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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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무착의 전삼삼 후삼삼

천봉오리는 굽이굽이 짙푸른데
千峰盤屈色如藍
어느 누구가 문수와 말을 했다는가
誰謂文殊是對談
우습다, 청량산에 수도승이
堪笑淸凉多少衆
저기 셋 여기 셋이라니
前三三與後三三 ―원오 극근

위의 선시는 <벽암록> 35칙에 ‘문수전삼삼(文殊前三三)’ 공안에 대해 원오 극근의 게송이다. 이 선화의 주인공인 무착 문희(無着文喜, 820~899)는 앙산의 제자며 성은 주씨라고 <전등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날 무착이 오대산에 간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하룻밤 그 절에서 신세를 지게 된다. 그 때의 문답이 <벽암록>35칙 본칙(本則)이다. 무착은 이 선화를 학인 지도하는 수시(垂示)로 썼다고 한다.
문수보살이 무착에게 물었다. “여기 오기 전에 어디 있었나?” “예 남쪽에 있었습니다.” “요즘, 남쪽의 불법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말법의 비구는 계율을 받드는 자가 조금 있습니다만.” “그래 그 계율을 받드는 자가 얼마나 되나?” “아마 300에서 500명 정도 될런지요.”
이번에는 무착이 문수에게 물었다.
“이곳에서는 불법이 어떻습니까?” “깨달은 자도 평범한 자도, 용도 뱀도 다 함께 뒤범벅이지.(凡聖同居 龍蛇混雜)” “수행자는 얼마나 됩니까?”
그러자 문수가 대답했다. “저기 셋, 여기 셋 정도지.(前三三後三三)”
(<벽암록> 35칙 ‘文殊前三三’)
우리는 이 선화에서 “수행자가 얼마나 됩니까?”하는 무착의 질문에 “전삼삼 후삼삼”이란 문수보살의 대답을 듣게 된다. “여기도 셋, 저기도 셋”은 과연 어느 정도, 얼마나 많은 수란 말인가? 우리는 언제나 ‘얼마’란 말, 곧 다소(多少)에 대해 길들여져 있다. 10명이냐? 100명이냐? 우리는 항상 ‘흑/백’의 판가름의 세계에 살아왔고, 이항대립적인 가름에 답을 선택하게 하였고 또 선택해왔다. 그러나 이런 사유에 던져지는 벽력같은 말 “저기 셋, 여기 셋 정도” 무언가 정답이 없는, 정답을 내기위한 정신작용에 문제가 생기므로 오는 멍청함. 여기에 우리는 사량(思量)하는 잣대를 잃는다. ‘전삼삼 후삼삼’은 일반적으로 ‘범인과 성인이 동거하고, 용과 뱀이 뒤엉켜서(凡聖同居 龍蛇混雜)’ 여기 한 무리, 저기 한 무리 무리지어 있다 쯤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여기서는 문수가 일깨우고자 하는 것, 곧 우리를 자성본원으로 계합시키려는 음흉한 의도가 숨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벽암록> 본칙은 여기서 끝나지만, 평창에 의하면 문수보살이 무착에게 차를 대접했다. 이때 그 다기를 가리키면서 문수가 무착에게 물었다.
“그래, 남방에도 이런 게 있는가?” “아니, 없습니다.” “그럼 뭣으로 차를 마시나?”
이 질문에 무착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얼마 후 무착은 문수에게 하직을 고하고 떠나게 되었는데, 문수가 동자를 시켜 산문까지 전송해 주었다. 도중 무착이 동자에게 물었다.
“아까 문수께서 전삼삼 후삼삼이라 하셨는데, 그건 대체 몇 사람을 말하는 걸까요?”
그러자 동자는 대답대신 갑자기 무착을 불렀다. “스님!” “네!” “그건 몇이나 됩니까?” 이쯤 되면 앞의 게송의 뜻이 다가올 것이다.
3행과 4행에서 “청량산 수도승이/저기 셋, 여기 셋이라니”이라 대답한 의도, 역시 잠자코 있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 없지 않은가. 1행과 2행은 ‘평지에 풍파가 일어난 격’이다. 1행은 오대산의 전경을 그렸고 2행의 “어느 누가 문수와 대담을 했다고 하느냐?(誰謂文殊是對談)”는 오대산 전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문수인데, 무얼 가지고 문수와 대담을 했다 하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동자는 무착을 부른다. ‘네’ 하는 대답은 자성본원에서 자발광하는 음성적 파동태이니, 이것을 몇 명이라 따져 ‘흑/백’을 구분해서 대답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이러한데, 그 따위 터무니없는 수작을 하는 게 누구냐? 오대산 도처에 문수가 있지 않은가. 정말 문수를 만났다면 ‘전삼삼 후삼삼’ 같은 수작을 할 턱이 없다.
아는가? 알았다 해도 우리는 나무아래에서 잘 생각해 볼일이다.
2007-07-25 오후 5: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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