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속이는 사회. 교육현장에서 이제 더 이상 거짓말이 통해서는 안 된다. 신정아씨의 가짜 학위 사건 이후 우리 사회는 ‘가짜 학력’이라는 초유의 바이러스에 집단 감염되어 너나 할 것 없이 신음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존경 받았던 인사가, 유명 교수가, 인기 연예인이 줄줄이 학력 허위를 고백하거나 의혹에 휩싸였다. 심지어 대규모 도심 포교당 성공 신화를 낳았던 스님마저도 학력 위조 바이러스 보균자임이 드러나며 모든 불자들과 국민들이 ‘가짜’와 ‘위조’ 사이에서 앓고 있다.
이 바이러스의 진원지는 동국대였다. 신정아씨의 가짜 학력이 지난 수십 년 간 우리 사회에 드리워져 있던 ‘비양심’의 뿌리들을 들춰내는 계기가 됐다. 물론 이 사건은 당사자들뿐 아니라 온 국민을 아프게 하고 있다.
동국대가 최근 이사회를 열어 학내 교직원 전원의 학력과 경력을 검증하기로 했다. 신정아씨 사건으로 세상에 망신을 톡톡히 당한 동국대이고 보면 이 같은 결정이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총장 산하에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전 교직원의 학력과 경력을 검증한다는 계획은 그나마 학교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검증을 얼마나 제대로 하여 학내의 청정도를 환기시키느냐 하는데 있다. 동국대는 이번 특별위원회의 구성과 활동 방향 그리고 결과들을 한 치의 숨김이 없이 공개하고 검증 진행과정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덮어주기나 축소 조장 등 ‘두 번째 화살’을 맞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사찰·종단의 재정 투명화 조건
가톨릭 서울대교구가 일 년간의 살림살이 규모와 내역을 공개했다. 종교계가 회계감사자료를 공개한 것은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종교계는 성역이라는 인식으로 재정의 사용처 등을 밝히는데 긍정적이지 못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종교계에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금씩 형성되어 온 터에 이번 가톨릭 서울대교구의 회계감사 결과 공개는 많은 해석을 가능케 한다. 종교단체의 회계감사 결과 공개는 신도들에 대한 의무의 일환쯤으로 보는 측도 있고 이 일을 과세의 가능성으로 묶어 가려는 측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논쟁에 앞서 불교계 현실은 어떤가? 사찰재정의 투명화는 최근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의 단골 공약이었다. 그렇지만 재정 투명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현재의 회계 시스템 점검을 하거나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위한 종책을 수립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형식에 가까운 종단 자체 회계감사로 투명화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시스템의 문제는 기술의 문제이므로 언제든지 보완 수정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재정 투명화와 관련, 불교계는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의지가 문제다. 스님과 신도들의 의지가 앞서지 않으면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니다. 거기에 종단차원의 제도가 뒷받침 되고 철저한 검증 절차가 도입되어야 한다.
사찰과 종단의 재정 투명화는 시대의 흐름이 아니라 불교계 자체의 도덕성과 청정성을 회복하는 자기구제의 사명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