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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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 스님(3)
만공(滿空, 1871∼1946) 선사가 묘향산에 있던 한암(漢巖, 1876∼1951) 선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우리가 이별한 지 10여 년이나 되도록 서로 거래가 없었도다. 구름과 명월과 산과 물이 어디나 같건만, 북녘 땅에는 춥고 더움이 고르지 못할까 염려되오. 북방에만 계시지 말고 걸망을 지고 남쪽으로 오셔서 납자들이나 지도함이 어떠하겠소?”
한암 스님은 만공 선사에게 이렇게 답했다. “가난뱅이가 묵은 빚을 생각합니다.”
만공 선사가 다시 답했다. “손자를 사랑하는 늙은 첨지는 자연히 입이 가난하느니라.”
한암 스님이 다시 답했다. “도둑놈 간 뒤에 활줄을 당김이라.”
만공 선사가 다시 답했다. “도둑놈 머리에 벌써 화살이 꽂혔느니라.”
만공 스님이 한암 스님에게 남쪽으로 내려와 후학 양성에 나서달라고 청하자, 한암 스님이 선문답으로 사양하는 장면이다. 한암 스님은 가난뱅이가 묵은 빚을 생각할 정도로 지독하게 가난하다고 정색을 한다. 마음이 가난해져 ‘일체의 분별심을 텅 비워버린 경지(身心脫落)’여서, 한 마디도 설할 법이 없다는 자부심이 묻어난 말이기도 하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저희 것이요”라는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듯이, 선가에서도 마음이 가난함을 미덕으로 여긴다. 대표적인 법문이 향엄 선사의 게송에 보인다.
앙산 선사가 향엄 스님이 기왓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는 순간 깨쳤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서, “네가 다다른 심득(心得)의 경계가 어떠하냐?”고 물었다.
이에 향엄 스님은 “작년의 가난은 가난이 아니고, 올해의 가난이 진짜 가난이다. 작년 가난은 송곳 세울 만한 땅은 있었지만, 올해엔 송곳조차도 없네”라는 게송으로 답했던 것이다.
<맹자>에는 “마음을 기르는 것은 욕심이 적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養心莫善於寡欲)”는 말이 있듯이, 소욕지족(少欲知足)은 마음공부의 기본이다. <유교경>에서는 “만일 모든 고뇌를 없애고자 한다면 마땅히 지족(知足)을 관해야 한다”고 했고, <법구경>에서는 “지족은 제일의 부(富)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이 같은 한암 스님의 가난뱅이 타령에, 만공 스님은 “할애비가 비록 가난하더라도 손자를 아끼듯이 후학들을 지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그친다.
그러자 한암 스님은 “(내 뜻은 이미 밝혔으니)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들지 마시라”고 한 방 먹인다. 만공 스님 역시 선지식인지라 고이 보내줄 리 없다. 도둑놈 심정은 도둑놈이 가장 잘 알기에, ‘그대의 본래면목에 화살을 적중시켰다(以心傳心으로 뜻이 통했다는 의미)’고 되받아친다. 장군멍군이요 피장파장이다.
선가에서는 ‘천하와 우주를 훔치는 위대한 작가 선지식’을 도둑놈이라 표현한다. 자아의식과 분별심, 번뇌 망상을 텅 비운 무심도인은 만법과 하나가 된 경지에 살기에 우주만유를 자기 것으로 만든 도둑으로 상징한다. 불법을 완전히 체득하기 위해서는 천하를 훔치는 대도(大盜)의 기질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김성우 객원기자
2007-09-05 오전 10: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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