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처의 세계에 속속들이 적용될 것 같은 업인과보의 법칙으로도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현실에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은 좋은 집안에 태어나 별다른 노력 없이도 편히 살아가며, 어떤 이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있다. 즉 선인(善因)은 발견되지 않는데 선과(善果)만 나타나는 경우와, 선인은 있는데 선과가 나타나지 않는 두 가지 경우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불교의 숙세·현세·내세의 삼세의 개념이 나온다. 즉 전자는 선인이 숙세에 있었는데 현세에 비로소 과보가 나타났고, 후자는 현세에 업인을 쌓았으므로 내세에 그 과보가 나타난다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업인과보의 삼세윤회설(三世輪廻說)이 성립된다.
삼세윤회설은 인간의 시야를 현세의 테두리를 벗어나 무한한 시공에 펼치게 한다. 이를 단순한 숙명론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업설의 목적은 현세의 괴로움의 원인을 숙세의 인연으로 돌리고 체념하라는 입장이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력으로 이를 극복하여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만을 확실한 것으로 본다는데[십이처설], 삼세업보설은 이에 모순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숙세나 내세 같은 것은 보통 사람이 인식할 수 없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삼세업보란 현실 세계의 인과를 관찰하면 누구나 그 필연성을 추단(推斷)할 수 있다고 본다. 부처님은 이러한 인과업보의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어야 하며, 깨달음을 얻으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수행해야 한다고 누누이 설했다.
삼세윤회설을 드라마틱하게 펼친 것이 육도(六道) 윤회설이다. 중생이 업인에 따라 윤회하는 길을 여섯으로 나눈 것이 육도다. 육도 가운데 지옥도·아귀도·축생도·아수라도·인간도는 욕계(欲界)에 속하며, 천상도는 욕계의 6천과 색계(色界)의 18천, 무색계(無色界)의 4천 등 3계 28천을 통틀어 가리킨다.
엡스타인이란 미국의 정신과 의사는 불교의 육도 윤회설을 ‘신경증적인 마음에 대한 불교적 모델’로 해석했다. 프로이트가 말한 열정을 동물적 본성인 축생도로, 편집증적 상태와 공격적이며 불안한 상태를 지옥도로 보았고, 구강기적 갈망을 아귀도에 대비시켰다. 인본주의 상담에서 말하는 절정 경험은 천상도에 비교했고, 자아심리학이나 행동주의 그리고 인지치료는 경쟁적이고 유능한 자아를 개발하려 한다는 점에서 아수라의 영역으로 분류했으며, 나르시시즘은 인간도로 구분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육도 각각의 개념과 조금 다르게 적용한 부분도 있지만, 인간의 심리과정을 육도 윤회에 대입한 해석이 상당히 일리가 있다.
■불교상담개발원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