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 종합 > 기사보기
무조건 자기 콩싹은 자기 콩씨를 믿어야 합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한마디만 더 하고 일어납시다. 이 몸속에 다 있는 겁니다. 몸속에 지금 악업이고 선업이고, 팔자 운명이고 인과고 또는 유전성이고, 다 여러분 몸속에 지금 갖추어져 있는 겁니다. 딴 데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냥 일거일동, 너의 껍데기가 생겼기 때문에 알맹이가 있고 알맹이가 있기 때문에 그 알맹이에 의해서, 우리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다 그게 몸뚱이에 결부가 된 거다, 그러니 그거를 믿지 말고 어떠한 거든지 나오는 대로, 잘 나오든지 못 나오든지 다 거기다가 맡겨 놔라 하는 겁니다. 용광로에다 넣듯이 말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앞서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팔자 운명 뭐 영계성·업보성·유전성·인과성·세균성 이게 다 입력이 됐었는데 그거 차례차례로 자꾸자꾸 솔솔 나오는데 그게 다 녹는다 이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에서도 그냥 벌집 일어나듯 하고 바깥에서도 닥쳐오고 이러니까 그냥 얼마나 이게 인생살이가 힘들겠어요? 몸만 망가지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나오는 대로 네가 일거수일투족 생활하는 그 자체, 어떤 업보가 닥치든지 그 안에서 일어나든지 하여간에 모든 거는 고놈이 하는 거다, 그 자동 녹음기가 하는 거다, 자동 컴퓨터가 하는 거다 이겁니다. 그래서 그 컴퓨터라는 이름은 숙명통(宿命通)에 해당한다. 이 지금 천안(天眼)·천이(天耳) 또는 신족(神足)·타심(他心)·숙명 이 다섯 가지가 합해서 자동적인 컴퓨터 그게 되는 거고, 그렇게 그 다섯 가지로 인해서 벌여놓는 거고 생활하는 거고, 다섯 가지로 인해서 입력이 자동적으로 된 겁니다, 여러분 지금도 사시는 데 입력이 돼요. 입력이 되니까 어저께 입력된 것이 오늘 아는 것에 바로 그게 직결돼 있기 때문에 아는 거죠. 이해가 안 가십니까?
그래서 그거를 일거수일투족 보고 듣고 하는 것도 다 거기다가 놓으시라는 겁니다. 왜 놔야 하느냐 하면 공(空)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럼 공했다는 게 도대체 뭐냐? 더불어 같이 살고 있으니까요. 나쁜 거든지 좋은 거든지 더불어 같이 한 덩어리가 돼서, 한 세계가 돼서, 한 혹성이 돼서 살고 있으니까요. 따로 내가 했다, 내가 뭐 당한다, 내가 죄를 지었다 이럴 필요가 없죠. 그러니까 ‘야, 한마음 속에서 한 덩어리 속에서 나온 거니까, 한 덩어리 속에서 한마음으로 처리해.’ 그러고는 거기다가 되놓는 겁니다.
아니, 지금 놓고 가지 않습니까? 아, 자기네들이 그렇게 보는 것도, 항상 얘기하죠, 보는 것도 고정된 게 없고, 듣는 것도 고정된 게 없고, 일하는 것도 고정된 게 없고, 이 모든 게 고정된 게 하나도 없으니 우리가 물을 먹어도 내가 혼자 먹었습니까, 어디? 이 속에서 모두 “야! 목 타, 물 좀 줘!” 하니까 이걸 주는 심부름꾼이죠. 안 그래요? 그래서 심부름꾼이자 관리인, 그리고 집합소예요. 그러니 아예 네가 했다, 네가 했다 하다가 또 네가 너라고 하지 말라. 모든 게 공했느니라. 그러니 색(色)이 공이요 공이 색이니라. 그러니 그대로 허공에 꽃이 피어서 만발했으니 그 도리를 알아서 열매를 맺게 하란 얘기죠. 제 나무에서 열매를 맺는다면 그 열매가 제 나무에서 무르익어서 만 가지 맛이 날 것이니, 그 만 가지 맛이 나는 것이 다 응신(應身)으로서 화(化)해서 여러분께 베풀어라 이겁니다. 어때요?
