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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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 선사(3)
경허 선사가 청양(靑陽) 장곡사(長谷寺)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선사가 곡차를 잘 드신다는 소문을 듣고 인근 사람들이 곡차와 파전을 비롯한 여러 안주를 들고 왔다. 이것을 맛있게 먹다가 만공에게 물었다.
“너는 술이나 파전이 먹고 싶은데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
그러자 만공이 대답했다.
“저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습니다. 굳이 먹으려 하지 않지만, 생기면 또 굳이 먹지 않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선사가 대견한 듯이 보는 척 하다가 말했다.
“그래? 참으로 너의 도력(道力)이 대단하다. 근데 나는 말이다. 너 만큼 도력이 없어서 술이나 파전을 먹고 싶으면 참을성이 없어서 말이다. 밭을 정성스럽게 갈고 좋은 거름을 주고는 좋은 밀씨와 파씨와 깨씨를 구해다가 정성스럽게 가꾸고 알뜰히 키워서 밀로 누룩을 만들고 깨로 기름을 짜고 밀가루와 파를 버무려서 맛있는 파전을 만들어 술과 함께 맛있게 먹겠네.”
그 말을 들은 만공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훗날 여러 선사들은 이 문답이 경허 선사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향상일구(向上一句: 끝없이 초월하는 깨달음의 한 마디)라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 대목이다.

이 문답은 목마르면 물마시고, 졸리면 자는 ‘평상심(平常心)이 도(道)’인 경지를 한 차원 높게 드러내고 있다. 본래 평상심은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흐리멍텅하게 사는 게 절대 아니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잔다(飢來喫飯 困來卽眠)”는 말은 같지만, 범부의 일상사와는 다르다. 어째서 같지 않을까. 이에 대해 대주혜해 선사는 “그들은 밥을 먹을 때 마음으로 밥을 먹지 않고 온갖 딴 것을 찾아 헤매며, 잠 잘 때는 천 가지 잡생각을 한다. 그러므로 같지 않은 것이다”라고 일러주고 있다. 영흥 스님(진천 불뢰굴)은 평상심이란 “다시 딴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각 없는 평상심이란 혼침이다”고 풀이했다.

평상심은 늘 ‘지금 이 자리’에서 일체의 분별심을 버리고 무심(無心)이 되어 깨어있는 진지한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다. 매순간 대상과 일에 완전히 몰입하는 ‘평상심’을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틱낫한(임제종 41대) 스님의 ‘정념(正念, mindfulness)’ 수행이 좋은 예가 된다. 이 ‘정념’은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온전히 관찰하는 것은 위빠사나와 같지만, 지금 여기서 일과 대상과 철저히 하나 되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스님은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는 설거지만 해야 한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자신이 설거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하게 깨닫고 있어야 한다”(<삶에서 깨어나기>중에서)고 말하고 있다.
설거지할 때나, 밥 먹을 때나, 일할 때도 일행삼매(一行三昧)가 된다면 경허 스님처럼 늘 깨어있으면서도 일없이 한가로운 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김성우 객원기자 buddhapia5@hanmail.net
2007-02-20 오후 4: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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