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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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출가하여 스님이 된다는 것
46장부터 이 앞장까지는 도를 닦는데 중요한 방편이 되는 보시, 인욕, 정진, 주력, 예배, 염불 등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이 장부터는 세속의 명예와 이익 나아가 이 세상의 모든 경계들이 참으로 덧없어 헛된 것임을 계속 깨우쳐 주면서 출가한 사람으로서 본분사(本分事)를 돌아보게 한다. 이 세상의 온갖 욕망과 향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출가하여 무소유(無所有) 정신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도를 닦는다는 것은 참으로 갸륵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선가귀감> 57장에서는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일에 대하여 말한다.

出家爲僧 豈細事乎. 非求安逸也 非求溫飽也 非求利名也 爲免生死也 爲斷煩惱也 爲續佛慧命也 爲出三界度衆生也.

출가하여 스님 되는 일이 어찌 작은 일이겠느냐? 편하고 한가로운 생활을 구하는 것도 아니요,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고 살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요, 시비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다. 부처님의 지혜를 이어 성불하려는 것이요, 삼계(三界)를 벗어나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는 것이다.

‘부처님의 지혜’로 번역한 ‘불혜명(佛慧命)’에서, ‘혜명(慧命)’은 지혜로 생명을 삼는다는 뜻이다. 색신(色身)인 중생의 몸은 음식에 의지해야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부처님의 몸은 지혜에 의지해야 그 생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를 기르지 않으면 부처님이 될 수 없다.

부처님 지혜를 이어 모든 중생을 구제하려면 삼계를 벗어나야 한다. ‘삼계(三界)’는 우리 중생들이 사는 세상을 셋으로 나눈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말한다.

‘욕계’는 음욕(淫欲)이나 식욕(食欲)과 같은 세속의 욕망을 품고 사는 중생들의 세계이다.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세계를 비롯하여 하늘나라 맨 밑에 있는 육욕천(六欲天)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색계’는 음욕과 식욕을 벗어나 맑고 깨끗한 모습만 가지고 사는 중생들의 세계이다. 욕계 위에 있고 그 세상은 밝고 아름다운 느낌의 행복만 가득하므로 색계라고 한다. 이 곳은 천인(天人)들이 머물며 빛으로 음식을 삼거나 언어로 쓰기도 한다. 선정의 깊고 얕음에 따라 네 등급으로 나누어 사선천(四禪天)이라 말하기도 하고 이 네 등급을 다시 열여덟 등급으로 나누어 색계십팔천(色界十八天)이라고도 한다.

‘무색계’는 욕망이나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고 오직 수(受)․상(想)․행(行)․식(識) 네 마음만 남아 있는 세상이다. 이 세계는 심식(心識)이 욕망이나 눈에 보이는 물질의 장애를 벗어나 오직 오묘하고 깊은 선정에 있을 뿐이므로 무색계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 미세한 망상은 남아 있다. 이 세계는 색계 위에 있고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사무색계(四無色界)라고도 한다.

중생의 입장에서는 삼계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그 차이가 큰 것으로 보이지만 부처님의 위치에서 보면 모두 어리석은 중생계에 속한다. 삼계는 중생들이 고통 받고 사는 생사윤회의 끝없는 굴레이므로 출가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벗어나야 한다. <법화경> 비유품에서도 “삼계는 편안하지 않다. 마치 불타는 집에 온갖 고통이 차 있는 것과 같으니 참으로 두려워해야 한다[三界無安 猶如火宅 衆苦充滿 甚可怖畏]”라고 하였으며, 또 화성유품에서 “삼계의 지옥에서 모든 중생들을 구제해야 한다[能於三界獄 勉出諸衆生]”라고 말하고 있다. 출가한 사람들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어서 빨리 성불하여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중생들을 제도해야 할 것이다.

주(周 557-580) 나라 수도에 있던 대중흥사(大中興寺) 도안(道安 ?-600) 스님은 <유계구장(遺誡九章)>에서 출가한 스님들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말하고 있다.

“무릇 출가하여 도를 닦는 길은 지극히 소중하고도 어려운 일이니 스스로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되고 스스로 쉽게 여겨서도 안 된다.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은 죽을 때까지 도덕적이며 어질고 의로운 마음으로 맑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세속을 떠나 부모의 사랑을 뒤로 하고 중생의 알음알이를 없애야하므로 그 성품이 다른 사람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실천할 수 없는 것을 실천하고 끊어낼 수 없는 것을 끊어내며 모든 고통을 참아가며 생명조차 내버려야 하니 이를 어렵다고 한 것이다. 이런 사람을 도인이라 하니 도인이란 어리석은 중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다. 그 행위는 반드시 뒤따를 만해야 하고 그 언행은 반드시 본받을 만해야 한다. 법복을 입고 출가함에 움직이면 삶 그 자체가 다른 사람이 본받을만한 법칙이 되어야 한다. 탐욕이나 다툼이 없어야 하고 중상모략이나 간사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학문은 높고 고결해야 하며 품은 뜻은 깊은 곳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명성과 칭찬이 되어야 존경받는 삼보의 자리에 들어간다. 현명하다는 단계를 벗어나 성인의 경계로 들어가니 ‘나’라는 생각이 깨끗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임금이나 부모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고 온 천하 사람들이 그의 품에 돌아가지 않는 사람이 없다. 아내나 부모의 몫을 줄여 옷과 음식을 공양하고 몸을 아끼지 않으면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해주는 것은, 그 뜻과 행위가 맑고 깨끗하며 신명(神明)에 통하여 ‘텅 빈 충만’으로 가득하니 기이하고 귀하게 여길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夫出家爲道 至重至難 不可自輕 不可自易. 所謂重者 荷道佩德 縈仁負義 奉持淨戒 死而有已. 所謂難者 絶世離俗 永割親愛 廻情易性 不同於衆. 行人所不能行 割人所不能割 忍苦受辱 捐棄軀命 謂之難者 名曰道人 道人者 導人也. 行必可履 言必可法 被服出家 動爲法則 不貪不諍 不讒不慝 學問高遠 志在玄黙 是爲名稱 參位三尊 出賢入聖 滌除精魂. 故得君主 不望其報 父母 不望其力 普天之人 莫不歸攝 捐妻減養 供奉衣食 屈身俯仰 不辭服勞恨者 以其志行淸潔 通於神明 惔泊虛白 可奇可貴]”

이 장에서는 출가한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출가인의 삶은 편하고 한가롭게 살면서 세속의 명예와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다. 시비 분별하여 갈등을 일으키는 번뇌를 끊고 괴로운 생사를 벗어나 성불(成佛)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는 것이다. 이런 본분을 알고 살아가는 출가인의 모습은 어떠할까? 서산 스님은 말한다.

可謂衝天大丈夫.

기개가 하늘을 찌를만한 대장부로다.

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
2007-02-13 오후 3: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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