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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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정신분석과 불교-7
“포크(pork)는 훌륭한 프랑스 말이야. 돼지(pig)는 색슨의 손에서 기를 때는 색슨의 이름으로 통용되지만 성 안의 넓은 방으로 운반되어 높은 사람들을 대접하게 될 때에는 노르만어로 불린단 말이야.”
스콧의 유명한 소설 <아이반호>에 등장하는 색슨족 하인이 한 말이다. 돼지고기와 마찬가지로 암소는 영어로 카우(cow), 수소는 옥스(ox)라고 한다. 그런데 쇠고기는 프랑스에 어원을 둔 비프(beef)로 부른다. 이는 11세기에 유럽 북방의 노르만족이 남하하여 영국에 노르만 왕조를 세우고 원주민인 색슨족을 지배하면서 생겨난 언어 현상이다. 즉 피지배계층인 색슨족이 가축으로 소를 기를 때는 색슨말로 부르다가 고기가 되어 식탁에 오를 때는 지배계급인 프랑스 말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언어에는 역사와 그 역사를 겪으며 살아간 사람들의 감정이 들어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커다란 기준 가운데 하나가 ‘언어의 사용’이듯, 언어란 이렇게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신분석에서도 언어는 중요한 매개체다. 상담자는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수단, 즉 표정이나 몸짓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지만, 가장 비중을 두는 것은 역시 언어다. 내담자가 자신의 고통이나 문제를 언어화해서 표현할 때 이미 절반쯤은 치료에 성공한 셈이다. 왜냐하면 내담자 스스로 감당해 내기에 너무도 힘겨운 경험이나 기억을 무의식 속에 가두어 두었기에 심리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 언어로 표현하였다는 것은 무의식이 의식화했다는 의미이며, 감당해 낼 힘을 어느 정도 구축했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에서는 언어가 없어서는 안 될 제1의 수단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 등의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교에서는 언어를 그리 신뢰하지 않으며,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그러나 인간의 의사소통 수단은 언어뿐이므로, 언어를 방편으로 쓰긴 하되 언어의 일상적 용도를 뛰어넘는 대화를 함으로써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그것이 바로 간화선 선사들이 주고받는 선문답(禪問答)이다.
부처님께서도 정각을 이루고 나서 처음에는 ‘내가 증득한 법은 심히 깊고 미묘하고 가장 지극한 적정(寂靜)인지라 … 마음으로 헤아릴 바가 아니며, 말로 할 수도 없으며, 들을 수도 없으며,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걸리는 바도 없다. … 만약 이 법을 사람들에게 연설하면 그들은 모두 분명히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 그러므로 나는 잠자코 있어야겠다’고 생각하셨다. 그러나 대범천왕의 간곡한 청에 따라 법을 설하기로 결심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애당초 인간 사량 능력의 한계, 언어의 한계를 간파하셨다. 그래서 가섭존자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심중을 전하실 때 연꽃을 들어 보이셨던 것이다[염화시중(拈華示衆)].
하지만 부처님께서도 사람들을 부처님 법으로 이끄는 초기 단계에서는 세속의 언어를 십분 활용하셨다. <잡아함경>에서 그 예시를 볼 수 있다. “그릇이 쓰일 때마다 명칭이 달라지듯, 나도 세상 사람이 아는 것과 같이 그렇게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나를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불교상담개발원 사무총장
2007-09-12 오후 2: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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