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일본 TV 방송사에서 한국의 차 문화를 방송하기 위해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로 인터뷰 요청이 왔다. 내용은 한국 전통 차에 대한 것으로 첫 질문이 ‘한국에서 다도(茶道)는 어떤 것인가’였다. 우리는 우선 차 한 잔을 건넸다. “우리 차 한 잔 드시지요. 좀 뜨겁지요?”라고 말을 건네자 그들은 ‘일본의 차 맛과는 다르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한 잔의 차 맛이 다른데 어찌 다도가 같을 수가 있겠는가.
사실 한ㆍ중ㆍ일 모두 다도(茶道)가 있다. 차 마시는 것을 도(道)로 발전시킨 것은 중국의 다인(茶人)들이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에 전파 되면서 그 나라의 풍속에 맞게 토착화되었다. 한국은 일찍부터 차를 마시는 풍속이 있었으나 그것을 다도라 부르지는 않았다. 고승이나 문인들은 차를 마시며 시를 노래하고 세상 근심을 잊으려 했고, 맑은 정신을 추구했으니 이것이 한국의 다도가 아니겠는가. 추사 김정희도 차를 마시고 난 후의 최고의 경지를 ‘전다삼매(煎茶三昧)’라는 시로 남겼다.
‘고요히 앉아 선경(禪境)에 드니 반나절이 지나도록 차 향기 처음처럼 피어난다. 신묘함이 일어나(妙用時) 물 흐르고 꽃이 피듯….’
차를 마시고 난 후 삼매의 경지를 표현한 것으로 이것이 바로 차의 정신세계인 다도에 이른 것이다. 초의 선사가 <동다송>에서 다도(茶道)에 대해서 말하길, 차를 딸 때는 오묘함을 다해야 하고, 만들 때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 물은 진수(眞水)를 얻어야 하고 차를 우릴 때는 물과 차가 서로 조화로워야 차의 진실함과 정기가 서로 어우러지니, 이와 같아야 다도가 지극하다고 할 수 있다. 이후에 차 한 잔을 기울이니 겨드랑이에서 바람이 일고 몸이 가벼워져 이미 신선의 세계를 난다고 하였다. 초의 선사는 차를 통하여 자연과 하나가 된 세계를 경험하려 하였다. 이것이 한국의 다도(茶道)이다. 불교의 근본사상인 중도(中道)를 바탕으로 다선일미(茶禪一味) 정신을 실현하여 전통적인 선림(禪林)의 다풍(茶風)을 체득하고자 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중정(中正)의 상태가 도(道)이며 이것을 다도(茶道)라고 한 것이다.
한국의 다도는 일정한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시원한 산과 맑은 물 같은 자연환경 속에서 차 한 잔 마시는 것을 즐기니 이것이 한국인의 정신세계요, 자유로운 기질이다. 무질서가 아니라 우주의 질서요, 자연과의 동화이다. 종교인에게 다도는 수행의 방편이고 예술인에게는 승화의 경지를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생활인에게는 자기를 지키려는 참모습일 것이다. 이처럼 차는 하나의 정신의 음료이며 자기 수행을 위한 매개물이다.
요즘 삶의 방식이 다양해짐에 따라 차를 마시는 방법도 다양해졌으니 다도 역시 좀 변화된 듯하다. 하지만 본래 다도란 일정한 형식이 없다. 공부하는 수험생에게 한 잔의 차가 잠을 깨우고 집중력을 주었다면 이것이 도(道)요, 정성스럽게 우린 차가 상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면 이것이 도(道)가 아니겠는가.
일찍부터 차가 지닌 성품을 군자와 같다고 한다. 아무리 차의 본성이 군자와 같다지만 정성이 담기지 않은 차는 그 본성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좋은 차, 좋은 물,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이 오늘날의 다도인 듯하다.
■이창숙(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