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월 스님이 61세 때 부산 선암사 조실로 계셨는데, 몇 해를 두고 개간한 땅이 2000평이나 됐다. 이것을 욕심내는 절 밑의 속인들이 스님의 천진한 마음을 이용해 싸게 샀다.
이에 상좌스님들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스님, 그 돈은 두 마지기 값밖에 안 됩니다” 하고 원망하듯 말했다. 스님은 상좌들의 말을 무심히 듣고 난 후 이렇게 꾸짖었다.
“이 녀석들아! 논 닷 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여기 두 마지기 값이 있으니 번 것이 아니냐? 사문은 욕심이 없어야 해!”
“스님, 하지만 손해가 너무 많습니다.”
“허! 허! 인간의 마음속에는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지 않느냐.”
혜월 스님의 법문을 들은 제자들은 2000평의 땅, 재물이란 상(相)에 걸려 무소유의 천진불(天眞佛)인 조실스님의 경지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자신들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이 선화는 우리가 어떻게 보시를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좋은 예이다. 보시의 핵심은 미묘하게 숨겨진 소유욕과 끝없는 욕심으로부터 수행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나의 것’이란 생각이 없어서 늘 무소유의 삶을 살아서 ‘무심도인’이란 별명을 들었던 혜월 스님의 면목이 대게 이러했다. 스님 개인의 사생활은 아주 검소하고 순박해서 소지품이라곤 발우 한 벌에 작은 이불 하나, 삼베옷 몇 벌 뿐이며 밤에 잘 적에는 결코 요를 까는 일이 없이 맨바닥에 잠깐 눈을 붙일 뿐이었다. 그리고 정진 시간 이외에는 늘 부지런히 일하고 개간했으며, 비 오는 날이면 머슴들과 한 방에서 새끼를 꼬고 짚신을 삼으면서도 동중(動中)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처럼 스님은 언제나 형식에 걸림이 없고 무엇에도 집착 없이 본원청정(本源淸淨)한 마음자리에 머무는 바 없이 머물렀다. 모든 사람이 가진 청정한 자성(自性)에는 본래부터 구족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우주를 둘러싸고도 모자람이 없다. 또한 분별심을 떠난 일심(一心)은 나와 너라는 구별이 사라져 ‘나의 것’이라는 소유욕이 없는 텅 빈 마음이기에 송곳 꽂을 땅도, 송곳이란 이름도 붙일 수 없는 자리이다. 사람의 본래 마음자리에는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다’고 이른 뜻이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스님은 법거량에 있어서도 ‘격식 밖(格外)’의 언어와 행동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자비심을 갖추었으니, 스님과 신도들 모두 진심으로 절복(折伏)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스님은 본래부터 성품이 부지런했지만, 경허 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은 뒤로는 일과 수행을 병행하며 보임(保任: 화두를 타파한 뒤 보호하고 지켜가는 佛行수행) 공부를 더욱 철저히 했다. 중국 백장(百丈) 스님의 청규(淸規)인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정신으로 일관한 셈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도량을 쓸고 닦고 짚신을 삼으며 새끼를 꼬는가 하면 노는 땅, 쓸모없는 땅을 파 일구어서 좋은 논ㆍ밭으로 개간하는데 더욱 힘썼다. 당신 홀로도 일하지만 대중을 동원하여 삽, 괭이, 가래 등을 가지고 주위에 있는 산을 개간하는 일로 수행을 삼았다. 그래서 당시 삼대걸승(三大傑僧)으로 불모지를 개간하는 혜월 스님, 도량 중수를 많이 하는 만공 스님, 역경 포교에 전념하는 백용성 스님이 회자되기까지 했다.
김성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