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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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내가 없다면 말한 바도 없다
말 잘하는 사람
“졌어요, 졌어. 내가 이긴 줄 알았는데 마음으로 져 보긴 난생 처음이었어요.”
P씨는 자신이 상당히 똑똑한 편이고 특히 말을 잘한다는 자부심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몇 년 전 불교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도 불교사상을 잘 이해해서 논리적으로 말을 잘 하면 불자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교역사, 경전해설서들을 잔뜩 사서 읽고 남들에게 설명해 주며 ‘역시 나는 똑똑하니까 불교공부도 잘 하는거야’하며 만족했다.
어느 날 친구가 자신의 참선지도 선생님을 만나러 가자고 했다. ‘마음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야’라고 하길래 불교가 마음공부지 뭐 따로 있나 하며 한번 재보려는 마음이 들었다.
만나보니 똑똑해 보이지도 않았다. “공부 많이 하신 선생님이시라고요. 좀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는데 도전적인 느낌이 스스로도 느껴졌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란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선생님께 배워야 되겠죠.”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친구가 “선생님, 화내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죠?”하면서 질문하였다. P씨는 기회는 이 때다 싶어서 자신이 얼른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읽었던 불교 책이며 스님들 법어집에서 읽은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친구가 “아니, 이 봐. 난 선생님께 여쭈었는데 자네가 대신 대답하면 어떡하나.” 하고 나무랐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아니, 괜찮습니다. 아주 답을 잘 해 주시고 계시잖아요. 계속해 주세요”하였다.
P씨는 순간 기분이 우쭐해졌다. 그렇게 세 시간 동안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게 되었는데 주로 P씨가 말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가끔 몇 마디만 할 뿐 말을 논리적으로 잘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거 봐, 나처럼 말 잘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자기가 선생이든 뭐든, 내 말을 듣고 느끼는 바가 많을 거야’하며 열심히 떠들었다.
말한 바가 없는 말
마침내 일어나며 P씨는 “오늘 말씀 잘 나눴습니다”하고 인사했다. 순간 선생님의 한마디가 가슴을 찔렀다. “내가 없다면 말한 바도 없지요.”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며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친구는 “너 무아 몰라? 불교의 기본이 내가 없다, 무아잖아”라고 했다. 뭐라고? 앗. P씨는 머리가 멍해졌다고 한다.
함께 보낸 세 시간을 생각해 보니 자기는 내가 말한다는 집착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반면 선생님은 말을 할 때나 듣고 있거나 마음자리가 한 결 같이 텅 빈 느낌이었다. 세 시간이나 말을 나누면서도 마치 아무 일도 안 한 사람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내가 없다? 내가 없으니 말한 것도 들은 것도 없다? 책에서 읽었던 나라는 집착이 없는 상태, 평정심이 바로 이것이구나. 자기는 불교를 머리로 말하고 선생님은 마음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완전 패배, ‘내가 있다’가 ‘내가 없다’에 진 거예요.”
P씨는 그 후로 불교에 대한 책을 읽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 다스리는 공부에 들어갔다. 전에 결코 느껴 본 적이 없는 깊고 고요한 평화를 맛보게 되었다.
“정말 놀라워요. 아무리 말을 잘 해서 누구를 이기고 기분이 좋아도 이런 느낌과 힘을 가져 본 적은 없었어요. 내가 한다는 집착을 놓으니 이렇게 평안해 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 힘듭니다.” 앞으로도 집착 없는 마음으로 행하는 실천을 생활에서 체험해보려고 부지런히 정진할 생각이다.
걸림 없는 마음
아무리 머리로 이해하고 말을 잘 해도 마음으로 실천하는 것에 비할 수는 없다. 나라는 생각이 있다면 반드시 걸림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한다는 생각은 온갖 집착과 사량분별을 일으키며 생사윤회의 업으로 남게 된다. “걸림 없이 살 줄 알라”고 하셨다. 나를 세우지 않는 마음에서 참된 평화와 행복이 피어난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7-06-26 오후 5: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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