팔만대장경이 전부 경전이다 하더라도 그 경전에다가 다 써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경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니라. 돌아가는 이 세상 쉴 사이 없이 찰나찰나 돌아가고, 찰나찰나 나투면서, 화(化)해서, 찰나찰나 변질이 되면서 돌아가는 이 자체가 바로 팔만대장경이니라.” 그러니 이 도리를 먼저 어디 가도 흔들리지 않게 뿌리를 단단히 박아놓고 비바람이 아무리 쳐도 이 뿌리가 뽑히지 않게 해놓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 바로 경을 한 번 보면 그게 납득이 되고 “아하! 이게 이 소리구나!” 하고 전부 탄복을 하지만, 내가 뿌리도 제대로 박아놓지 않고 그 도리를 모르는 채 책을 아무리 봐도 그냥 겉핥기죠.
그냥 이론으로 이름만 그냥 졸졸졸졸 외우고선 금강경을 읽었다, 무슨 화엄경을 읽었다, 법화경을 읽었다, 능엄경을 읽었다 온통 읽었다는 소리는 다 하죠. 그러나 읽었다는 부처님의 말씀 한마디도 자기가 실천할 수가 없는 거죠. 그리고 남을 위해서 그 자기의 에너지를 배려해 줄 수가 없죠. 그 말은 이론이기 때문에 한데 떨어지고 말아버리니깐요. 그래서 여기서는 경전부터 보지 말라. 마음의 도리부터 공부해서 완전히 뿌리가 박혀서 흩어지지 않을 때에 경전을 한번 봐라. 그러면 경전이 너를 보지 않을 거고 네가 경전을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겁니다. 우리가 어떠한 문제다 할지라도 부처님의 말씀 그대로 작용을 할 수 있고, 실천을 할 수 있다면 나부터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러니 여러분과 이렇게 같이 도반으로서 공부하시게 된 것을 참 기쁘게 생각하면서 우리는 세계적으로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 인도나 일본이나 그런 데서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불교 교재가 나와서 대학에서 철학이니 뭐니 다 배우게끔 돼 있는데, 우리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그게 배출되지 못하고 있죠. 모두 우리 한국은 불교라는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들 있어요.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여튼 감사합니다.
참, 질문하실 분 없어요?
▲사회자: 예, 몇 분 있습니다.
▲스님: 네, 질문하세요.
▲질문자1(남): 스님의 회향하는 법과 하심하는 법을 크게 말씀하셔도 알아듣지 못하는 문외한임을 통감하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의 법을 받들어 처음에는 뭔가 확 트이는 것 같고 뭔가 넓게 보이는 것 같고 그렇지만, 점차 가다보면 그것이 그것인 것 같고 저것이 저것인 것 같고,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저 또한 그런 마음이 오고 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비유해서 말씀드린다면 저희가 동굴 속을 헤매고 있는데 스님께서 등불 하나 밝혀주셨는데, 그 빛만 볼 줄 알았지 그 밖에 광대한 법이 있는 것을 모르는 저희들의 마음을 통감하면서 이렇게 질문드립니다.
▲스님: 그러니까 자기 몸속에 들은 세계를 보란 말입니다. 그것만 보면 전 대천세계가 보일 테니까 말입니다. 자기 몸속에 천차만별의 모습과 천차만별의 의식과 천차만별의 생각이 들어 있으니깐요. 그러니까 그 많은 생명의 의식들이 제가끔 일어나는 거를 자기라고들 모두 그러거든요. 안 그래요? 그러니깐 멋대로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업식들이 생겨난 것인데, 그 업식들이 해코지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자기한테서 나오는 거라는 거죠. 잘 생각이 나오는 것도 자기한테서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 이 몸뚱이 하나를 가지고 우주라고 생각을 한번 해보세요. 지구라고 생각을 해도 되고요. 지구에 붙어서 다 살고 있는 생명체들이라고요. 그럴 때 그것이 모두 같이 동일하게 돌아가면서 같이 더불어 살고 있는데 어떻게 나만이 산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혼자 망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혼자 먹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깐 내가 잘못됐든 잘됐든 거기다 다 놓으라는 겁니다. 네가 너 자신 혼자 그냥 이 껍데기가 한 게 아니니까, 그냥 껍데기 속에서 한 거니까 껍데기 속에다가 다 맡겨 놓으라는 거죠. 껍데기 속에다 맡겨 놓으면 거기서 벌써 대뇌로 통신이 됩니다. 통신이 돼서 중뇌에서 책정을 해서 사대(四大)로 또 통신이 되죠. 그럼으로써 이거는 내가 살 길이 터지는 겁니다. 또 살 길이 막히는 것도 이 한생각에 의해서예요. 그래서 한생각을 잘하면 구덩이에서 나올 수도 있는가 하면 한생각을 잘못하면 구덩이에 빠진다 하는 겁니다.
