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공부를 할 때에는 우리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먼저 알아야만 한다. 극락왕생하기 위하여 염불을 하고 있는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기 위하여 경전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마음을 깨쳐 바로 부처님 세상으로 들어가려고 참선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길은 달라도 마지막에는 모두 부처님 세상에 가닿게 되겠지만, <선가귀감> 내용은 그 가운데서도 간화선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그 길을 일러 놓은 것이다. <선가귀감> 78장에서 말한다.
大抵學者 先須詳辨宗途 昔 馬祖一喝也 百丈耳聾 黃壁吐舌 這一喝 便是拈花消息 亦是達摩初來底面目 此臨濟宗之淵源.
대저 공부하는 사람들은 먼저 각 종파에서 추구하는 길을 잘 알아야 한다. 옛날 마조(馬祖 709-788) 스님의 ‘할’ 한 마디에 백장(百丈 720-814) 스님은 귀가 먹었고 황벽(?-850) 스님은 혀를 내밀었다. 이 ‘할’이 바로 부처님이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 들어 보인 소식이며 또한 달마 스님이 이 땅에 처음 오신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다. 아! 이것이 임제종의 근원이 되었다.
마조 스님은 유명한 당나라 선승(禪僧)으로서 사천성 성도부 사람이다. 일찍이 남악(南嶽) 회양(懷讓 677-744) 선사 밑에서 열심히 좌선을 하고 있었는데 회양 스님이 어느 날 다가와서 물었다. “자네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좌선을 하고 있습니다.” “좌선은 해서 무엇 하려는가?” “깨달아서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회양 선사는 그 이튿날 벽돌을 갈기 시작하였다. 마조가 와서 묻기를 “스님, 벽돌을 갈아 무엇에 쓰시려고 합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벽돌을 갈아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자네도 앉아만 있다고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수레가 움직이지 않을 때 채찍으로 수레를 때려야 하겠는가? 아니면 소를 때려서 가게 해야 되겠는가? 선(禪)이란 앉거나 눕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부처는 가만히 앉아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취하고 버리는 분별이 없어 집착이 없는 것이야말로 선(禪)이다.” 이 말에 크게 깨친 마조 스님은 회양의 법을 잇고 법문을 할 때마다 ‘평상시 쓰는 마음이 도이다[平常心是道]’와 ‘마음 그 자체가 부처다[卽心是佛]’라는 말로써 크게 선풍을 일으켰다. 백장회해 서당지장 남전보원 대매법상 등 139인이나 되는 많은 제자들을 두었다.
마조 스님의 법을 이은 백장 스님은 복건성 섬후현 사람이다. 마조 스님을 모시고 길을 가고 있는데 물오리 떼가 울면서 날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마조 스님이 물었다. “저게 무슨 소리냐?” “물오리 우는 소리입니다.” 한참 있다가 다시 묻기를 “아까 그 소리가 어디에 있느냐?” “날아가 버렸습니다.” 갑자기 마조 스님이 백장의 코를 잡고 비틀었다. 백장은 아픔을 참지 못하고 백장은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마조 스님이 “그래도 날아갔다고 할 것이냐?”하는 데에서 깨친 바가 있었고, 그 다음 인연에는 마조 스님의 할! 소리에 크게 깨쳤다고 한다. 뒷날 홍주 남창부 봉신현에 있는 백장산(百丈山)에 들어가 법을 펴기 시작하였다. 백장 스님은 율종의 제도를 그대로 사용해 왔던 선원의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선종의 총림 제도와 규율을 엄격히 세우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 <백장청규(百丈淸規)>이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一日不食]”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 청규는 뒷날 천하 총림에서 받들어 행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연로한 나이임에도 날마다 일하는 백장 스님의 모습이 하도 안쓰러워 하루는 일을 못하도록 제자들이 연장을 감추었더니, 백장은 그날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 밥을 굶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뛰어난 그의 제자로서 황벽희운과 위산영우가 있었다.
백장 스님의 제자인 황벽 스님은 복건성 복주주 섬현 사람이다. 어렸을 때 하도 영특하여 신동이라 불렸다. 강서성 서주부 황벽산에 출가하였다가 마조의 ‘할’에 의하여 깨쳤다고 하는 백장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 자리에서 크게 깨치고 혀를 내밀었다고 한다. 백장의 법을 잇고 난 뒤 뒷날 배휴(裴休)의 청을 받아 여러 곳에서 법문을 하였으나 가는 곳마다 그 곳에 있는 산 이름을 처음 출가했던 산 이름을 따서 황벽산이라고 하였다. 그가 염관사(鹽官寺)에 있을 때 예불하는 자리에서 뒷날 임금이 된 선종(宣宗)이 그에게 법을 물은 일이 있었는데 답변으로 세 번이나 뺨을 때린 적이 있었다. 뒤에 황제 자리에 즉위한 선종이 뺨을 맞은 분풀이로 황벽 스님에게 행실이 거친 중이라는 뜻의 ‘추행사문( 行沙門)’이란 법호를 주려고 하였다. 그러자 배휴가 간하기를 “폐하에게 황벽 선사가 세 번 때려준 것은 폐하의 삼제(三際) 곧 과거 현재 미래의 윤회를 끊어서 깨달음을 얻으라는 뜻이었습니다”라고 하자 ‘단제(斷際) 선사’라는 호를 내리게 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배휴가 어록을 한데 모은 <황벽산 단제선사 전심법요(黃檗山斷際禪師傳心法要)>가 있다. 임제종 창시자 임제의현(?-867)이 그의 법제자이다.
마조의 ‘할’ 한 마디에 백장은 귀가 먹었고 황벽은 혀를 내밀었다. 이 ‘할’이 바로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자 가섭이 빙그레 웃어 마음과 마음이 통했다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염화미소(拈花微笑) 소식이며 또한 달마 스님이 이 땅에 처음 오신 본래면목이다. 그러므로 서산 스님은 말한다.
識法者懼 和聲便打.
법을 아는 사람들은 경계하나니
아는 소리 할라치면 때려버린다.
법을 아는 사람들은 시비하고 분별하는 중생들의 마음을 꺼려한다. 그 마음 때문에 중생들이 육도윤회를 하며 밤중에 길을 가는 사람처럼 어두운 세상에서 헤매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생들이 분별하는 마음을 낼라치면 그 자리에서 그 마음을 죽여 버린다. 그 모습이 ‘할’로 나타나기도 하고 주장자로 때려주기도 하는 것이다. 큰스님들의 자비심이다. 서산 스님은 게송으로 말한다.
杖子一技無節目 慇懃分付夜行人.
기다란 주장자 맺힌 마디 없는데도
밤길 가는 사람에게 애틋하게 내어주네.
서산 스님은 이를 다시 풀이하여 “옛날 마조 스님이 외치는 ‘할!’ 한 마디에 백장 스님은 ‘대기(大機)’를 얻었고 황벽 스님은 ‘대용(大用)’을 얻었다. ‘대기’란 오롯하게 어떤 근기이든 두루 맞이한다는 뜻이고, ‘대용’이란 헛소리를 바로 끊어버린다는 뜻이다. 그 사연들이 전등록에 실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