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큰일이네, 정말 어디로 가야 되는건지….”
M씨는 고민이 되어 속이 탈 지경이었다. 갑자기 실직한 후 벌써 여러 달이 지났다. 다음 주에 드디어 새 회사 면접을 보러 가야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가장 가고 싶은 두 회사에서 같은 날에 면접을 보러오라는 통지가 왔다. 시간까지 비슷한 오전이었다.
두 회사의 거리가 멀어서 두 군데 다 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그런데 만일 잘못해서 정작 될 곳을 놓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미 사십이 넘은 나이에 요즘 같이 취업하기 어려운 때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할 형편이었다. “도대체 어느 쪽이 내가 취직될 회사인가?” 머리를 싸매었지만 알 수가 없었다.
스님께 찾아갔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스님, 부탁입니다, 스님께서 좀 가르쳐 주십시오.”했다. “거사님, 거사님이 초심자라면 제가 다르게 말씀드렸겠지만요. 거사님은 십년 넘게 참선을 열심히 하시는 줄로 아는데 왜 마음속에 있는 부처님, 참 나에게 물어보지 않으세요?” 아, 내 안에 있는 부처님이 진짜 나, 참 나라고 했지. “스님, 참 나라는 말씀을 이해는 했지만요, 전 사실 잘 모릅니다. 그동안 참선한 것은 마음이 편해지고 좋아서 했지 제 속에 부처님은 모르겠거든요?” “아시든 모르시든 거사님이 나무라면 뿌리가 마음이에요. 자기 뿌리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 “스님, 전 급하거든요. 인연 있는 회사를 물어보고 싶어요.” “부처님이 여기 계셔도 바로 거사님 마음뿌리에 써 있는 인연을 보고 답하시지 다른 사람 것을 보시겠어요? 그러니 부처님께 묻고 싶거든 자기 마음에 물으면 돼요.”
결국 M씨는 스님이 3일만이라도 열심히 정진해 보라는 말씀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도 답이 안 나오면 도와주신다고 했다.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었다. 아예 아침에 절로 출근했다. 사시 불공을 드리고 법당 문을 닫을 때까지 마음 정진에 들어갔다. 다행히 그동안 참선하여 마음을 모으는 데에는 익숙했다. 스님 말씀처럼 “어디입니까? 참나, 자성(自性) 부처님!” 하고 마음 깊이 물어보게 되었다. 첫날엔 자꾸 불안하고 의심이 들었다. ‘설마 마음에 답이 있다니?’ 그런데 집에 와서 아내와 아이들 얼굴을 보니 ‘정신차리자! 이번에 안 되면 누가 먹여살리나!’ 하고 울컥했다.
다음 날에는 체면이고 뭐고 마음으로 간절히 외치게 되었다. ‘참 나, 제 속에 계신 부처님! 저 이번에 안 되면 죽어요. 가르쳐주세요! 꼭 알아야 돼요.’ 이제 좌선할 때는 물론 공양할 때나 잠시 걸을 때나 정신없이 “어딥니까? 어디?”하고 묻고 있었다. 밤에 돌아올 때도 집에 와서도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 날, 법당에 앉아 거의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디예요? 어디?”하고 묻는데 문득 그 말이 메아리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저절로 마음속에서 어디? 어디? 하고 되는 것 같았다. 동시에 놀랄 만큼 마음이 편해지고 속에서 힘이 솟아났다. 내가 너무 집중하다 이상해진 것 아닌가 했으나 정신은 맑고 또렷했다. 계속 집중해서 물어보았다. 그러다 앉은 채 깜빡 졸았던 것 같다. 이러면 안 되지 깨야지 하면서 눈을 뜨는 순간 앞에 커다란 화살표가 있었다. 길 위의 이정표처럼 생겼는데 그 안에 뚜렷하게 ‘2’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M씨는 너무 놀라서 숨이 멈출 지경이었다고 한다. 곧 뜻을 알 수 있었다. 2는 바로 두 번째 연락 온 회사였다.
“만일 남이 이런 얘기 했으면 절대 안 믿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직접 겪고 보니!”
현재 2번 회사에 다니고 있는 M씨는 자력과 타력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디 가서 묻거나 부처님께 기도해서 답을 알아도 그것은 모두 자기 마음에 있는 내용이다. 스스로 읽지 못하니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외부에 물어야 하는 것이다. 원래 답은 자신 안에 있다. 문제는 얼마나 마음을 비우고 집중해서 그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는가이다. M씨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법어가 있다. “자기 자신에게 묻도록 해라. 자신의 마음이 나침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