이런 거를 누가 다스리고 나갑니까! 자기 주인공 선장입니다. 그 선장은 영원한 자기의 선장이며 불기둥입니다. 그 불기둥에, 그 헤아릴 수 없는 수레에 모두 실려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조건, 무조건입니다. 무조건 자기 콩싹이 자기 콩씨를 믿어라 이겁니다. 그 콩이 과거 일로 돌아가서 뿌리에 달린 게 아니고 바로 자기 싹이 있는 데에 붙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뿌리라고 하는 것도 콩씨입니다. 콩씨가 그 뿌리로 화(化)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화한 콩씨와 화하지 않은 콩씨와 둘이 아니다 이겁니다.
자(子)와 부(父)가 둘이 아니게끔 통하면 때로는 가만히 있으면 자와 부가 하나로 돼가지고 부가 돼서 부처가 되고, 또 무슨 일할 게 있어서 생각을 했다 하면 부가 자로 하나가 돼서 법신(法身)이 되고, 또 움죽거리고 모두 이렇게 간다, 움죽거릴 게 있다 행동할 게 있다 이런다면 법신이 그 자인 육신과 하나가 돼가지고 화신(化身)이 된다. 화신이 된다는 건 화한다 이거죠. 화해서 또 남을 위한다 할 때는 응신(應身)이 됩니다. 이렇게 찰나찰나 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변화무쌍하고 그렇게 묘법인데 우리가 그걸 알 권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알 권리를 찾지 않고 그냥 더퍽더퍽 가다가 그냥 아무렇게나 죽는다면, 또 그 자리에서 나와서 종자는 종자로 또 나와서 그 종자로 또 살 겁니다. 깨씨가 팥씨 될 리 없고 팥씨가 깨씨 될 리 없고, 씨 종자대로 이 세상에 나오죠. 그러니까 마음공부란 씨 종자가 따로 없이 그렇게 공부하게 되면 즉, 불씨가 된다 이겁니다. 불종자가 된다 이거죠. 됐습니까, 이제?
▲질문자1(남): 믿음의 변함없는 힘을 키워가겠습니다.
▲질문자2(여): 이렇게 스님을 대하고 보니 참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미련한 중생이 한 치 앞을 못 내다보고 자식에 대해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저의 장남이 이 절에 다녔거든요. 그런데 금년에 서른셋입니다.
▲스님: 서른셋이요?
▲질문자2(여): 네, 장남이요. 그런데 어쩐지 저리 혼사일에 마음을 열지 않아서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스님을 찾아뵈러 왔습니다.
▲스님: 아, 그거는 본인이 맞는 사람이 없기에 마음을 내지 않겠죠.
▲질문자2(여): 아무리 제가 몸이 피곤하더라도 이렇게 이 절에 오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이 참….
▲사회자: 결혼시켜달라는 말이죠?
▲스님: 그거는요, 본인이 ‘내가 하고 싶을 때는 딱 될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냥 그대로 되는 겁니다.
▲질문자2(여): 그렇게 되겠습니까?
▲스님: 네. (대중 웃음) 그것이, 그것이 법이니깐요.
▲질문자2(여): 네. 하도 부모된 도리로써 너무 답답해가지고 이렇게 스님을 뵈었습니다.
