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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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선종의 사구게(3)
물론 6조 이후에 정립된 게송이지만 이 사구게야말로 육조혜능의 말씀인 <육조단경>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인 동시에 선의 황금시기에 다각도로 전개된 5가7종의 종지가 된다.

문자를 세우지 않고 不立文字
가르침 밖에 따로 전하니 敎外別傳
사람의 마음을 곧 바로 가리키니 直指人心
자성을 보고 부처를 이룬다 見性成佛

7 - 사람의 마음을 곧 바로 가리킨다(直指人心)
와륜은 뛰어난 기량이 있어 臥輪有技倆
능히 백가지 생각을 끊고 能斷百思想
경계를 마주해도 마음일지 않으니 對境心不起
보리수가 나날이 자란다. 菩提日日長
-와륜

혜능은 별 재주 없어 慧能沒技倆
온갖 생각이 끊이지 않네 不斷百思想
경계 마주함에 마음 자주 일어나 對境心數起
보리인들 어찌 자랄까 菩提作麽長
-혜능

사실 혜능은 마음을 자성의 하수인이라 생각했다. 자성이 본체이고 마음을 응용으로 보았다. 자성과 관계없이 마음이 외경(外境)에 이끌리어 시시각각 변화하니 마음을 휘어잡는 것보다는 자성을 밝게 꿰뚫어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마음들은 둘이 아니라 일심(一心)이다. 이 마음은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태적인 것이다. 혜능의 깨달음은 <금강경>의 ‘머무는바 없이 마음을 낸다(應無所住 而生其心)’에 기인한다. 이것이 바로 본원을 통견(通見)하는 돈오(頓悟)의 내용이다.

위의 와륜의 게송을 한 승려가 혜능에게 매우 올바른 견해인 것 같다고 읊은 것인데, 혜능이 듣고 단박 견성하지 못하였음을 간파했다. 그래서 혜능은 와륜의 견해가 바르지 못함을 게송으로 답했다. 그의 게송은 4행에서 보리수가 본체이고 마음이 작용이며 3행에서는 경계에 대해 마음이 일지 않으면 죽은 마음이니, 어찌 마음이라 할 수 있는가. 단지 무주(無住)로서 마음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로 읽힌다. 그리고 혜능은 “온갖 사물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항상 생각이 끊어지도록 하지 마시오. 이는 곧 법에 묶임이니 변견(邊見)이라고 합니다”(<돈황본단경>18) 라고 말한다.

“선지식아! 마음을 깨끗이 하여 마하반야바라밀을 생각하시오.”
잠시 후,
“보리자성은 본래 청정하니 단지 이 마음을 사용하시오. 바로 성불할 것입니다.”(<육조단경> 제1 ‘오법전의’)

이 말은 혜능이 조계의 보림에 이르렀을 때, 대범사 강당에서 베푼 설법의 첫 마디며, <단경> 모두의 글귀다. 돈오법문을 간결하게 나타낸 것이다. ‘마음을 깨끗이 하시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 바로 선을 아는 요체이다. 이제 혜능은 “지혜의 완성만 생각 하십시오”하고 대중에게 조용히 말한다. 그리고 “지혜자성은 본래 맑고 깨끗합니다. 단지 이 자성의 응용인 이 마음만 사용하십시오. 이러면 성불해 마칠 것입니다.”
2007-05-15 오후 4: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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