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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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심’ 으로 노동금지 계율 극복
혜능의 선사상을 계승한 마조(馬祖)는 이른바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고 주장하고, 일상생활의 견문각지(見聞覺知)를 떠나지 않고 해탈하는 생활선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혜능과 마조의 생활선사상과 사원경제의 요구에 의해 백장(百丈) 시대에 와서 부득불 기존의 율사(律寺)로부터 독립한 선종 독자의 교단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선종이 명실상부한 고유의 독립된 종파로 거듭남으로 해서 거기에 수반되는 의무가 바로 경제적 독립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일정 부분 단월들의 후원으로 유지 운영하던 교단의 살림살이를 독자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청규(淸規)’를 제정하고, 그 청규에 의한 ‘보청법(普請法)’을 실시하여 노동생산에 종사하게 된 것이다.
백장은 “마조문하에서 수행할 때도 대중들과 똑같이 행동하였고, 노동에도 문도들과 함께 어렵고 힘든 일을 같이 하였다”(<懷海禪師塔銘> <大正藏>제48권, p1256下) 라고 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청규에 의한 보청법을 실시하기 이전에 이미 대중이 함께 하는 노동운력을 친히 실천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백장의 이러한 노동정신이 훗날 총림의 방장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일하지 않으면(一日不作),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食)”는 경구로 대중을 경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일일부작, 일일불식”은 선종 청규의 만고 방양이 되어 지금도 선문의 준칙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백장이 청규에 의한 보청법을 실행한 그 의의를 몇 가지 들어보자. 첫째 선종교단의 독립이라 할 수 있다. 종래에 독립된 사원을 갖지 못하고 율종 사원에 공생(共生)함으로 해서 선종 특유의 가풍을 진작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선종이 독자적으로 독립함으로 해서 선종 가풍에 맞는 자주적 생활과 수행을 할 수 있었음은 선종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둘째 사원경제의 독립이다. 기존의 방식에 의해서는 교단의 자율적 유지와 운영이 용이하지 않았다. 선종이 독립하여 선원청규에 의한 보청법을 실시함으로 해서 다소 청빈(淸貧)의 고난은 감수해야 했겠지만 자급자족(自給自足)의 자율경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율적 경제의 기반은 이후 당무종(唐武宗)의 회창법난(會昌法難)에도 여타의 종파와 달리 면역력을 발휘하여 타격을 최소화 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선종이 신속하게 발전하는 터전을 마련하게 된다.
셋째 생산 노동을 의무적으로 제도화(制度化)함으로 장차 선종의 수행 가풍이 선농겸수(禪農兼修)의 생활선(生活禪), 대중선(大衆禪)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노동과 수행의 병수(幷修)에 그친 것이 아니라, 노동 그 자체가 그대로 수행으로 승화되어 수행과 깨달음의 역동성(力動性)으로 발전시키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백장은 종래의 출가 사문의 생산노동 금지의 계율과 사상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묻기를, “풀을 베고 나무를 자르며 땅을 개간하는 일은 죄가 되어 과보가 없습니까?”
백장 선사가 대답하기를, “반드시 죄가 된다고 말할 수 없고, 죄가 안 된다고도 말할 수 없다. 유죄와 무죄는 각자(當人)에게 있는 것이다. 만약에 일체 유무(有無) 등의 법에 탐염(貪染)하여 취사의 마음이 있고, 삼구(三句)를 투과(透過)하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죄가 된다. 만약 삼구를 투과하여 마음이 허공과 같이 되고, 또한 허공과 같다는 생각도 없다면, 이 사람은 무죄이다. 또 말하기를, 죄를 짓고 나서 죄가 있다고 보지 않으면 말이 안 되며, 죄를 짓지 않았는데 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말이 안 된다. 율장에서 ‘본성을 미혹하여 살인을 하거나 서로 살인을 한다 해도 살생죄가 되지 않는다’라고 했거늘, 하물며 선종의 문하에서 그럴 수가 있겠는가.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그 어디에도(一物) 집착하지 않으며 허공과 같다는 생각조차 없는데, 죄가 어디에 자리 잡기나 하겠는가.”(<百丈廣錄>,<古尊宿語錄>, 中國佛敎典籍選刊, 中華書局 p15~16)
이른바 “풀을 베고 나무를 자르며, 땅을 개간하는 일은 죄가 되지 않느냐”라고 하는 것은 불교 기존의 계율인식이다. 백장은 이 인식을 “자성청정(自性淸淨)”이라는 본원심의 입장에서 청정심의 실천으로 극복하라고 제시하고 있다. 신수와 혜능이 다같이 계(戒)를 “자성청정”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범망경>에 설하기를 “금강보계(金剛寶戒)는 일체불(一切佛)의 본원(本源)이며, 일체보살의 본원인 불성종자(佛性種子)이다.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다…. 일체중생의 계의 본원은 자성청정(自性淸淨)이다”라고 하였다. 자성이 청정한 입장에서의 계율이란 자성을 미혹하면 번뇌 망념에 집착하므로 유죄가 되며, 자성을 깨달으면 진여본성이 드러남이 되어 무죄가 된다. 그러므로 유죄·무죄는 자성의 미오(迷悟)에 있는 것이다. 백장은 우리의 마음이 유무를 초월한 허공과 같이 자성청정심을 깨달으면 무죄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위에서 백장이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소위 “삼구투과(三句透過)”인데, 백장의 삼구(三句)는 백장선법의 독특한 용어로써 초선(初善), 중선(中善), 후선(後善)을 말하는 것이다. (계속)
2007-07-25 오후 5: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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