▲스님: 답답해하실 게 없어요. 그냥 탁 놔버리면 그냥 배고프면 먹고 똥마려우면 똥 누고 자고 싶으면 잘 겁니다. 걱정할 게 없어요. 그렇게 붙들고 늘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자손들이 제대로 될 게 못 된단 말입니다. (대중 박수)

▲질문자3(여): 감사합니다, 스님. 저는 질문드리러 온 게 아니고요, 저희 아들하고 동시에 같이 체험한 걸 말씀 올리러 왔습니다. 제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인데 요번에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와가지고 스님께 말씀 올리려고 했는데, 어젯밤에 공부하고 오다가 계단에서 굴러서 발을 삐어가지고 못 왔거든요. 그래서 관법(觀法) 노트를 썼는데요, 스님께 올리고 싶습니다.
저는 대구지원에 다니는 중학교 3학년 구본철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이렇게 큰 사건은 처음이며 주인공이 제일 고맙고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큰 경험담도 체험했고요. 그러나 이것은 중학생으로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도록 하려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글을 씁니다.
때는 5월 초, 저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무심결에 자동차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때 거짓말로 나는 “차를 잘 몬다. 내 경력이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라고 거짓말을 하였더니 친구들은 정말로 믿고 언제 한번 타자고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농담인 줄 알고 그에 대한 응답을 하였습니다. 5월 초 어느 토요일 날, 진짜로 아이들은 독서실 간다며 핑계를 대고 새벽 한 시에 연락이 왔습니다. 차를 몰고 나오라고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원래 천성이 좀 겁이 없기 때문에 엄마 몰래 키를 훔쳐내어 집을 빠져 나왔습니다. 막상 키를 갖고 나오니까 다리가 후들거려 도저히 차 안에 타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도 친구들을 부르고 차에 태워서 운전대 한 번 잡지 못한 실력으로 막상 출발을 하였습니다. 차는 오토매틱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초보라서 잘 못하겠는 겁니다. 엄격히 말해서 초보보다 더 낮은, 면허증도 없고 운전대에 손도 한 번 안 올려본 내가 그래도 출발하였다니 막상 그런 생각을 하니 용기가 붙어 대구를 3시간 동안 다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워놓고 이러기를, 매주 공휴일 새벽마다 계속 차를 몰고 나갔습니다. 심지어는 구미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간이 붓지 않은 이상 이 같은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몰고 다녔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동화 속의 주인공인 줄 착각할 정도로 심하였습니다.
계속 그러기를 한 달, 때는 6월 5일. 학교에서 제 친구 중에 나처럼 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은 즉시 친구에게 두 차로 구미까지 가자고 제안을 하니, 즉시 좋다고 하며 새벽 2시까지 앞산 주차장으로 오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새벽 2시가 되자 저는 차를 몰래 몰고 저를 포함한 다섯 명을 태우고 주차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도착하니 과연 프린스 신형 한 대가 있었습니다. 저는 엘란트라고요. 즉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내가 앞장서서 갈 테니까 추월하지 말고 따라와라. 길은 내가 아니까.”라고 말하고 출발하였습니다. 신천 대로를 진입하여 약 시속 100km를 밟으며 가고 있었습니다. 신천대로는 말 그대로 큰 도로이기 때문에 위험도 높고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긴 길이었기에 저는 그대로 달렸던 겁니다. 가다 보면 북대구 인터체인지가 나오는데 그리로 가면 다른 데가 나오기 때문에 직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리로 가려다 내 친구가 “니 어디로 가노?”라는 소리를 듣고 갑자기 틀었습니다. 사고가 날 뻔 하였지요.
그런데 그 날은 이상하게 100km만 밟아도 차가 흔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구미 갈 때는 150km를 밟아도 아무 이상 없던 차가 그날따라 이상하였습니다. 미리 주인공이 암시해주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저는 제 습에 이끌려 아무 생각 없이 막 달렸습니다. 그런데 제 뒤의 차가 쌍라이트를 켜는 것이었습니다. 제 친구 차였습니다. 저는 왜 쌍라이트를 켰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까 다른 데로 빠지려다 갑자기 들어온 것을 보고 쌍라이트를 켜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비상 깜빡이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미안하다고.
