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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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공 스님(2)
어느 날 만공(滿空, 1871∼1946) 스님, 혜암 스님, 진성 사미가 함께 배를 타고 간월도의 간월암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배가 물살을 가르며 섬을 향해 움직이자 주변의 작은 섬들이 서서히 지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만공 스님이 옆에 있는 진성 사미에게 물었다.
“배가 가는 것이냐, 섬이 가는 것이냐?” 그러자 진성 사미는 한 걸음 물러나 차수(손을 모으는 것)하고 서 있었다.
그때, 혜암 스님이 말했다.
“스님, 저에게도 물어봐 주십시오.”
“오, 그래. 혜암 수좌. 배가 가는 것인가? 섬이 가는 것인가?”
“배가 가는 것도 아니고 섬이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가는가?”
혜암 스님은 아무 말없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어올렸다.
그러자, 만공 스님은 감동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아, 혜암 수좌, 자네 공부가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가?”
“이렇게 된 지 좀 되었습니다.”
만공 스님과 혜암(惠菴, 1886~1985) 스님의 한 폭의 그림 같은 이 선문답은 육조혜능 스님의 깃발에 대한 선화와 매우 유사하다. 이른바 ‘비풍비번(非風非幡)’ 공안은 혜능 스님이 중국 남쪽의 광주 법성사에 이르렀을 때, 마침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고 대중들이 무엇이 흔들리는 것인가에 대해 왈가왈부(曰可曰否) 하고 있을 때 나온 일화다.
대중의 한 쪽은 ‘깃발이 흔들리는 것이다’고 했고, 한 쪽은 ‘바람이 흔들리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자 혜능 스님이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라고 말하자, 모여 있던 대중이 크게 놀랐다고 한다.
만공-혜암 스님의 문답은 ‘비풍비번’ 공안과 비슷한 스토리의 대화이지만, 더욱 격조가 높다. 즉 구차한 말로 설명을 하지 않고 하나의 즉각적인 동작으로 드러낸 점에서 혜능 스님의 법문을 뛰어넘어 조사의 은혜에 보답했다고 할만한 탁월한 문답이라 할 수 있다.
만공 스님은 뛰어난 두 제자의 공부를 위해 일상 중의 경계를 가지고 “배가 가는 것이냐, 섬이 가는 것이냐?”는 질문을 던졌고, 혜암 스님은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어올리는 것으로 답을 했다. 그렇다면 이 행위가 혜능 스님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는 답과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물론 그 뜻은 다르지 않지만, 혜암 스님은 ‘마음이 갑니다’ 라고 말하지 않고 마음이 바로 보이는 방법(동작)을 대신 썼다.
만약 혜능 스님의 말을 모방해 똑같이 말했다면 앵무새라는 핀잔을 받았을지도 모르고, 말을 내세워 설명했으니 ‘벌써 제2구(句)에 떨어졌느니라’ 라는 만공 스님의 질책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혜암 스님은 볼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란 언어 대신, 아무 말 없이 손수건을 들어올림으로써 마음을 바로 보인 것이다.
이 뜻밖의 행동에 만공 스님은 손수건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때 스님은 제자의 의도를 간파했다. ‘이 손수건을 보는 그 마음이 가는 것입니다’ 라는 혜암의 말없는 말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알아차리고, 제자의 공부를 인정한 것이다.
김성우 객원기자
2007-06-26 오후 5: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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