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방편품’에 ‘일체치생(一切治生)’을 설하고 있다. 여기서는 유마거사의 삶에서 세간과 출세간의 중도적 생활 그대로가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장으로 발전되어지고 있다. 유마거사는 “속인으로 백의를 몸에 걸치고도 사문의 수행을 완수하며, 재가에 있으면서도 삼계에 물들지 않는 생활을 하였다. 처자가 있으면서도 항상 청정한 범행으로 어른들과 어린이를 가르치며, 모든 생업의 경영(一切治生)이 순조로워 세속적인 이익을 얻지만 그것에 기뻐하지 않았다.”(<維摩經>‘方便品’)
이러한 대승경전의 ‘치생산업’의 사상은 대승계율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범망경> ‘39경계(輕戒)’에는 “불자들은 언제나 일체중생을 교화해야 한다. 승방을 건립하고 산림에 전답(田畓)을 마련하고 불탑을 세우며, 동하안거(冬夏安居)에는 좌선할 수 있는 처소와 불도를 닦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전답을 경작하는 노동과 안거수행이 함께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승경전의 노동생산설과 중국의 치생산업설이 일상의 수행과 결합하여 당나라 시대의 삼계교(三階敎)가 탄생하게 된다. 삼계교의 창시자 신행(信行)은 노동생산과 빈민구제를 통하여 노동과 수행을 일치시키는 수행공동체적 결사(結社)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중국불교의 노동과 수행을 일치시키는 정신이 기본이 되어 선종의 선농겸수(禪農兼修)의 선풍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중국 선종에서 맨 처음 교단을 형성하고 교단의 유지와 운영을 위해 노동 작무를 일상생활에 도입한 것이 동산법문(東山法門)이다. 동산법문을 개창한 도신(道信)과 그를 계승한 홍인(弘忍)은 기주 황매의 쌍봉산(雙峰山)을 근본도량으로 하여 500여 대중이 운집하여 노동과 수행을 겸하는 수행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선종교단은 노동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중에서 이미 운집 대중이 몇 백을 넘어서면 단월들의 시주만으로는 운영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홍인은 “낮에는 노동에 열중하며 대중을 공양하고 밤에는 좌선하기를 새벽까지 하였으며, 일찍이 게으름을 피운 일이 없었으며 여러 해를 지극히 열중하였다”(<傳法寶記>‘弘忍章’.<歷代法寶記>‘弘忍章’,<大正藏>제51권, p182上.)라고 전한다. 그가 일찍이 수행자가 산림 가운데 주거하는 이유에 대해 “심산유곡에서 자란 나무가 낫과 도끼에 베임을 피해서 큰 나무로 자라서 장차 동량(棟梁)으로 크게 쓰이는 것과 같다”라고 하여 산중불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산중에서 수행함에 반드시 전답을 개간하여 농경에 힘써야 함은 당연지사라 할 수 있겠다.
아울러 <염송설화>에는 홍인이 전생에 산중에서 평생 소나무를 심으면서 수행한 도인이라 하여 그 별명이 ‘재송도인(栽松道人)’이라 불렸음을 알려주고 있다.
선종은 동산법문 이후 자연스레 노동과 수행을 병행하는 전통이 수립되어, 신수(神秀)와 혜능(慧能)의 남북종선(南北宗禪)에서는 이미 체질화 되어진 것 같다. 신수가 홍인의 문하에서 나무하고 물 긷는 운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혜능 역시 행자시절 8개월간 방앗간에서 중노동을 하였으며, 수법(受法) 이후 16년간 숨어서 행각하는 동안 온갖 궂은 일로 연명하였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혜능을 평하여 말하기를,
옳고 그름(是非)을 논하는 장(場)에 함구하고, 색과 공의 경계를 마음에 융합시켰다. 노동에 힘써 대중을 공양함에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 사위의(四威儀: 行住坐臥)가 모두 도량이고, 삼업(三業: 身口意)을 모두 불사로 삼았다.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둘이 아니며(動靜不二), 내지 말함과 침묵함이 항상 하나이었다(語默恒一).(<楞伽師資記>,<大正藏>제85권, p 1289中.)
혜능의 남종선은 정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경제적으로 자급자족하므로 국가의 원조나 관료 및 백성들의 보시를 최소화하며 자율적이며 자주적인 노동과 청빈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이다. 즉 혜능의 남종교단은 왕공 사대부의 후원으로 교단을 유지 했다하기 보다는 서민 민중들과 함께 일하며 수행하는 대중불교적 면모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이러한 남종선의 가풍은 훗날 생활이 곧 수행이요, 수행이 곧 생활인 생활선(生活禪)으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혜능 남종선의 가풍은 조용한 곳에 앉아서 좌선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논밭에서 일하며 일체 경계를 대하는 가운데서 경계에 흔들림이 없는 동정일여(動靜一如)의 경지를 역설하고 있다. <단경>에 “밖으로 일체 경계에 걸림이 없어서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고, 자성이 공함을 보아 어지럽지 않음이 선(禪)이라고 좌선을 정의하고 있으며, 또한 고요한 가운데 고요한 것은 진정한 고요함이 아니요, 움직이는 가운데 고요한 것이 진정으로 고요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