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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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 스님(1)
어느 날, 수월 스님이 만공 스님과 한담을 나누다가, 숭늉 물그릇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이 숭늉그릇을 숭늉그릇이라 하지도 말고, 숭늉그릇 아니라 하지도 말고, 한 마디 똑바로 일러 보소.”
만공 스님이 문득, 숭늉그릇을 들어 밖으로 집어던지고 묵묵히 앉아 있으니, 수월 스님이 “참으로 잘 하였소” 하고 찬탄하였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수월(水月, 1855~1928) 스님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머슴살이로 지냈기에, 글을 읽지 못했다. 29세 되던 어느 날, 탁발승을 만나 밤새워 이야기를 듣고 인근 서산군 천장암으로 출가하였다. 그때 천장암에는 경허(鏡虛) 스님의 형인 태허(太虛)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어머니를 모셔다가 봉양하고 있었다. 경허 스님은 간혹 어머니와 형이 있는 천장암을 오가고 있었다.
스승 경허 스님은 수월 행자에게 천수다라니를 외우도록 하였다. 수월 스님은 33세 되던 해 겨울 동안 천수다라니 정진으로 불망념지(不忘念智)를 얻어 심지(心地)를 깨닫고는 경허 선사의 법을 이었다. 이때부터 스님은 한번 보거나 들은 것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지혜를 얻고 잠이 없어졌다고 한다.
뒷날 만공(滿空) 스님이 입산하고 혜월(慧月) 스님이 사미로 들어왔는데, 천장암에서 이렇게 만난 ‘경허의 세 달’은 “수월이 북쪽, 혜월이 남쪽, 만공이 가운데에 남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경허 선사의 수제자인 수월 스님은 위의 법문담을 나눈 뒤에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 뒤 만공 스님과 다시는 만나지 못하였다.
위의 공안에서 수월 스님이 만공 스님에게 던진 질문은 “진실에 접촉해도 틀리고, 배반해도 잘못된 것(背觸公非)”이 되고 마는 진퇴양난의 공격이 아닐 수 없다. 숭늉 그릇이라고 하는 ‘이름과 모양(名相)’이란 올가미에 걸려들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순간, ‘흙덩이를 쫓는 개(韓 逐塊)’가 되고 만다. 언어와 생각을 떠나 막다른 골목에서 살아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선(禪)은 철저히 상대적 개념의 세계를 떠난 자리에서 모든 것을 보고 말하고 행동한다. 만공 스님 역시 이론이나 개념을 초월해, 자기와 숭늉그릇이란 주ㆍ객을 모두 잊은 채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경지를 묵묵히 말없는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같은 사자굴에 사는 사자 새끼임을 증명하였다.
이 공안은 물병을 발로 찬 선문답으로 대위산의 주인이 된 위산영우 선사의 법문답과 유사하다. 위산 스님은 처음 백장 스님 문하에서 전좌(典座)를 맡고 있었다. 백장은 대위산의 주인을 선출하려고 물병을 들고 땅위에 놓으면서 물었다.
“물병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너희들은 무어라고 부르겠느냐?” 수좌가 말했다. “장작이라 불러서는 안 되지요.” 백장이 이번에는 위산에게 물었다. 위산은 물병을 발로 차버리고 나갔다. 백장은 웃으면서 “수좌가 촌놈에게 졌다”고 말하며 위산을 개산조로 삼았던 것이다. 김성우 객원기자
2007-09-10 오후 5: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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