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성불(見性成佛)하고 요익중생(饒益衆生)하기 위해 출가한 오늘날의 수행자는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수용해야 할 것인가? 노동은 출가 공동체의 유지와 운영의 방편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노동 그 자체가 그대로 수행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선종의 입장에서 볼 때 선종의 생존과 발전의 방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로 선농겸수(禪農兼修)를 통한 자급자족(自給自足)의 생산활동을 들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도불교에서는 출가 수행자는 탐욕을 제어하기 위해 무소유를 원칙으로 하되 오직 삼의일발(三衣一鉢)만을 소유하며, 걸식을 통한 일종식(一種食)을 생활원칙으로 삼고 있다. 또한 여러 초기경전에서는 한결같이 출가사문(비구)의 생산노동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과 명상 그리고 유행을 통한 수행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숫따니빠아타(Suttanipata)>와<잡아함경> 제4권을 통해 너무나 잘 알려진 바라문과 석존의 대화, 즉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믿음은 종자요,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내 멍에와 호미, 부끄러움은 괭이자루, 의지는 잡아매는 줄, 생각은 내 호미날과 작대기입니다. … 노력은 황소이므로 나를 안온의 경지로 실어다 줍니다. 물러남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 그곳에 이르면 근심걱정이 사라집니다. 이 밭갈이는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고 단 이슬의 과보를 가져옵니다. 이런 농사를 지으면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게 됩니다.”(법정 역,<숫타니파타>샘터, 1991. p30-31)에 의거하면, 육체적 노동과 물질적 생산을 장려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노동과 수행에 의한 해탈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인도불교의 전통이 중국에 전래되어 자연환경과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출가 승려가 직접 노동 작무에 참여하고, 물질적 생산활동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변모하게 된다.
특히 선종교단에서는 적극적으로 선수행과 노동활동을 일치시키는 ‘선농겸수(禪農兼修)’의 생산불교로 발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선농겸수의 정신과 실천은 자급자족(自給自足)의 생활방식이 되어 법난(法難)이라는 외부의 충격에도 선종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보존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선종의 법맥이 지금까지 전수되어지고 있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여타의 종파와 달리 선종이 오늘날까지 유지 발전되어 올 수 있었던 중요한 인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동을 통한 자급자족의 생활방식을 들 수 있다.
선종에서 장려하고 있는 노동은 단지 생산활동의 수단으로만 실시된 것이 아니다. 노동의 일과와 수행정진이 겸수되어 노동의 참가치를 구현했을 뿐만 아니라, 동정일여(動靜一如)라는 수증(修證)의 방편으로 승화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선종에서의 노동의 수행화(修行化)는 불교사에서 획기적 사건으로 선종이 선종다운 종지종풍(宗旨宗風)을 선양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 선종은 노동의 가치를 상실하고 자급자족이라는 생산불교(生産佛敎)의 전통이 무너져 가고 있다. 본고에서는 선농겸수의 선풍 속에 생활선의 조사선 가풍을 되살리기 위한 일련의 사상적 작업의 일환으로 선종의 노동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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