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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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노인은 몸으로 듣는다
노인층 인구가 많아진 탓이겠지만, 근래 들어 노인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고령에 따른 신체의 자연 노쇠현상, 거기에 더해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이 겹쳐지면, 그 치료가 결코 쉽지 않아서다. 해서 요즘 중풍(뇌졸증, 뇌경색)이나 치매와 같은 신체적, 정신적 불구상태에 이르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알다시피 지금은 핵가족 시대. 와병(臥病)상태의 어르신들을 가족이 돌보아 드리는 일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 힘들고, 버거운 일이다. 이럴 경우 흔히 가족들은 노인 환자를 노인 병원에 맡겨 버리고, 가끔씩 문병을 오곤 한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병원에서 일정 처방을 받고, 집에 그냥 방치하다시피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엔 정부의 정책지원으로 요양 개념의 병원이 늘어나고, 병원 문턱도 낮아져 입원여건이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노인 환자들을 진료하는 필자로서는 그들 가족과 상담하는 경우가 잦다. 가족들은 환자에 대한 적정치료 여부, 그리고 그 경과에 대해 궁금해 한다. 간단한 상담 후 가족들은 환자와 잠깐 면회도 갖는다. 그 후 대부분의 가족들은 간헐적으로 면회를 올 뿐, 생업에 바빠서인지 자주 면회를 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
상당수의 노인 환자들은 질병의 특성상 표현력이 부족하고, 생각도 더디고, 모든 게 둔하다.
청력 손상이 심한 환자는 거의 벙어리 신세다. 자발적 보행은 물론 대소변도 제대로 못 가리는 경우가 많다. 의사소통이 잘 안되니, 가족들이 와서도 그리 오래 머무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 점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나 장기간 입원을 하면서도, 가족들의 방문이 아주 뜸한 노인 환자들을 보노라면 병원이 또 다른 현대판 고려장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가족들로부터의 ‘자연스런 소외’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의사로서 어떻게 대처하는 게 바람직할까? 내 임상 경험으로는 아무리 심한 치매 노인일지라도, 환자를 ‘무시’ 하는 태도는 무지에서 오는 것 같다.
어느 치매환자가 행동과 정서가 아주 소란스러워, 일인 병실로 잠시 옮겨졌다. 간병인도 잠시 바꿔졌다. 한데 ‘환경’이 낯설어선지, 그런 증상들이 더욱 악화되었다.
약물로도 쉽게 안정을 시킬 수가 없었다. 다시 원래 병실로 돌아와 타 환자들과 함께 있게 하고, 친근하게 지냈던 본래 간병인의 손에 다시 맡겨지게 했다.
힘은 더 들었지만, 다독여 주고 받아주는 행동을 보여 주자 얼마안지나 안정을 되찾았다. 인식 기능이 거의 다 퇴화되고, 어린애 같은 심성으로 자아 통제가 안 되던 노인이 간병인의 친숙한 목소리와 손길이 다가오자 부지불식간에 그걸 느꼈기에 안정을 되찾았던 것이다.
아마 옆에 믿을 만한 친근한 가족이 있었더라면, ‘있음’ 그 자체만으로도 더 나은 무언(無言)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 하나, 치매환자가 비록 생각이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진 못해도, 기본적인 ‘느낌’은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인식기능이 아무리 황폐해지고, 감정이 없어 보이는 노인 환자일 경우라도, 감각과 영혼은 살아 있다는 인식을 우리 모두가 가져 봐야겠다는 거다. 생생하게 살아계실 적의 마음은 아니더라고, 담담하게 지켜드리는 태도. 어디까지나 품위 있는 인격체로서 대해주고, 임종을 맞을 때까지 따뜻한 마음으로 가까이 있어 주어야겠다는 것이다.
말보다 따뜻한 관심과 손길. 포옹도 해주며 손목도 살며시 잡아준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가족 상황도 간단히 말로 전해준다. 그러면 치매의 그 어르신은 몸으로 다 알아 듣는다. 그래서 될수록 자주 병문안을 드리는 게 좋다는 것이다. 당신은 여름 휴가동안 병상에서 외로움과 싸우는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 했는가?

신승철 클로버 병원장
2007-09-05 오전 11: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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