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말기, 미나미 지로(南次郞ㆍ1874~1955) 총독이 남방에 큰스님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부산 안양암에 주석하고 있던 혜월(慧月ㆍ1861~1937) 스님을 참방하여 인사를 드렸다.
“스님의 도에 대한 명성은 일찍부터 잘 듣고 있었습니다. 진작 찾아뵙고자 했으나 이제야 뵙습니다.”
총독은 절을 하고 “부처님의 아주 깊고 높은 진리를 한 말씀 일러 주십시오” 라며 법을 청했다. 이에 혜월 스님은 담담하게 말했다.
“귀신 방귀에 털 난 소식이니라.”
총독은 한동안 무료하게 앉아 있다가 일행과 더불어 덤덤하게 돌아갔다. 총독이 혜월 스님에게 한 방망이 크게 맞았다는 소문이 불교계와 총독부에 자자하게 퍼졌다. 총독에게 무례하게 대했다는 소문에 분개한 총독부의 한 무관이 스님을 단단히 혼을 내 주리라 작정하고 한 걸음에 달려왔다. 그는 방문을 걷어차고 들어가, 참선하고 있는 스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말했다.
“내 칼 받아라. 그대가 혜월 스님인가?”
“그렇다. 내가 혜월이다.”
하고 스님이 손가락으로 그 무관의 등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 보아라.”
무사가 뒤를 돌아보는 찰나, 스님이 벌떡 일어나 무관의 등을 치며 소리쳤다.
“내 칼 받아라.”
그러자, 무관은 깜짝 놀라 칼을 떨어뜨리고선 큰절을 하고 항복했다.
일제강점시대 조선 권력의 제1인자인 총독의 위세를 가볍게 눌러 준 일도 놀라운 일이지만, 목에 칼이 들어오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도 태연하게 응대할 수 있는 것은 깊고 깊은 무심(無心)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묘한 지혜작용이 아닐 수 없다. 혜월 스님이 총독에게 조금이라도 위축된 마음이 있었다거나, 무관의 칼날 앞에서 공포에 떨었다면 한국 선종의 존엄과 스님의 목숨은 한 순간에 땅바닥에 떨어졌을 것이다.
위풍당당하게 혜월 스님을 참방한 총독은 ‘불법의 진리를 설해 달라’며 그물을 던지지만, 백전노장인 스님의 ‘귀신 방귀에 털 난 소식’을 접하고는 더 이상 입을 뗄 수 없었다. 형상이 없어서 보이지 않는 귀신도 허무한데, 그 귀신이 방귀를 뀐다는 것, 더군다나 그 방귀에 털이 난 것이라고 하니,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 도리는 총독이 아니라 총독 할아비도 알 수 없는 진리의 암호인 것이다.
이와 관련, 혜월 스님의 사제인 만공 스님은 이런 법문으로 힌트를 주고 있다.
“참된 말은 입 밖에 나가지 않나니라. 허공에 뼈가 있는 소식을 알겠느냐? 귀신 방귀에 털 나는 소식을 알겠느냐? 등상불(等像佛)이 법문하는 소리를 듣겠느냐? 생각이 곧 현실이요, 존재니라. 생각이 있을 때는 삼라만상이 나타나고, 생각이 없어지면 그 바탕은 곧 무(無)로 돌아가나니라.”(만공 법어집)
귀신 방귀에 난 털은 본래 생겨난 적이 없기에 본래 사라지는 것도 아닌 무생법인(無生法忍: 일체가 불생불멸임을 깨닫는 것)을 상징한다. <반야심경>에서 “일체의 존재가 공하여 실체가 없으며, 생기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諸法空相 不生不滅)”는 의미와 같다.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찍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거시기’를 알려면 구구한 지견풀이를 잊고, 귀신 방귀에 털 난 소식을 온몸으로 체득할 수밖에 없다.
김성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