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곱게 물들었던 나뭇잎이 찬바람에 휘날려 떨어지는 것을 보기라도 하면 흔히 사람들은 허무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여 ‘무상’하다고 말한다. 또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어느 날 중병에 걸리거나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슬프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여 이 세상이 ‘무상’하다고도 한다. 이처럼 세간에서 허무하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 무상이라 표현은 본디 절집에서 나온 말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덧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인연이 흩어지면 없어질 것이므로[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이 영원불변한 것 인양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이를 깨닫지 못하고 덧없이 사라질 것에 집착하면 뒷날 이 집착이 깨짐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괴로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선가귀감> 58장에서 말한다.
佛云 無常之火 燒諸世間 又云 衆生苦火 四面俱焚 又云 諸煩惱賊 常伺殺人 道人 宜自警悟 如救頭燃.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덧없는 세월의 불꽃이 온 세상을 불살라 버린다” 하셨고, 또 “중생들을 애태우는 괴로움의 불길이 사방에서 치솟아 오르고 있다” 하셨으며, “도적처럼 남모르게 생명을 앗아가는 번뇌들이 늘 공부하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라고도 하셨다. 도를 닦는 사람들은 이 점을 반드시 깨달아 알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서둘러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무상(無常)’이란 ‘이 세상 모든 것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늘 변하는 것이므로 영원할 것이 없다’라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법이 인연이 모이면 생겨났다 인연이 흩어지면 없어지는 것이므로 영원불멸할 실체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견고해 보이는 이 세상도 우리가 죽고 난 뒤 긴 세월 속에서 언젠가는 없어질 것임을 누구든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세상이 영원할 것 같아도 세상을 이루고 있는 지수화풍 사대(四大)의 인연이 흩어지면 언젠가는 사라진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이 세상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가는 모습이 흡사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지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덧없는 세월의 불꽃이[無常之火] 온 세상을 불살라 버린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세상조차 허깨비와 같은 것인데 중생들은 그 안에서 덧없이 사라질 몸과 마음에 집착함으로써 스스로 온갖 고통을 불러들인다. 몸에 집착함으로써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이 있으며, 사랑하는 마음에 집착하여 사랑하는 이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고통[애별리고(愛別離苦)]을 받고, 원한과 증오심을 떨치지 못하니 미워하는 사람을 보고 살아야 하는 고통 [원증회고(怨憎會苦)]을 받으며, 갖고자 하나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고통[구불득고(求不得苦)]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괴로움은 ‘모든 것이 무상(無常)하여 실체가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중생들이 시비 분별로써 거기에 집착하여 생기는 고통이다. 중생들을 애태우는 이런 괴로움들이 우리 주변에 가득 차 있으므로,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애태우는 괴로움의 불길이[衆生苦火] 사방에서 치솟아 오르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경계를 분별하여 집착함으로써 생기는 번뇌는 수행자의 공부를 방해한다. 이 번뇌는 ‘분별이 없는 부처님의 생명과도 같은 지혜 곧 법신(法身)’을 손상시키므로 남의 생명을 앗아가는 도적에 비유하여 ‘번뇌적(煩惱賊)’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처님께서도 “도적처럼 남모르게 생명을 앗아가는 번뇌들이 늘 공부하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도를 닦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점을 각성하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서둘러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身有生老病死 界有成住壞空 心有生住異滅 此無常苦火 四面俱焚者也.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이 있고 물질로 만들어진 이 세상은 성주괴공(成住壞空)의 허망함이 있으며 중생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무상함이 있다. 이 몸은 죽어지고 세상은 허물어지며 중생의 마음은 덧없이 변해버리니 덧없는 이 고통의 불길들이 다함께 사방에서 타오르고 있다.
사람들이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게 되는 괴로운 과정을 한마디로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한다. 많은 인연이 모여 이 세상이 만들어지고 일정기간 그 모습을 유지하다가 허물어져 사라져 가는 허망한 과정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 한다. 중생의 마음이 한 생각 일어나 잠깐 그 마음이 지속되다 또 바뀌고 사라지는 무상한 모습을 생주이멸‘(生住異滅)’이라고 한다. 영원불변할 것처럼 여기었던 모든 것이 변해가는 이런 모습이 ‘무상’이다. 본디 없던 것이 인연이 모여 생겨나고, 생겨난 것이 그 인연이 흩어지면 사라지는 이런 모습을 다 아울러 ‘무상’이라고 한다. 크게 눈을 뜨고 이 세상을 둘러보면 무상한 세월의 불길이 사방에서 훨훨 타올라 젊음도 아름다움도 총명함도 앗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산 스님은 게송으로 말한다.
謹白參玄人 光陰莫虛度.
삼가 아뢰노니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여 /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지어다.
‘현(玄)’은 깊고 깊은 진리이므로 ‘참현인(參玄人)’은 깊은 진리를 찾아 공부하는 사람을 말한다. ‘광음(光陰)’에서 ‘광(光)’은 빛으로서 환한 대낮을 뜻하고 ‘음(陰)’은 그늘로서 어두운 밤을 뜻한다. 낯과 밤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며 한 달이 모여 일 년이 되면서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이 ‘광음’이다. 원효 스님은 일찍이 <발심수행장>에서 다음과 같이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후학들을 경책하셨으니 스님의 간절한 당부를 마음에 새겨 수행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 몸은 어느 날 홀연히 흩어지고 말 뿐 오래 보존될 것이 아니다. 오늘도 벌써 저녁이라 어느새 내일 아침이 되는구나! 끊임없이 시간이 흘러 금방 밤낮이 지나가고, 끊임없이 하루하루가 바뀌어 빠르게 한 달 그믐이 지나가는구나. 끊임없이 한 달 한 달이 바뀌어 홀연 일 년이 되고, 끊임없이 한 해 한 해가 바뀌어 잠깐 사이에 죽음의 문턱에 이르는구나. 부서진 수레는 굴러 가지를 못하고 늙은 노인은 공부를 할 수가 없도다. 누워서는 게으름만 생기고 앉아서는 어지러운 생각만 일어나느니라. 몇 생을 이 공부를 떠나 헛되이 밤낮을 보냈으며, 이 헛된 몸을 얼마나 더 살리려고 이번 생도 공부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느냐? 이 몸은 반드시 그 끝이 있으리니 뒷날 받을 몸을 어찌하려느냐? 우리의 공부가 어찌 급하고 급하지 않겠느냐?”[四大忽散 不保久住 今日夕矣 頗行朝哉. 時時移移 速經日夜 日日移移 速經月晦. 月月移移 忽來年至 年年移移 暫到死門. 破車不行 老人不修 臥生懈怠 坐起亂識. 幾生不修 虛過日夜 幾活空身 一生不修. 身必有終 後身何乎. 莫速急乎 莫速急乎]
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