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이야기>를 이창동 감독이 각색 감독한 영화 ‘밀양’은 죄와 용서, 그리고 구원이라는 형이상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마음은 동요하고 혼란하고 지키기 힘들고 억제하기 힘들다. 지혜 있는 사람은 이를 바로잡는다. 마음은 잡기도 어려울뿐더러 가볍게 흔들리며 탐하는 대로 달아난다. 마음을 바로잡는 일이 행복의 근원이다”라는 <법구경>의 말씀처럼, 이창동 감독은 유괴된 아들의 죽음을 통해 변화하는 신애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밀양’의 신애는, 남편이 사고로 죽은 후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열심히 살아보려고 한다. 그녀는 교회에 나오라는 약사의 권유에, 약국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보이는 것도 믿을 수 없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신애의 마음은 어린 아들이 죽은 후 차갑게 얼어붙는다. 너무나 큰 충격 앞에서 그녀는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다. 그 후 신애는 왜소한 인간 존재를 깨닫고 교회에 나가 통곡하며 신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이제 그녀는 신에 의해 구원받은 것처럼 생각된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 주위에 전도하며 깊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아간다. 부처님도 <잡아함경>에서 ‘남을 해칠 마음을 갖지 말고 원한을 품지 말고 성내는 마음을 두지 말라. 비록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더라도 그것 때문에 함부로 말하지는 말라’고 하셨다.
이창동 감독은 신애의 고통을 통해서 죄와 용서에 대해 묻는다.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낯선 땅 밀양에서 기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돈 있는 것처럼 행세한 것뿐이다. 아들이 다니는 웅변학원 학부모들 앞에서 땅 계약한다고 큰소리친 것 밖에 없다. 그러나 결과는 아들의 죽음이다. 극단적 사건이 일어나고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지만 리얼리스트인 이창동 감독은 냉정하게 인물을 응시한다.
신애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기로 마음먹는다. ‘밀양’에서 가장 중요한 씬은 신애가 교도소로 범인을 면회 가는 장면이다. 아들을 죽인 죄인을 용서해 주겠다며 신애는 교도소를 찾는다. 하지만 범인은 주님을 영접하면서 이미 그 분이 자신을 용서해 주었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말한다.
신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면회가 끝난 후 교도소 밖으로 나왔다가 힘없이 주저앉고 만다. 왜, 어떻게, 자신이 범인을 용서하지 않았는데 신이 먼저 그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인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 이제 관객들은 신과 인간의 팽팽한 대결이 전개되고 있음을 깨달으며 깜짝 놀라게 된다. 어느새 죄와 용서라는 무거운 테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밀양’의 신애는 처음에는 무신론자였다가 아들의 죽음을 겪은 뒤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열성 신도로, 그리고 교도소에 수감된 범인을 면회한 뒤에는 오히려 신을 증오하는 입장으로 변모한다. 이창동 감독은 신애의 가슴 아픈 상처를 통해 죄와 용서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밀양’의 마지막 씬은 제목을 그대로 형상화하고 있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에 상처를 받고 고통받는 영혼은 어떻게 구원받는 것일까? 이창동 감독은 아무 말 없이 카메라를 이동해서 은밀한 햇빛과 그 햇빛을 받아 모습을 드러내는 평범한 사물을 보여준다.
마치 <중부경전>의 “지나간 것을 돌아가지 말라. 오지 않은 것을 바라지 말라.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현재도 잘 관찰해 보면 순간순간 변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를 살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처럼.
하재봉
영화평론가·동서대 영상매스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