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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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자비로 마음을 녹여준 은혜
배다른 자식
K씨는 어릴 때 전기도 없는 산골에서 자랐다. 막내아들인 K씨는 철없이 자라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위의 형들과 누나와는 달리 자기만 아버지가 바람피워 ‘낳아 온 자식’이었다. 가족들은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K씨는 그날로 집을 나갔다. 수치심과 원망으로 치가 떨렸다. 죽어버릴까 생각하며 밥도 못 먹고 지쳐 곯아떨어진 어느 날,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자신을 형들이나 누나와 다르게 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남의 아들인데 내가 밉지도 않았나, 원망은 안 되었나? 어머니 마음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밤중에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는 놀라지도 않고 “너는 꼭 돌아올 줄 알았다. 이야기 좀 하자”하는 게 아닌가.

내가 지은 인연
어머니는 “그래, 너는 다른 여자 아들이다. 그래도 난 너를 절대로 미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악연을 미워하지 말라고 가르쳐주셨고 난 그 말씀을 절대로 믿는다”고 했다. 농사일 틈틈이 어머니가 근처 절에 열심히 다니시는 게 떠올랐다.

처음 아버지가 갓난아이를 데려왔을 때는 사실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남의 자식을 미워하면 그 마음이 업이 되어 내 자식에게 돌아온다’는 부처님 말씀이 무서웠다고 한다. 글을 몰랐기 때문에 평생 예불시간에 남들이 읽는 경을 듣다가 거의 외우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경전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스님의 법문도 열심히 들었다. 인과응보, 내가 만들지 않은 인연은 일어나지 않는다, 원한은 원한으로 풀리지 않는다. 어머니는 속상할 때면 ‘다 내 인연이다’하고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그렇게 K씨를 키우다 보니 가엾은 생각이 들면서 친아들과 다름없이 느껴졌다. 형들과 누나에게도 “남을 미워하면 네가 잘 못된다”하고 엄하게 하면서 절대 차별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자라면서 아무 차이를 못 느꼈던 것이다.

그 날부터 K씨는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게 되었다. 도대체 부처님이란 분이 어떤 분이시길래 어머니를 저런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시나 궁금했다. 저녁이면 가끔 어머니는 K씨를 방으로 불렀다. 자신은 글을 모르니 경전을 읽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중학교 때부터 깊은 뜻은 몰라도 많은 경전들을 읽게 되었다. 고등학교 갈 무렵 어머니는 “솔직히 너희 형제 중에 네가 제일 똑똑하다. 너는 대학을 가서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형편에 등록금 마련이 어려우니 네가 알아서 해 봐”라고 했다. 뜻밖이었다. 오지산골에서 대학은 상상도 못한 일이다. 형들과 누나도 고교만 졸업하고는 돈 벌기 바쁜데 막내인 내가, 그것도 친아들도 아닌데.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으로 가슴이 막혀왔다. 그 때부터 K씨는 이를 악물고 공부하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돈을 모았다. 마침내 어렵게 지방대학에 들어가던 날 맺힌 한을 풀듯 실컷 울었다. 어머니는 부처님께 감사하라고만 하셨다.

K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정말 친어머니 이상의 슬픔으로 울었고 지금도 가슴 속에 자랑스러운 어머니로 남아있다.

악연을 좋은 인연으로
“사회의 누가 훌륭하다고 해도 저의 양어머니 같은 분은 아직 못 뵈었어요. 글도 모르시는 산골 보살이셨지만 부처님 말씀을 철저하게 믿고 지키셨으니까요.” K씨는 어머니가 만일 자신을 차별하거나 미워했다면 지금 자신의 인생이 어찌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나쁜 인연은 질기기가 삼줄 같다. 그러나 좋은 인연은 부드럽기가 고요히 타오르는 불과 같다. 삼줄은 불을 묶을 수가 없으나, 불은 삼줄을 태워버릴 수가 있다”는 말씀대로 어머니는 K씨와의 악연을 자비와 사랑으로 태워 완전히 바꾸어 준 것이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7-04-24 오후 2: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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