그런데 문제점이 제 친구는 그런 생각이 아니고 어떠한 생각으로 불을 켰느냐 하면 ‘너희 차는 소형차고 인구도 많으니까 내 차에 태워라. 따라서 내가 앞질러 간다.’ 이런 뜻이었습니다. 또 제가 비상 깜빡이로 대답을 준 것을 어떻게 들었냐 하면 ‘알았다. 날 앞질러 가라.’라는 뜻으로 들었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저는 그 당시 120km로 가고 있었고 제 친구는 절 따라 잡는다고 140km로 갔습니다. 저는 물론 추월하는지도 몰랐죠. 옆에 번쩍거리더니 갑자기 핸들을 꺾어 제 차 앞부분을 박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끽 소리가 나는 동시에 중앙분리대를 박고 제 친구 차가 위로 붕 떴습니다. 쿵하고 내려옴과 동시에 차가 뒹굴려고 했습니다. 그 전에 제 차 안에 탄 사람은 모두 안전벨트를 해서 밖으로 나가떨어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 차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기 때문에 살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차가 뒹굴었을 때 찌그러져서 안전벨트가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기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다 주인공의 덕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당시 제 차가 제 친구 차를 밀고 나갈 당시에, 찰나에 수억만 생각이 다 떠올랐습니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게 ‘주인공!’이란 한마디밖에 없습니다. 막상 세우고 나서 생각나는 게 친구들의 생명이었습니다. 차는 뒤집어져 있고 반은 부서져 있었으니 어떻게 저기서 살아남겠다는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뒤집어진 차에서 뒷창문을 깨고 절룩거리며 3명이 다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일단 이 자리는 피하자고 말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전화기 있는 데까지 뛰어가는데 계속 스님 부르고 주인공을 부르며 갔습니다. ‘주인공! 주인공! 주인공! 너만이 할 수 있어.’ 백 번도 더 관(觀)하며 전화기로 달려갔습니다. 집에 전화를 해서 어머니께 현장으로 오시라고 연락을 해놓고 우리끼리 현장으로 달려가다가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결국 들키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거의 절망적으로 스님을 불렀습니다. 양쪽 부모님이 일을 보시는데 경찰관 아저씨가 친절하게 내 일처럼 최대한 신경을 써주시면서 죄를 덮어주셨습니다. 다 주인공의 나툼이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일단 일은 좋게 일단락지었습니다. 사고 난 이튿날 주인공에게 ‘주인공, 감사해! 스님, 고맙습니다.’ 열심히 외쳤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주인공을 더욱 더 믿고 관(觀)하게 되었으며 차만 보면 소름끼치는 것도 생겼습니다. 해결사 주인공, 해결사 주인공을 믿는 만큼 더 크게 해결해주시는 주인공 더욱더 믿고 따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구본철 올림. (대중 박수)
그런데 스님, 시간이 없는데 잠깐만 더 말씀드릴게요. 이 사건은 사건이 나고 해결되기까지 3시간이 걸렸거든요. 그래서 너무 일이 물 흐르듯이 해결이 되고 아침에 지원 스님께 전화드리고 나서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데 갑자기 한생각이 났거든요. 두 달 전인가 한 달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법회에서 스님께서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보다는 이 도리를 물려주는 것이 세세생생 건지는 것’이라고 법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듣는 순간에 내가 부모로서 저 자식한테 어떤 걸 해줄까 마음이 막 올라왔고, 그래서 아들 이름으로 저축된 것이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예금한 거하고 또 보험에서 축하금으로 나온 거하고 아들 앞으로 통장을 만들어서 예금한 것이 있었는데, 보이는 통장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無)의 세계에다가 아들 앞으로 저축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원의 스님께 그 보시금을 올리려고 가져가면서 주인공한테 관하기를 ‘주인공, 이 돈을 올리는 자리도 받는 자리도 한마음 주인공이고 나는 철저하게 심부름만 할 뿐이다.’라고 관하고는 스님 방에 들어가서는 스님한테 이렇게 말씀을 올렸습니다. “스님, 저는 한 치 앞도 못 보고 삽니다. 지금 당장 이후에 뭐가 풀려나올지도 저는 모릅니다. 이 돈은 본철이 돈이니까 본철이 앞으로 올리니 스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세요.” 하고 그렇게 올렸거든요. 그런데 그 한생각이 나면서 제 주인 자리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고 저희들이 공부를 잘하나 못하나 오직 주인공만 믿는 이 마음만 놓치지 않고 간다면 보이지 않는 부처님 자리에서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스님 이전에도 부처님은 계셨고 스님 이후에도 계시겠지만, 살아 있는 부처님께 인연 되어 이 도리 공부하고 감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스님: (합장하시면서) 네, 감사합니다. (대중 박수) 그런데 누구나가 다 우연이라고 생각하시지 마세요. 우연히는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거저도 없고, 우연히도 없고 꼭 내가 한 거만큼 내가 하는 대로 이렇게 갈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지금 저분이 하신 말씀과 같이 그것도 옛날에 이런 얘기를 내가 가끔 했죠. 양 무제가 달마 대사한테 묻기를 “이렇게 많은 시주를 하고 절을 지어드리고 스님들의 옷을 해드리고 밥을 해드리고 이렇게 많은 시주를 했는데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하고 물었거든요. 그러니까 “공덕이 하나도 없다.”라고 그랬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얄밉겠어요. 그랬듯이 우리가 이 마음의 도리하고 연결이 되지 않는다면 그거는 헛 시주입니다. 헛 시주!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없어야 되겠죠.
