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자인 S씨는 배신한 동료에게 복수하는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상담시간에 법사가 “복수보다 어려운 건 그를 용서하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었으나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다시 상담 때 묻기로 했다.
“법사님, 복수하지 말라는 부처님 뜻은 좋아 보이기는 한데 너무 억울한 것 같습니다.” “네, 어떤 점이 억울하세요?” “ 불자들은 누구나 다 용서해 주라하는데 그렇다면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괜찮게요? 선하게 사는 사람만 억울한 것 아닙니까?” “언제 부처님께서 나쁜 일을 해도 된다고 하셨습니까?” “된다고 하신 건 아니지만 용서받으면 그냥 무효잖아요.” 법사는 정색을 하며 “거사님, 무효란 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다 그 과보를 받는 겁니다. 그러니 자신이 한 일은 참회하지 않는 한 그대로 다 받게 됩니다. 그러니 누가 거사님에게 이유 없이 잘 못했다고 하면 언젠가 그 사람은 그 과보를 다 받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철두철미 인과의 법칙, 불교의 기본입니다.”
“글쎄요, 법사님, 저 같은 사람은 이렇게 들어왔지만 솔직히 나쁜 짓 하고도 잘 사는 사람들 많지 않습니까. 안 걸리면 그만인데…. 그래도 공평하다고 하시렵니까?” “안 걸리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요? 자기 마음이 알고 마음에 입력되어 있는 한 우주를 속일 수 없습니다.
비유를 들어 드리지요. 누군가 오늘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잡혔습니다. 잡히기 전 6일 간은 아무 문제없이 살았어요. 게다가 부정한 남의 돈으로 사치부리며 잘 먹고 놀았어요. 그럼, 그 6일만 본다면 나쁜 짓 하고도 잘 사는 거지요?” 법사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마치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이 생은 수없는 생 중에 단 하나에 해당합니다. 설사 어떤 사람이 부정부패, 혹은 남을 괴롭히고 악업을 저지르면서도 이 생에 문제없이 잘 살았다고 합시다. 그러나 어림없지요! 내일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내일 잡힐지 모레 잡힐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도 이 생에서 그 과보를 받는가, 다음 생에서 받는가의 차이 일뿐, 확실한 것은 한 치도 에누리 없이 다 받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세요? 내생이 있는지 또 받는지 아닌지.” “세상을 한번 보십시오. 온갖 정신적, 육체적 고통들, 또 가슴 찢어지는 끔찍한 사연들. 거사님, 윤회와 인과는 자연의 법칙이자 우주의 실상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셨고, 그대로 가르쳐주셨을 뿐입니다. 개인이 안 믿는다고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건 안 믿건 우주의 법칙은 그대로 정확하게 돌아갑니다.”
“그래서 사실상 이 세상에 죄는 단 한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네? 한 가지라니요?” “바로 모르는 게 죄, 진리를 모르는 무명입니다. 진실을 들어도 믿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이 법칙을 안다면 돈 주고 하라고 시켜도 안 할 거니까요. 예를 들까요. 여기 음식이 있는데 보기는 좋아 보이고 맛도 좋아요. 그런데 그 안에 독이 들어 있다면 거사님은 잡수시겠습니까?” “에이, 농담을요, 절대 안 먹지요!” “그와 같아서 자기가 하는 악한 일이 당장은 좋아 보이고 편해서 잠시만, 또 어쩌면 이 한 생 동안만 좋아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과는 내일 올지 모레 올지 모릅니다. 그러니 모르는 게 죄 아니겠어요?”
“법사님 말씀을 들으니 갑자기 무서워지는데요.”
“그러나 걱정 마세요. 업만 있는 게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나는 길도 법이자 진리입니다. 바로 진실한 참회와 마음 정진, 그리고 보시 등의 길이 있습니다. 업보와 짐을 다 벗어버리고 자유인으로 살며 서로 자비심으로 공생하며 사는 게 불교입니다. 아니 종교 이전에 그것만이 사람 사는 길입니다.”
S씨는 앞으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과의 법칙에 대해 공부해 보기로 했다. <천수경>을 사경하는데 유난히 한 구절이 가슴을 친다. “마음 비워 공하여야 이름 하여 진실한 참회라 하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