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불평분자
“아빠, 웬일이세요? 저 차가 반칙해서 들어왔는데 화도 안 내시네요.”
중학생 아들이 신기한 듯 말한다. “응? 아, 아빠가 변했지,” 하며 K씨는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는 운전할 때 화를 많이 내곤 했었다. 출퇴근 시간에 길이 심하게 막히는 곳을 지나다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였다. 그러다 갑자기 끼어들거나 새치기 하는 차들을 보면 참기가 어려웠다. 저절로 상대 운전자에게 욕설을 중얼거리게 되곤 했다. 때로는 경적을 심하게 울리거나 차 안에서 주먹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양보하기가 싫어 밀어붙이다 접촉사고가 날 뻔한 적도 많았다. 그런 때는 차에서 내려 상대에게 쫓아가 뭐라 퍼붓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주말이나 명절에 지방에 가게 되면 고속도로가 종종 정체된다. 누구나 시간이 아까운데도 자기만 빨리 가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교통규칙을 위반하는 차들을 보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고속도로는 위험해서 자칫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곤두섰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던데 왜들 규칙을 안 지키는지 정말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견디기 어려웠어요. 운전이 고행입디다, 고행.” 마음이 불편하고 화가 쌓여 피곤했다. 외국에서는 심하면 총까지 쏜다더니 그 심정이 다 짐작이 되었다.
길 위의 보살되기
그러다 어느 날 도반에게 침착하고 평온하게 운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운전도 역시 마음 다스리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 다섯 가지 방편으로 노력하고 있다. 우선 출발하는 때가 중요하다. 출발기도를 하는 것이다.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걸면서 마음 깊이 ‘오늘도 무사히 다녀오도록 해 주십시오. 지금부터 내가 운전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 속에 계신 부처님이 운전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사실 사고 없이 다녀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나 전에는 충분히 감사하지 못했었다. 둘째, 가다보면 길이 정체될 수도 있고 시간이 늦어질 수도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화를 내고 초조해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냉철히 인정하는 것이다. 일일이 끄달리면 결국 나만 손해다. 내 마음의 평안은 나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반칙운전자를 만나게 되는 경우, 가장 힘들다. 그러나 역시 화를 낼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은 인과 응보, 상대가 잘못하면 그 과보는 그의 몫이다. 그런데 왜 내가불필요한 업을 짓나. 오히려 상대가 안 되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굳이 힘들게 욕하거나 화내면서 업을 지을 필요가 없다. 내 할 도리만 하면서 마음 속 부처님을 부른다. 넷째, 가능하면 양보한다. 물론 정말 바쁠 때는 양보할 여유가 없다. 그러나 대개는 2,3분 정도는 천천히 가도 된다. 끼어드는 차 혹은 차선 변경하려는 차가 있다면 무조건 최대한 양보해 준다. 이것은 쉬운 ‘보시’이다. 정 양보하기 싫으면 ‘내가 지금 해주었으니 다음에 나에게 해주겠지. 내가 급할 때를 대비해서 지금 하자.’하는 마음을 가진다. 간혹 K씨도 급히 끼어들어야 할 때가 생긴다. 예전엔 그냥 상황 봐서 했다. 이제는 속으로 ‘관세음보살. 자, 어느 차가 오늘 복을 지으시려나. 양보하실 보살 차 나오세요.’ 하며 평안한 마음으로 시도한다. 결과는 신기했다. 거의 모든 경우에 쉽게 양보를 해 주었다. 마지막, 도착하면 시동을 끄며 반드시 회향기도를 한다. ‘무사히 도착하여 감사합니다, 운전 잘해 주신 부처님.’ 이제 K씨는 화 내지 않고 평정심으로 보시하는 마음으로 운전하는 정진을 계속 하고 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마음 편하게 운전하니 몸의 피로까지 놀랍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나의 길은 어떻게
K씨는 자기 중심으로 손해 보지 않으려 했고 상대에게 화를 내며 길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가게 되었습니다. ‘나 하나를 버리면 길 아닌 것이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깨달음을 향한 길, 도(道)는 오늘 나의 길을 어떻게 가는가부터 시작됩니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