되 맡긴 후에는 거론하지 말라 이거예요. 방황하지 말고요.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거기서 알아서 하는 거기 때문입니다. ‘내 몸을 이끌어 가지고 다니는 것도 바로 네가 이끌어 가지고 다니는 거지 몸뚱이가 너를 이끌어 가지고 다니는 게 아니다. 마음이 몸뚱이를 이끌어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겠는가!’ 하는 거죠.
그 뿌리는 바로 에너지와 같고 심봉과 같고 축과 같아서, 비행기 프로펠러가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천지의 근본도 마음의 근본이요 태양의 근본도 마음의 근본이라, 인간이 일체 만법을 이렇게 운영하고 행을 하는 것도 마음의 근본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근본, 이 오묘한 마음의 근본을 우습게 생각을 하고 ‘부처님이나 큰스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지마는 우리 같은 중생들이야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하고 자기를 무시하고 짓밟는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뜻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처님과 더불어 똑같이, 이 형상도 부처님하고 다 똑같이 나게 했습니다. 마음 하나가 물리가 터지지 못하고 자기 낳기 이전을 자기가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중생이라는 말을 듣게끔 돼 있죠.
그런데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여러분이 앓고 있는 질병들도 바로 주인공에 그렇게 믿고 맡길 수만 있다면 나을 수 있습니다. 바로 자기가 밀고 나간다면 어떤 것이든 아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절대 이거는…. 그건 장담합니다. 자기가 실험을 안 해 보고 자기가 체험을 안 해 보고는 이런 말씀을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이런 게 있습니다. 공부를, 공부랄 건 없지만 여러분이 마음의 도리를 다 익히지 못해서 지금 병에 끄달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 도리를 알려고 공부를 하면서도 마음으로만 기울어지지 말고 한 푼이든 두 푼이든 자기 형편대로 부처님 앞에 놓으면서 ‘일체제불이 바로 당신이요, 당신이 바로 내 마음이요, 당신의 형상적인 몸이 바로 내 몸이니 어찌 둘이겠습니까? 주인공! 당신밖엔 해결 못하시오.’ 하고 정성을 들이면, 여러분이 나으니 좋고 그 돈을 모아서 또 여러분의 여래의 집을 만든다면 그건 더욱더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건 어떠한 개인의 집이 아닙니다. 여래의 집이라는 거는 부처님의 집이자 여러분의 집이자 일체 만물만생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오묘한 마음의 도리를 잘 발견하고…. 본래 없는 것을 찾으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 본래 있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모르니까 발견하라는 겁니다. 내 몸을 내가 끌고 다니는 것도, 이런 게 있습니다. 마음을 선장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이 마음 쓰는 대로 내 오장 육부의 세포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미거한 탓으로 ‘나는 죽겠다’ 하는 생각을 한다면 바로 여러분의 몸속에 있는 생명체들이 운행을 하면서 똑같이 ‘나도 죽겠다’ 이러는 겁니다. 이걸 똑바로 아셔야 합니다.
이런 게 또 있죠. “삼살방이 들어서 나는 그리로 이사를 못 가겠다.”라고 한 사람은 못 가고요, 어떤 사람은 그걸 어기고 가기는 갔는데 거기에 걸려서 바로 곱사가 됐더랍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삼살방이 어디에 있어? 사방이 터졌는데! 내한마음이 일체제불의 마음이고 일체제불의 마음


이 내 한마음인데 어찌 삼살방이 붙을 자리가 있 겠는가!” 하고 그쪽으로 똑같이 갔는데 더 잘됐더랍니다. 그러니 얼마나 차이가 있습니까? 이 차이는 마음의 차이입니다. 여러분이 질겁을 하고 무서워하는데, 무서워할 게 뭐 있습니까? 한 번 죽기는 마찬가진데, 네?
여러분의 몸뚱이를 영원히 두겠습니까? 옷과 같은 겁니다. 옷이 헐었으면 벗어 버리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옷이 헐어서 벗어 버릴 거를 알면서도 그 옷이 벗어 버려질까 봐 무서워서 벌벌벌벌 떨고선 그렇게 노예가 된다면 그건 바로 미신이요 귀신인 것입니다. 사람이 미신 노릇을 안 한다면 선신이고, 사람이 미신 노릇을 한다면 미신인 것입니다. 죽어서도 세세생생에 끊임없이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그건 미신이요 귀신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을 언제 깨달아 일체제불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일체 중생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어서 위로는 섬기고 아래로는 제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 자체가 그렇게 귀중한 것을, 그렇게 보배인 것을 모르시고…. 여러분 가정에 질병의 고통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술을 먹고 아수라장을 만들고, 또 마음을 제각기 먹고 오해를 해서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자식들하고도 화목하지 못하고 어른하고도 화목하지 못하고, 그래서야 그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 무슨 돈이 풍족하게 늘어 가겠습니까?
