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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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공 스님(3)
어느 해 가야산 해인사에서 만공(滿空1871∼1946) 선사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편지가 왔는데, 내용은 이랬다.
“시방세계가 적멸궁(寂滅宮) 속에 건립되었다 하는데, 그 적멸궁은 어느 곳에 건립되었습니까?”
만공 선사가 답했다. “시방세계는 적멸궁에 건립되었으나, 적멸궁은 나의 콧구멍 속에 있느니라.”
다시 편지가 왔다. “적멸궁은 선사의 콧구멍 속에 건립되었거니와, 선사의 콧구멍은 어느 곳에 건립되었나이까? 저희들을 그곳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만공 선사가 답했다. “일찌기 가야산엔 적멸궁만 있다더니, 오늘에 와서 다시 보니 과연 그렇구나.”
‘적멸한 궁전(寂滅宮)’이란 미혹(迷惑)과 집착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한 최고의 경지, 즉 모든 번뇌와 고뇌가 소멸된 열반의 경지를 뜻한다. 그리고 ‘콧구멍(鼻孔)’이란 말은 불성(佛性),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분(本分), 본각(本覺)을 상징한다.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생겨날 때 코가 먼저 생기며, 오관 중에서도 콧구멍이 먼저 뚫린다고 본 데서 유래했다.
해인사 수좌의 질문에 만공 선사는 시방세계가 적멸궁에 건립되었으며, 적멸궁은 다시 당신의 본래면목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각자의 콧구멍 즉, 진여자성(眞如自性)에서 미혹과 깨달음, 중생과 부처, 번뇌와 보리, 주체와 객체 등 일체 만법이 건립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콧구멍, 즉 본래면목은 다시 어느 곳에 건립되었을까? 이는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공안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 스님이 조주(778~897) 스님에게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간다고 합니다만, 그럼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하고 물었을 때, 조주 스님이 “나는 청주에 있을 때 베 적삼 하나를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었지” 라고 답한 것이 바로 이 공안이다.
이와 관련, 만공 스님은 “가야산에 적멸궁만 있다”라는 대답을 통해, 진여자성(하나)이 가야산이란 적멸궁 즉, 만법에 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一)는 진여인 마음의 본체를 가리킨다. 만법은 일심(一心)의 인식과 판단으로 성립되는 심법(心法)이기에, 만법은 근원적인 깨달음의 경지인 일심으로 되돌아가고, 일심은 다시 만법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이는 〈화엄경〉 등 대승경전의 “삼계는 오직 마음(三界唯一心)이며, 마음 밖에 별다른 법이 없다(心外無別法)”, “일체의 모든 것은 마음이 조작한 것이다(一切唯心造)”, “만법은 일심(一心)이며 일심이 만법이다”는 가르침과 맥을 같이 한다. 즉 만법은 심법(心法)인 것이다.
이와 관련 승조 법사는 <조론>에서 “지인(至人)의 마음은 텅 비고 환하여 형상이 없다. 그리하여 내가 짓지 않은 만물이란 없다(萬物無非我造). 만물과 화합함으로써 자기를 이룬 자는 성인일 뿐이다”고 하였다. <조론>을 해설한 감산 선사는 “만일 삼계의 만법이 마음에서 나타난 것일 뿐임을 요달할 수만 있다면 만법마다 모두가 자기에게로 귀납된다. 이를 성인이 열반을 증득했다고 부른다”라고 하였다.
만법을 버리고 열반을 찾거나, 본래면목을 찾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감산 선사의 ‘만법 그대로가 하나의 진여(萬法一眞)’라고 한 가르침을 깊이 새기면서, 이 공안을 참구해 보자.
김성우 객원기자
2007-07-03 오전 11: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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