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근본은 부처님
“만일 다른 종교인 보고 당신이 원래 신(神)이다 라고 해 보세요. 그리고 신이 될 수 있다라고요. 어떻게 생각하겠나. 마치 그런 것과 같은 느낌이었어요.”
K씨는 처음 “나의 근본은 부처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 전에는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뭔가 인간보다 뛰어난 절대적인 존재에게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이 불교인 줄 알았었다. 부처님이란 나와는 직접 상관없는 높은 존재로 생각했다. 정식으로 불교의 교리와 참선을 배우면서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놀란 것이 모든 존재의 근본은 불성이라는 일심(一心), 한마음이며, 누구나 그 자성(自性)을 회복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에 불과한 나의 근본이 부처님이나 위대한 큰스님들과 똑같다는 건 믿을 수가 없었다.
파도와 바다의 비유로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부처님 마음이 바다라면 우리 각자는 거기에서 비롯된 파도 하나와 같다는 것이다. 자신이 바다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지 못하고 분리된 파도라고만 알아 자기 혼자만에 집착한 채 살고 있다. 바다로서 전체를 보고 판단하지 못하고 사니 온갖 경계에 부딪치면서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파도란 본래 바다에서 나온 것이니 개별적인 나라는 마음을 쉬기만 하면 저절로 바다의 마음이 된다, 파도가 곧 바다인 것처럼, 중생이 바로 부처라는 것이었다.
부처님 되십시오
논리적으로는 그런 것 같아도 K씨는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평생 사는 데 쫓기어 마음이라든가 도(道)라는 것에 신경 써 보지 못했다. 결혼하고 애들 교육에 여념이 없었고 직장도 얼마 있으면 그만 두어야 할 나이이다. 노후 대책이 걱정인데, 이런 내가 정말 부처님처럼 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원래 내 속에 부처님 마음이 항상 있어왔다고? 나 하고는 상관없는 것 아닐까. 그냥 불교공부 좀 해서 늙어서 마음 의지할 곳을 찾아보려고 한것인데, 너무 엄청난 주문이었다. 신심이란 부처님이라는 위대한 분을 믿는 것이 아니고 내 속에 있는 자성을 믿는 것이다? 바로 이 내가 관세음보살 같은 마음, 지장보살 같은 마음이 될 수 있다고, 아니 원래 그 마음이 항상 있어 왔다니.
“지금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번뇌로 덮여 있는 그대로가 부처라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아이가 아직 어른이 안 된 것처럼 부단한 수행이 필요합니다. 나라는 집착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다스리고 노력해서 부처님 마음을 찾아야 되고 부처님 같은 행을 하셔야 됩니다.”
K씨는 몇 달을 기초과정에 다니며 참선을 조금씩 배웠다. 다른 사람들을 보며 자극이 되었다. 자신과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인 것 같은데 열심이었다. 전국에서도 많은 불자들이 바로 그 부처님 마음을 찾으려고 정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 K씨는 서서히 마음이 열려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가끔 의심이 들 때도 있지만 “성불하십시오”하고 인사를 주고 받을 때마다 그래, 부처님 믿으세요 가 아니라 부처님 되십시오! 이지, 하면서 믿음을 굳혀본다. 초심자이지만 그동안 생각한 나가 전부가 아니라 놀라운 마음의 힘이 내 속에 있다는 말씀을 믿어보려고, 그리고 생활 속에서 변화해 보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부처님 마음이 내 마음
조그만 새싹을 볼 때는 나중에 커다란 꽃이나 나무로 피어난 모습이 좀처럼 상상되지 않습니다.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것도 믿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엄연한 자연의 진리입니다. 생활 속에서 온갖 문제와 번뇌에 시달리는 자신을 볼 때, 그 안에 무한한 자비와 지혜를 갖춘 부처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나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잊을 때 참나가 드러난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 출가절이 다가옵니다. 우리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내 안의 부처님 마음을 찾기 위한 발심을 새롭게 해 보시면 어떨까요.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