돈은 눈이 없고 생각이 없는 줄 아십니까? 다 생명이 있고 눈도 있고 마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쫓아가려고 애를 쓰면 달아나갑니다. 앉아서 쫓아오게 만드는 것이 바로 능력입니다. 그만큼 열심히 해서 여러분의 마음이 일체 만법의 그 능력을 쓸 수 있어야 하죠. 수레바퀴 굴리듯이 내 마음을 굴려서 쓸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얻으셔서 앞으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조선시대 때에 절에서 기복을 쓴 것은 하도 스님네들을 탄압을 하고 붙들어다 볼기를 치고 그러니까 도저히 먹을 게 없어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 칠성각이니 독성각이니 신중단이니 모두 해 놓고 여기도 놓고 저기도 놓게 만들었던 겁니다. 그것을 똑바로 아시고서 개선을 하셔야 합니다. 그랬는데 그전에는 대두 한 말들이 불기를 만들었던 겁니다. 불기가 넷, 다섯이 되니 한 몇 분만 정성을 들이고 가도 스님네들이 1년을 공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배경으로 인해서 기복으로 해 놓은 것인데, 이 밝고 밝은 지금 세상에, 물질과학 문명이 이렇게 발달된 시점에서 그런 것을 개선 못한다면 앞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발전을 하며 앉아서 호국 불교를 논의하겠습니까? 지금은 앉아서 무역을 하고, 앉아서 저 소련이나 먼 나라의 소식을 듣고 있고, 앉아서 스위치만 누르면 미국으로도 그냥 소식을 주고받고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미거하게도 예전에 기복으로 하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그렇게 행하고, 그런 고정관념을 가져서 자기를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있으니 그러한 습관을 좀 더 개선해야 되지 않나 이렇게 봅니다.
옛날이야기 좀 할까요? 옛날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됐습니다. 부자가 되니까 부인을 넷을 얻었습니다. 이걸 비유해서 얘기하신 겁니다, 인제. 그래서 부인을 네 명을 얻었는데 자기가 죽게 됐습니다. 다 죽게 돼서 인제는 숨이 넘어가게 생겼으니까 둘째 부인을 불렀습니다. 불러서 “여보 당신! 사계절을 통해서 당신을, 더우면 얇은 옷을 입히고 추우면 두꺼운 옷을 입히고 맛있는 걸 먹이고, 모든 것을 당신이 해 달라는 대로 다 이렇게 해 왔잖소? 그러니 내가 지금 죽어 가는데 당신은 안 따라가려오?” 하니까 “나는 못 따라가겠소.” 하거든요. 셋째 부인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얻기 위해서 평생을 얼마나 노력을 했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데 당신은 나를 그렇게 몰라준단 말이오. 그러니 내가 죽어 가는데 당신은 갈 수 있겠소?” 하고 물으니 “나도 갈 수 없소.” 하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슬픕니까?
그래서 넷째 부인을 불렀습니다. “당신을 내가 극진히 위하고 사랑하고 그랬는데 당신은 나를 쫓아가지 않으려오?” 하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 가시는 대로 묘지나 화장터밖에는 못 가겠습니다.” 그러거든요. 지금으로 치면 말입니다. 첫째 부인을 마저 불렀습니다. 불러서 하는 소리가 “당신을 내가 등한시하고 이렇게 살아왔지만 당신하고 평생토록 인연을 맺은 것만은 사실 아니냐? 그러니 내가 죽어 가는데 같이 갈 수 없겠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첫째 부인이 말하기를 “당신이 못났든 잘났든, 많이 살았든 적게 살았든, 수억겁을 거치든 단생이든 당신을 쫓아가지 않고 누구를 쫓아갑니까?”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비유가 무슨 뜻이냐? 둘째 부인은 이 몸을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더우면 더운 대로 지금도 부채질해 주고 계시죠? 얼마나 위합니까? 더우니까 부채질을 해 주고 얇은 옷을 입혀 주고, 땀이 나면 씻겨 주고 배가 고프면 먹여 주고, 입맛이 없으면 맛있는 거 먹여 주고 얼마나, 이 몸을 위해서 마음이 얼마나 했습니까?
보십시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이며 자동적입니다. 마음이 ‘내가 해 준다’ 하고 해 주는 게 아니라 자동적이며 스스로입니다. 이게 바로 묘법입니다. 보십시오! 더우니까 말없이 자동적으로 부채를 가지고 스스로 그냥그냥 이렇게 손이 놀려지죠? 부채가 뭐 ‘내가 부쳐 준다’ 그러고 부치나요? 내가 ‘부채질 해야겠다’ 그러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더우니까 그대로 자동적으로 부채가 돌아가는 거죠.
