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앗!’
J씨는 식은땀을 흘리며 꿈에서 깨어났다. 최근 들어 자꾸만 반복되는 똑같은 악몽이었다. 꿈속에서 그는 힘이 세고 싸움을 잘 한다. 사람들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무자비하게 칼로 마구 찌르고, 그들이 죽는 것을 보고 미소까지 지으면서 만족해한다.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꿈을 깨고 나면 끔찍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질색인데, 더구나 쾌감과 잔인한 마음까지…. 벌벌 떨릴 지경이었다. 도무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J씨는 평소 폭력을 싫어했다. 그런데 내 속에 이런 악한 마음이 있었단 말인가. 더군다나 청년시절부터 사찰에 다닌 자신이 아닌가.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지는 못할망정 이게 웬일인가?
왜 사십이 넘은 지금에 와서 이런 꿈을 꾼단 말인가. 아내가 “여보, 당신 요즘 가위 눌리는 것 같은데요?” 했지만 꿈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악한 습성이 남아 있거나 전생에 악한 일을 한 것 아니냐고 할 것 같아 두려웠다. 사흘이 멀다 하고 악몽이 계속되며 석 달이 넘어가자 그의 얼굴에까지 짙은 그림자가 생길 지경이었다. 그는 잠자는 것이 무서웠다.
마침내 스님께 털어놓으며 “이런 악한 꿈을 꾸니 업장 소멸 기도나 참회를 해야겠지요?”하고 물었다. 뜻밖에도 스님은 “왜 그 꿈이 나쁘다고만 생각하세요?” 하시는 게 아닌가. 멍해졌다. “거사님, 지금 입장으로만 생각하면 악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 생 뿐 아니라 과거에 수없이 많은 생을 살아왔어요. 생각해 보세요. 인간 역사에 동서를 막론하고 전쟁 없는 때가 있었나요. 더구나 예전에는 인권이나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잖아요. 전쟁이 나면 잘 싸우는 사람이 영웅이 아닙니까? 거사님도 예전 한 때 전사였다고 생각하세요. 부처님법도 몰랐을 테고, 그래야만 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 때에는 적국의 사람들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었고, 내 가족과 내 민족이 사니까 양심의 가책이 있을 리가 없지요. 다 인간 의식이 발달하지 못한 탓이지 거사님 탓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꿈속의 자신을 악하다고 하지 마시고 그냥 인정해 주세요.” “왜 계속 꿈에 나올까요.” “업식이 남아 있었겠지요. 싫어하고 두려워하면 더 계속되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게 중요해요. 그대로 인정해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J씨의 마음에서 마치 먹구름이 걷혀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 예전에 몰랐을 때의 내 모습이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 잘 싸우는 것이 최고였겠지, 그게 살아남는 길이고 애국이었어, 내 가족을 지키는 길이었고. 악한 게 아니다. 그렇게 마음이 펴지자 얼굴도 확 펴지는 것 같았다.
집에 가니 아내가 “당신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었어요?” 한다. 속으로 ‘그래, 악몽이 악몽이 아니었어!’했다. 살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그건 나쁜 꿈이다’에서부터 ‘괜찮다’로 바뀌자 믿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편해졌다.
그 날 밤도 같은 꿈이었지만 깨어서는 편하게 생각했다. 나쁜 꿈이 아니다. 괜찮아! 그러자 날아갈 것 같이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까 저절로 그 꿈이 사라져 버렸다. 몇 달 후 또 한 번 같은 꿈을 꾸었으나 더 이상 J씨에게는 악몽이 아니었다. 이젠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석 달을 끙끙 않았었는데…, 똑같은 꿈에 대해 생각 하나를 바꾸자 완전히 딴 세상이더군요.” 이거구나! 바로 이 말씀이구나. “한 생각에 수미산만한 업을 지을 수도 있고, 부술 수도 있다. 막히게 하는 것도 뚫리게 하는 것도 오직 자기 마음이다.”
J씨는 부처님께 감사하며 한 생각을 잘 다스려야 하는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