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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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택시기사의 화 다스리기
조그만 건설업을 하던 S씨는 IMF 후에 사업이 파산하고 간신히 택시영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 하는 일이라 몸도 힘들었으나 손님이 무례하게 굴 때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첫 해 어느 날 아침 첫 손님이 00동까지 가자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2만원이 넘게 나오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시작이 좋구나’하며 달렸다.
그런데 목적지에 오자 손님인 젊은 청년이 하는 말이 “앗, 아저씨. 지갑에 10만원짜리 수표밖에 없네요. 어쩌지요?” 요금은 2만3천원이었는데 아침 첫 손님이라 거스름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청년은 “어디 은행 앞에 세워주세요. 현금인출기에서 금방 찾아서 드릴게요” 했다.
조금 가니 365일 코너가 있어 바로 앞에 차를 세웠다. 그는 “아저씨 잠깐만 기다리세요. 금방이에요!”하고 내렸다. S씨는 기다렸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청년은 나오지 않았다. 15분이 되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기계가 고장 난 건 아닐테고 싶어 비상등을 켜 놓고 직접 들어가 보았다. 현금인출기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은행에도 들어가 보고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청년은 온데 간데 없었다.
순간 ‘속았구나, 요금 안 내려고 거짓말을 한 거다’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S씨는 분해서 가슴이 타는 것 같았다. 돈도 아쉬웠지만 믿고 기다리는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당황하여 잘 아는 고참에게 전화를 했다. “아, 몰랐어? 그런 일 가끔 있지. 속은 거야. 그러니 사람 믿지 말라고.” 그의 태연한 답이었다. 그 때부터 너무 화가 나서 차를 마구 몰게 되었다.
다음 손님들에게도 괜히 짜증스런 말이 나갔다. ‘도대체 택시 한다고 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 ‘사업 망해 이렇게 사는 것도 서러운데’ 하며 마치 모든 손님이 자신을 속이고 얕보는 것 같아 점점 화가 치밀었다. 결국 급기야 앞 차를 들이받게 되었고, 결국 그날은 돈 벌기는커녕 헛돈만 더 들게 되었다.
오후에 그냥 집으로 갔다. 아무도 없었다. 방에 허탈하게 누워있는데 아내가 애지중지하는 스님의 법어집이 눈에 띄었다. 앉아서 법어집을 펴보았다. 전에는 이렇게 가슴에 다가온 적이 없었다. 모처럼 열심히 읽게 되었다.
그 후 S씨는 법문 테이프를 매일 차에서 듣게 되었다. ‘그래, 화를 내봐야 결국 나만 손해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항상 화의 노예가 된다. 일어나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내 마음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내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
마음 다스리는 정진을 시작한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손님 아주머니가 내릴 때가 되어 갑자기 지갑을 안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요금은 3만원도 넘게 나온 터였다.
집에 가서 갖다 준다고 큰 아파트단지 앞에서 내렸다. 잠시만 기다리면 갖고 내려온다더니 30분이 넘어도 소식이 없었다. 이상해서 수위실에 물어보니 아무도 안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왠 여자가 좀 전에 수위실 앞을 지나 다른 길로 가더라는 것이었다. 속은 것이었다. 그 아파트에 산다 해도 누군지도 몇 호인지도 모르니 도무지 찾아낼 방법이 없었다.
또 당했구나. S씨는 웃음이 나왔다. “돈요? 물론 아쉽지요. 먹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그래도 이젠 제가 변했어요. 화를 안 내려고 합니다. 우선 이미 끝난 일! 화 내봐야 돈 받는 것도 아니고 나만 손해거든요. ‘방하착’, 지난 일은 다 놓아버리라고 했잖아요. 그래도 화가 나면 전생에 내가 그 사람에게 빚진 것 갚았구나 합니다. 그러면 맘이 편해지지요. 아니면 다음 생 언제라도 그가 나에게 갚아야 할 테니 세상 공평하잖아요? 하하하.” 웃는 얼굴 속에 삶의 고된 흔적과 진한 아픔이 묻어나왔다.
어렵게 운전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려 애써 온 그의 노력 정진에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피어나길 바라고 싶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7-07-25 오후 5: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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