예를 들어서 지금 저분이 ‘나는 있는 통장보다도 없는 통장을 위해서, 난 그 애한테 없는 통장에 예금을 해주겠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저거는 여기다가 놔도 또 지원의 스님한테다 줘도 그 스님 자체가 받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돼야 합니다. 그 스님 자체가 받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준 것도 아니게 됩니다. 왜냐? 자기 거를 자기가 한 거지, 자기네 그 아들한테로 무심통장을 한 거지 그건 개별적인 우리들을 준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이 시주를 할 때는 항상 생각을 하고 그냥 무심코 받는다 하더라도 그거는 우리를 준 게 아닙니다. 우리 스님네들에게 준 게 아니고 불사를 하라고 줬어도 그건 앞으로 자기 불사를 하기 위해서 준 거지, 이 중들의 불사를 하게 하기 위해서 준 게 아닙니다.
그래서 달마 대사께서는 양 무제더러 네가 이 시주를 하고, 네가 시주한 거는 대가를 바라고 또 시주를 내가 했다고 만백성들한테 풍기고 그러고 했으니 무슨 시주가 공덕이 될 게 있느냐 이거야. 그러니 하나도 한 게 없다 이거야. 그런 거와 같이 우리가 시주를 해도 누가 요만한 거 하나 거저 먹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이 우리 한마음선원의 식구들은 말입니다. 거저 먹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모두 자기네들 자기 밥들 먹고 사는 스님네들이란 말입니다. 왜 그러면 남들이 갖다 주는 밥 먹고선 왜 자기 밥들이라고 하느냐, 그런다면 자기 할 일을 다 잘하고 가니깐 자기 할 일을 하고 가니깐 그 밥을 자기가 내려먹을 수 있으니까 자기 밥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억만금을 갖다 준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넘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눈을 휘번덕거리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주머니 차지 않을 겁니다. 그거는 왜 그럭합니까? 근중한 내 부모가 내 종자를 줬고 그 종자로 인해서 몸을 탄생을 시켰는데, 그것도 그 몸을 탄생을 시킨 것도 제대로 못 가지고 갈 걸, 영원히 가지고 못 있을 걸 왜 그거를 짐을 져요? 내가 왜 짐을 집니까? 여러분의 짐을 왜 내가 집니까? 그냥 그거를 받아서 여러분을 위해서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쓰는 것뿐입니다.
그럼, 오늘 이 시간에는 다 된 겁니까?
▲대중: 네.
▲스님: 그러나 이 시간에도 다 됐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항상 이 여러 마디 중에 그래도 어딘가가 뭐 한 가지라도 있겠죠. 그러니 그렇게 해가지고 나가시면서 무조건 자기를 믿으세요. 못났든 잘났든, 못생겼든 잘생겼든, 잘살든 못살든 자기 주처만이 자기를 이끌어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남의 부모가 잘나고 부자라고 해서 내 부모를 바꿀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십시오.
95년 6월 18일
2007-07-09 오후 6:05:39
 
 
   
   
2024. 5.1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