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승당으로 되돌아 온 후에는 고요하고 묵묵히 하여 처음과 같이 하도록 하라. 일을 할 때나 좌선을 할 때나 동정(動靜)의 두 모습이 여일(如一)하게 같아야 하며, 당체(當體)는 일체의 경계에 초연해야 한다. 비록 종일 노동을 하였지만 아직 노동하지 않은 것과 같이 해야 한다.(中峰明本, <幻住淸規>,<續藏經>제111권, p499)
위에서 말하고 있는 보청의 내용으로 미루어 선종의 선농겸수를 위한 정신적 자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전심전력을 다해 노동에 임해야 한다. 선종에서의 노동은 생활이자 수행이므로 전력을 다해 참여해야 한다. 절대로 일의 경중을 논하지 않고, 일의 많고 적음을 시비하지 않고, 일을 함에 힘이 들고 힘이 덜 들고를 따지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둘째 노동을 피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일과 수행을 일치시켜야 한다. 즉 좌선수행을 핑계로 노동을 회피해서는 안 되며, 노동과 수행을 하나로 일치시켜 노동 그대로가 수행이 되게 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을 할 때에도 좌선하는 것과 똑같이 마음을 다잡아 행동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자랑과 과시를 해서는 안 된다. 즉 노동을 함에 있어 승벽심(勝癖心)을 가지고 자랑하거나 능력을 과시해서도 안 된다. 항상 상하 대중이 화합된 모습으로 보청에 임해야 한다.
넷째 대중과 함께 노동해야 한다. 선종의 보청은 단순히 일하기 위한 작무(作務)의 수준을 넘어서서 수행생활과 경제적 자립의 당위성이 담보되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대중이 함께 하는 노동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보청시에는 방장으로부터 행자에 이르기까지 전체 대중이 참석함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다.
다섯째 동정이 여일(動靜如一)해야 한다. 노동의 움직임과 좌선의 고요함이 둘이 되어서는 올바른 수행이 될 수 없다. 행주좌와의 사위의(四威儀) 가운데서 항상 여일한 공부를 지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노동을 함과 하지 않음이 여일(如一)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위의 내용에 입각해서 보면 선종의 노동을 ‘중도노동(中道勞動)’이라 명명할 수 있겠다. 중도노동은 당연히 중도정관(中道正觀)의 수행과 깨달음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도노동의 정신적 자세로 선농(禪農)을 병수(幷修)함으로 해서 선종 특유의 농선(農禪) 가풍을 수립하게 되어 훗날 선종이 외부의 충격(法難)으로부터 자종(自宗)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보청에 의한 선농병수의 가풍은 이후 오가칠종(五家七宗)의 분등선(分燈禪)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유전되고 있다. 실제로 조사선 시대에 수행생활은 그대로가 선농겸수의 선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사의 어록이나 공안에서 이러한 사상적 맥락이 그대로 녹아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위앙종( 仰宗)의 위산( 山)과 앙산 (仰山)의 선풍에서는 수많은 농선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논밭에서 김을 매고 차를 따는 노동선(勞動禪)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앙산 스님이 밭에서 돌아오니 위산 스님이 물었다. “밭에는 몇 사람이나 일하던가?”
앙산 스님이 삽을 놓고는 차수(叉手)하고 서자 스님께서 말했다. “오늘 남산에서 많은 사람들이 띠풀을 베더라.”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이 순덕 스님에게 물었다. “위산 스님이 말하기를, ‘남산에서 여러 사람이 띠풀을 벤다’라고 한 뜻이 무엇입니까?
순덕 스님이 대답했다. “개가 왕의 사면장을 물고 가니, 신하들이 모두 길을 피한다.” (< 仰錄>, 禪林古鏡叢書, 藏經閣, p98)
위산 스님께서 앙산 스님과 차밭에서 운력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소리만 들리고, 그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구나. 나와 보아라. 보고 싶구나.”앙산 스님이 차나무를 흔들어 대답하니, 스님께서 말했다. “용(用)만 얻었고, 체(體)는 얻지 못했다.” 앙산 스님이 도리어 물었다. “저는 그렇다 치고 스님께서는 어떠십니까?”
스님께서 한참 잠자코 있으니, 앙산 스님이 말했다. “스님께서는 체(體)만을 얻었고, 용(用)은 얻지 못했습니다.” 이에 위산 스님께서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20방망이는 맞아야 되겠구나.”(上同, p33)
한 뙈기 새밭 개간하여
한 웅큼 곡식 심었네.
고개를 들어 한가하게 바라보니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르러라.
낮이면 밥 먹고
밤이 되면 그저 잠잘 뿐이네.
피곤하면 다리 뻗고 쉴 뿐이니
모든 것이 만족하여라.
팔구월이 돌아오면
울타리 그득하게 노란 국화 피어 있으리.(上同, p125) 위의 예에서 보듯이 논밭을 개간하고, 곡식을 가꾸고, 풀을 베고, 차(茶)를 만들고 하는 일은 선문의 다반사라 농선(農禪)의 전통이요, 노동선(勞動禪)의 일상이라 할 수 있다. 평상심이 그대로 도가 되는(平常心是道) 이런 의미의 선농겸수의 가풍은 임제종(臨濟宗)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볼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