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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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숙, <단추>, 천년의시작, 2006. 값 6천원
문숙의 시는 일상 제재를 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표현과 내용이 난해하거나 모호하거나 기괴하지 않아 읽기에 쉽고 편하다. 그는 주로 일상, 특히 주부 일상에서 채취한 제재를 보편적인 삶의 원리로 형상화해 내는데 탁월함을 발휘하는 언어의 마술사이다. 이를테면 헌 고무장갑, 어머니, 치약 껍데기, 항아리, 단추, 새우튀김, 버선코, 소화기, 수건, 페트병, 마늘, 낡은 장롱, 부부, 금간 화분, 나무도마, 종이컵 등을 제목으로 삼거나 시의 제제로 등장시킨다. 그는 좌판 위에 한 손씩 묶여 있는 고등어자반을 제재로 포착하여 시적 형상화를 통해 부부애로 전화시킨다. 한 손은 물고기 두 마리를 세는 단위이다.

좌판 위에 고등어자반 한 손
제 속을 버리고 한 쌍이 되었다

한 마리가 가슴을 넓게 벌리고
또 한 마리는 뼈까지 드러내며
바다의 푸른 기억을
서로의 품으로 껴안는다
가슴을 갈라 등을 품는 아픔의 두께

잔물결이 사라진 시간
머리도 비우고 지느러미도 접은 채
서로에게 절여진 고등어 두 마리
그들의 접힌 상처 사이에
허옇게 말라붙은 바다가 보인다
- ‘부부’ 전문

모두 3연 12행의 이 시는 몸이 펴진 채 서로 겹쳐져 있는 소금 간을 한 고등어자반 두 마리를 부부로 착안하여 서술하는데 매력이 있다. 특히 1연에서 부부가 고등어자반처럼 “제 속을 서로 버리고 한 쌍이 되었다”는 부부생활의 원리를 암시하고 있어 흥미롭다. 2연에서는 배가 갈라져서 벌어진 자반이 겹쳐져 있는 모습을 “서로의 품으로 껴안는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가슴을 갈라 등을 품는 아픔의 두께”라는 표현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화자는 부부의 관계를 서로에게 절여지는 고통의 관계로 암시하고 있어 아프다. 남녀가 만나서 부부의 인연을 맺는 것은 숙세에 맺은 깊은 인연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고통스런 관계도 숙세에 맺은 인연 때문이리라. 이런 그가 어느 겨울날 칠장사에 갔다가 시를 건졌나보다. 눈 오는 날, 번잡하지 않은 절의 풍경을 고요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흰 고무신 한 짝
댓돌 위에서 낯빛 푸르게 외롭다

댓잎 서걱이는 뒷마당을 지키는 개가
가끔 오옴 오옴 경을 외듯 짖는다

세상길을 지우며 눈이 내린다.
- ‘겨울 칠장사’ 전문
2007-03-06 오후 5: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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