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은 194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같은 해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는 지금까지 첫 시집 <만월> 이후 모두 11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그는 초기에 짧은 운문시를 주조로 써왔으나 최근에 이르러 이야기가 담긴 짧은 산문시로 긴장과 인식에 이르는 독특한 시 어법을 창안하여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이를 단형산문시라고 부르고 싶다. 이번 시집에는 창작자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다른 사람의 글이나 기사에서 인용하거나 일화를 차용한 것들이 많다.
그의 시에 외국인 노동자, 수녀, 시인, 탐험가, 화가, 소설가, 정치가, 과학자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염소, 양, 펭귄, 다람쥐, 고양이, 거북이, 강아지, 삵, 야크, 고라니 등이 등장한다. 봄동을 비롯한 식물에서 음식, 레바논에서 카슈미르까지 외국의 지명과 전쟁과 정치 일화를 시에 차용한다.
시인은 이러한 인유의 방법을 통하여 환경, 생태, 정치, 인권, 노동, 연애, 인생을 주제로 드러낸다. 그리고 불교적 제재를 채용한 시도 몇 편 발견된다.
달라이 라마께서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중국의 한 감옥에서 풀려난 티베트 승려를 친견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심했느냐는 물음에 승려가 잔잔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고 한다. “하마터면 저들을 미워할 뻔했습니다.” 그러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승려의 두 손이 가만히 떨렸다.
-‘친견’ 전문
정치범으로 감옥생활을 한 승려가 자신을 억압한 중국 당국을 미워할 뻔했다는 것에서 성직자의 초월적인 용서와 넓은 아량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의 초점은 용서가 아니다.
자신을 억압한 저들을 용서한다고 하면서도 손이 가만히 떨렸다는 것이다. 누가 성내어도 성냄으로 갚지 말고 악에 대하여 악한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 부처님을 따르는 성직자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성직자라고 해서 누구나 다 부처님의 경지에 근접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용서를 했다면서 손을 떠는 승려를 통해 인간성을 초극하려는 승려의 긴장과 시의 긴장을 맛보게 된다.
그의 시에는 충북 청원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고 떠나는 이들을 보살피는 스님 이야기가 나오고(‘어느 스님’), 유마거사의 말씀도 나오며(‘가지런히’), 개심사 가는 길에 만난 덤 불 속에서 수북이 빛나는 똥 무더기(‘미소’)를 만난다.
그리고 다음 시와 같이 히말라야 산록에 있는 아름다운 사원 봄 풍경을 그리기도 한다.
봄이 되자 히말라야 산록의 야생 영양 네 마리가 치리겐타 사원(寺院) 근처까지 내려와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겨울 동안의 수염을 깨끗이 밀고 마당에 나와 비질하는 어린 스님들의 이마에도 작고 새파란 뿔들이 돋아 있는 것이 아닌가. 설산을 녹이고 흘러온 거울 같은 계곡의 물결 위로 이따금씩 팔뚝만한 송어가 뛰었다.
-‘사원 근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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