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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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복수보다 힘든 것
“복수심 내려놓고 자비심 키우세요”

“그 놈에게 꼭 복수해야 합니다.”
S씨가 험한 표정으로 말했다. 벌써 전과가 몇 번째인 그는 몇 년 전 지방 교도소 복역 도중 불교에 마음을 열게 되었다.
그 전엔 관심도 없었고 어쩌다 불교 책을 보면 한문이 많고 어려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좀 달랐다. 사십이 넘은 이제 더 이상은 이렇게 살기가 싫고 교도소 생활도 지긋지긋하였다. 그리고 불교상담을 담당한 법사라는 사람은 항상 기도해 줄 내용을 자상하게 물어보고 매일 자신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몇 년을 멀리서 일부러 자신을 보러 오면서도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필요한 것도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성의가 고마워서 약속대로 <반야심경>과 <천수경>을 사경하였다. 스님이 한글로 풀이하셨다는 내용이라 한문보다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였다.
처음에는 “전 글씨 잘 못쓰는데요” 하였지만 법사는 “진리의 말씀은 손으로 쓰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겁니다”라며 미소 지었다.
부처님은 쓰는 사람의 마음만을 보신다는 것이었다. 과연 부처님이 이런 곳에 갇혀있는 보잘 것 없는 나 같은 사람까지 아실까? 믿기는 어려웠지만 정성껏 쓰는 만큼 지어 놓은 업도 녹는다고 하니 감사한 일이었다. 결국 출소하면 마음잡고 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고민이 한 가지 있었다. 이번 일은 동료였던 사람의 배신으로 인해 잘못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억울했다. 배신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나가서 꼭 그 원수는 갚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면 또 들어오게 될 것이고, 바르게살기로 법사님과 약속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이 되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 상담 시간에 털어놓기로 했다. 사정을 말하고 “복수해야지요, 저도 사나이인데! 그리고 사람 하나 손보는 것 뭐 누워서 떡먹기입니다. 제가 이래 뵈도 운동을…” 하였다.
약간은 자랑스럽게 얼마나 험한 일도 했었는지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법사는 조용히 “복수는 쉬운 일이지요” 하는 것 아닌가. “법사님, 쉬운 건 아닙니다. 상대가 만만하지 않거든요.”
법사는 정색을 하고 “그래도 당한 만큼 돌려준다, 복수하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어요. 짐승도 때려 보세요, 가만히 있나요.” 생각해 보니 그렇기는 했다. 법사는 “증오하는 것도 쉬워요. 당하면 누구나 상대를 미워하니까요. 그러나 그러면 영원히 그 업에 묶이는 겁니다. 증오나 복수는 돌고 돌게 됩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부처님 말씀이 같은 인연끼리 끼리끼리 만난다고 하셨어요.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 이제까지와 달리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업이 변하게 됩니다. 바르게 살고 싶으면 마음을 바르게 바꾸어야 합니다.” “어떻게요?”

“복수보다 백 번 천 번 힘든 게 뭔지 아세요?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주는 거예요.”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증오심이 가득한데 어떻게 용서하며 하물며 기도라니. “전 못하겠어요.” “그래요, 아직 못하시겠지요. 불자가 된다는 것은 몸싸움과는 비할 수 없이 힘든 마음싸움을 하는 거예요.” 몸싸움이라면 자신 있는데 마음싸움이라니 그런 건 생각 못했었다. “부처님을 비롯해서 모든 스님들과 불자들은 바로 힘들고 어려운 자기 자신과의 싸움, 마음싸움을 해 온 분들입니다. 바른 길을 가기위한 싸움, 업을 바꾸려는 정진이지요. 몸의 근육도 단련하면 강해지듯이 마음도 마찬가지로 노력할수록 정법의 힘이 강해집니다.”
그날 밤 기도하며 S씨는 복수는 진짜 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의 힘보다 더 무서운 게 있으니 바로 부처님 마음의 힘, 자비로구나 하는 생각에 놀랐다. 아직 자신은 없지만 앞으로 난생처음 바른 마음의 힘을 한번 길러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7-09-10 오후 5: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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