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에 갑산 웅이방 도하동에서 마을 훈장으로 살던 경허(鏡虛, 1849∼1912) 선사는 열반이 가까워 병이 들어 누워있었다.
수월(水月, 1855~1928) 스님은 여기 저기 물어서 마침내 스승 경허가 있는 곳을 찾아왔다. 해질 무렵, 서당에 도착하여 섬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짚신을 보자, 그는 스승의 짚신임을 알아보고 인사를 드렸다.
“스님, 안녕하십니까?”
안에 있던 경허 선사가 문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제자의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주지 않은 채 정색을 하고 물었다.
“누구요?”
“수월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 모르오. 사람을 잘못 찾은 듯 싶소. 그러니 가던 길이나 계속 가시오.”
“스님!”
경허 선사는 끝내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스승의 뜻을 알아차린 수월 스님은, 그냥 나올 수는 없어 스승에게서 배운 짚신 삼는 기술을 발휘하여 정성껏 짚신 한 켤레를 삼아 댓돌위에 올리고 고마움을 표하며 서당을 나왔다.
치열한 보림공부를 통해 ‘진제와 속제가 원융무애(圓融無碍)하게 둘 아닌 중도(眞俗二諦中道)’를 요달한 경허 선사는 말년에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으로 티끌세상에서 중생을 교화한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삶을 살았다.
위의 문답은 천장암에서 주장자를 꺾어 던져버리고 ‘저자거리에서 보살행을 하며 삶을 회향한(入廛垂手)’ 경허 선사와 그의 맏상좌 수월 스님과의 최후의 문답이다.
이 선문답은 “그대는 누구입니까?”라는 양 무제의 질문에 “모른다(不識)”라고 대답하고, 사후에 짚신 한 짝을 남기고 인도로 돌아갔다는 달마 대사의 선화(禪話)를 떠올리게 한다.
수제자인 수월 스님이 그토록 애타게 불렀건만, 경허 선사가 끝내 ‘모른다’고 한 뜻은 무엇이며, 수월 스님이 섬돌 위에 짚신 한 켤레를 삼아 올린 뜻은 과연 무엇일까?
경허 선사가 수월 스님을 ‘모른다’고 한 것은 제자를 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모른 척한 의도가 아니다. 이것은 식ㆍ불식(識不識)의 대립을 끊고 그 분별의식을 초월한 ‘모른다’이다.
언어나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소위 언려불급(言慮不及) 언어도단(言語道斷)한 각자의 본래면목을 직지(直指)한 말이다.
고정관념에 의한 성인과 범부, 유(有)와 무(無) 등의 대립적인 사고방식을 없애기 위하여 한 말이었다.
집착·분별에서 나오는 상대적 인식을 없애고, ‘경허’니 ‘수월’이니 하는 ‘이름과 모양(名相)’을 떠나야만 ‘모른다’고 대답한 달마와 경허 두 선사의 속내를 알 수 있다.
경허 선사는 마지막 순간에도 제자에게 ‘불식’의 가르침을 전하며 “가던 길이나 계속 가시오”라고 철저한 보림공부를 당부한 것이다.
스승의 뜻을 간파한 수월 스님은 짚신 한 켤레를 정성껏 공양하며 스승의 마지막 길을 전송한다.
그는 이러한 말없는 문답 그대로, 만주 송림산 화엄사에서 짚신을 머리 위에 이고 앉아 열반에 들었다.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을 그는 평생 참구했던 것이다. 김성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