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3. 7.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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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차(茶)의 전승(傳承)
인간은 늘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욕망으로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 간다. 빠르고 쉽게 변화되는 것 속에서 전통은 흔히 낡은 것, 지나간 역사쯤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통은 환경과 습관에 따라 변화되는 것으로 그 지역의 풍토와 정서에 어울리는 숨구멍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늘 옛 것을 그리워하며 집착하게 된다. 원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원형이 유지된다. 전통은 살아있는 역사가 아닐까.
한국의 음다풍(飮茶風)은 초의 선사 이후 각 사찰과 해남 대흥사에 기거했던 스님들에 의해 이어져 내려왔다. 초의가 평생을 보낸 대흥사는 우리 차 문화의 산실이다. 역사적으로 불우했던 시기 속에서도 우리의 차를 이어온 노력이 있어 우리 차는 아주 조용히 이어져 왔다. 응송 박영희(1892~ 1990) 스님은 1911년 출가하여 80여년을 대흥사와 인연을 맺었다. 그 당시는 초의 스님이 열반한지 45년, 범해 스님이 열반한지 10여년이 흐른 뒤라 대흥사에는 초의 다풍(茶風)이 살아 있었다. 응송 스님은 초의 문헌인 <동다송>과 <다신전>을 수집 정리하였으며 초의의 제다법과 차의 정신을 연구하였다. 김운학 스님은 “지금 우리가 초의를 이야기 하고 우리 차의 전통을 이야기하게 된 것은 응송 스님의 공로이다. <동다송>을 우리의 다경(茶經)으로 자랑하는 것도 응송 스님이 필사본을 보전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응송은 대흥사로 출가 전 어린 시절부터 소년의병 활동을 하는 등 항일 투쟁에 앞장섰다. 3.1운동을 맞이해서는 만해 한용운의 밀명을 전달하는 연락책을 맡기도 한다. 1937년부터는 대흥사 주지를 맡게 되고 그 이후 대흥사 아래에 있는 백화사(白化寺)에서 초의 선사의 문헌을 수집 연구하는 등 평생을 우리 차 전승을 위해 노력한다.
응송은 백화사에 기거하며 <동다송>과<다신전>을 번역하고 차에 대한 책을 저술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윤문(潤文)을 하게 된 이가 박동춘이다. 그 인연으로 백화사에 머물며 스님과 함께 시도 짓고 차나무를 삽지해 키우며 차를 만들기도 하였다. 응송 스님의 초의 스님 제다법과 문헌 연구는 계속되었으며 <동다정통고>를 통하여 제다와 그동안의 차에 대한 연구를 저술하게 된다.
응송 스님은 차를 우릴 때 물의 온도는 60~70도로 식히는 일반 다법이 아니라 95도 정도에서 순간적으로 우리는 열탕을 고수하였다. 이는 우리의 야생차는 본래 고온에 잘 견디며 일본종의 찻잎은 고온에서 문드러지기 때문이다. 우리 차는 제다 방법 및 우려마시는 방법도 다르다고 한 것이다. 79년에 인연이 된 박동춘에게는 무공(無空)이라는 호와 함께 다도 전수게(茶道 傳授偈)를 내린다.
다양한 역사 속에서 차 문화는 나라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대중화와 산업화라는 보편성 때문에 쉽고 간편한 획일적 사고로 차의 원형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때 전승된 전통 차 문화는 전략적 자원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창숙(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관심을 가져준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07-09-11 오전 10: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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