그러면 거기에 따라서, 저 해도 말입니다, “야! 너희들이 햇빛을 가려 놓으니까 내가 못 비춰 주지, 똥구덩이든 어디든 막론하고 너희가 지붕만 없게 해 놓는다면, 벽만 없게 해 놓는다면 다 들어갈 테니까 너희 맘대로 해라.” 그런 거거든요. 저 태양이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태양이 “내 햇빛을 너는 받지 않으면 안 된다.” 합디까? 그런데 그 태양보다도 더 중요한 건 여러분의 마음이거든요. 마음의 태양! 마음의 등불! 그 등불은 끊어짐이 없이 지금 켜져 있는 것입니다. 죽으나 사나 지금 그 등불은 꺼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저 만날 이 몸뚱이를 가지고 내가 줬지, 내가 받았지, 내가 살지, 내가 아프지, 내가…, 만날 ‘나, 나, 나, 나’ 하니까 이놈의 잠재의식 카세트에 그냥 얽히고설켜서 감겨 가지고 각본대로 나오죠! 영화배우들처럼 도깨비장난처럼 그냥 각본대로, 나오는 대로 나오니까 여러분이 한탄을 하기를 ‘아휴, 내 팔자야! 나는 이 세상에 나와서 그렇게 나쁜 짓을 안 했건만 어찌 팔자 운명이 이렇게 가혹한가.’ 하고선 한탄하는 분들이 너무도 많지 않습니까? 그건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죠.
그런데 과거도 없는 것입니다. 왜? 오늘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작년 콩씨를 올봄에 심었더니만 콩나무로 화하고 콩나무에서 콩이 열렸습니다. 그랬으니 그 작년 콩씨가 작년 콩씨대로 따로 있고 올 콩씨대로 따로 있고 올 콩나무가 따로 있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왜 대답이 없습니까? 그래서 이 세상에 인생이 태어나면 그대로 화두요 내 몸 나온 것이 화두요 생활이 그대로 참선이에요. 생활이 그냥 참선이니까 숨 들이쉬고 내쉬는 게 그대로 참선이요, 그대로 한 치도 일분일초도 끊어지지 않는 것이 시공이 없는 이 진리란 말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부인이라고 한 그 뜻은 무엇이냐? 재물입니다. 재물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고 얼마나 애를 썼겠습니까? 참 극난히, 자기 죽는 줄 모르고 자기 병드는 줄 모르고 그걸 얻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는데 죽어 갈 때는 아예 한 푼도 개재가 되지 않습니다. 이러니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돈더러 그렇게 물었더니 그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죽어 갈 때 자기 몸더러 말을 했고 자기 재물더러 말을 했더니, 재물은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거를 바로 죽을 때에서야 알았다 이 소립니다, 인제. 그걸 비유한 겁니다.
네 번째 부인이란 권속을 비유하는 겁니다. 부인이나 남편, 자식들입니다. 자식들을 애지중지 그렇게 길렀건만, 맛있는 거는 먹이고 맛없는 거는 대신 먹어 가면서, 젖은 자리는 마른 자리로 갈아 주면서 길렀더니 죽어 갈 때에 “묘지밖에는 못 가고 화장터밖에는 못 가겠습니다.” 그러거든요. 자기 혼자서 생각해 보니까 그렇더란 얘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안 그런가? 화장터밖에는 못 가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아버지 어머니라고 했지만 내내 기껏해야 종노릇만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햇빛을 준 거라고도 하겠지만 묵은 빚을 갚지 못했다면 햇빛도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 잘 생각하셔야 됩니다. 부모의 뜻에 대해 한 번이라도 진실로써 한생각을 했다면 자기가 먹는 밥 한 그릇을 가지고도 천도를 시킬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 피땀을 흘려서 번 돈을 가지고서, 또 빚을 얻어서라도 천도를 시켜야만이 잘되는 줄 아는데, 천만에요! 여러분, 잘 생각하십시오. 조상이 못 먹고 못 입고 못 쓰고 그렇게 돌아간 분들은 한이 되니까 자식 된 도리로 다소는 이렇게 차려 놓아야 되겠지만…. 보십시오. 아파도 조상의 탓, 잘못돼도 조상의 탓을 하고 야단입니다. 그래, 자식 잘못되라고 하는 부모가 어디 이 세상에 있겠습니까? 죽어서나 살아서나 말입니다.
그런데 살아 있을 때 부모가 지게꾼이었다면 돈
을 못 버니까 자식을 공부 못 시켰지, 부모의 마음이 모자라서 못 시킨 게 아니거든요. 가난해서 못 시켰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허허허…, ‘출세하라. 회전의자에 앉으려면 출세하라.’ 이랬죠? 그런 속담의 말이 있듯이 이 도리를 알면 내가 스스로 두루 원력이 있고 두루 자비가 생기고, 두루 아니 봐 주는 데가 없고 두루 물리가 터져서 일체 삼천대천세계 그 법계의 에너지가 여러분의 자손들에게 가고 옴이 없이 갈 수 있는 겁니다. 또 이 도리를 공부한다면 여러분한테도 그대로 에너지가 풍부하게, 서로 오고 감이 없이 오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될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2007-09-28 오후 4:43:05
 
 
   
   
2024. 11.2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