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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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너그럽게 사세요! 인생은 한 철이에요!
마음의 계발이 진부한 것 같아

불교에서는 물질적인 풍요와 발전이 아닌 마음의 차원이 높아져야만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물질문명이 발전된 이 첨단의 세계에서 마음의 계발이 된다 하면 어떤 변화가 있고 어떤 이익이 있게 되는지요? 과학문명의 발전으로 인간을 복제할 수도 있고 달나라를 여행할 수 있는 이 시기에 마음의 계발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 고루한 것인 양 치부되는 것 같아서 질문 올립니다.
예전에 미국 동남부의 해협, 그 삼각 해역에서 일어났던 일들 여러분, 잘 아시죠? 비행기 사건. 그게 언젠가? 1945년이었는지 언젠지 한번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심성이 계발이 됐다면 그렇게 말려들어갈 리가 없거든요. 물이나 흙이나 지수화풍에 다 생명이 있고 핵이 있고 그렇거든요. 그럼 우리 인간이 전자(前者)에 전자가 그 핵을 보강하고 있는 그것을 알고 현자(現者)가 바로 그것을, 후자와 더불어 전자(前者)·후자(後者), 양자(兩者), 중성으로서 내가 그 핵의 능력을 발휘해서 가지고 있다면 상대에서 끌어 잡아당겨도 내가 그리로 쏠려 들어가질 않아요.
한 가지 더 보강해서 말한다면 내가 이것을 발견해서 이것을 찾고 들어간다면, 즉 말하자면 십오 리, 백오십 리, 백오십 리 안팎으로 첫째 알 수 있고, 팔십 리를 알 수 있고, 백 리를 알 수 있어요. 이것은 숫자 아닌 숫자를 말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기서 어떠한 뭐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여기에서는 스스로 자동적으로 알게 돼 있고 자동적으로 알면 자동적으로 그것은 대기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서 재료가 보강돼 있기 때문에 레이더망도 그대로 보강돼 있어요, 다. 그런 데다 그 능력이 부실하지 않다면 그것을 오히려 빨아들일 수도 있는 문제가 생기고 내 능력이 100% 보강이 되죠. 그런데 내가 빨려들어 간다면 내 힘이 다 그리로 빠져 버리는 거죠.
그 말을 하기 전에, 내가 마음이 밝아지고 계발이 되면 십이존불(十二尊佛)이, 즉 말하자면 ‘즉여별성’이라고 그럴까? 뚜렷한, 그 최고의 밝은 별들을 말하는 겁니다. 그걸 십이존불이라고 해도 좋아요. 그것이 전파가 돼서 바로 나한테 그게 보강이 되거든요. 그럼으로써 그것을 끄는 힘과 끌리지 않는 힘, 주는 힘과 끄는 힘 이것을 다 보강을 해 가지고 있게 된단 얘기죠. 그러나 그뿐이 아니죠. 왜 비행기가 그렇게 말렸는가? 십여 명을 태운 그 아주 일등 기사들이라는데 말입니다. 십여 명씩이나 기사들이 탔는데 왜 그게 없어졌느냐 이겁니다. 그것은 서로 전자(前者)·후자(後者)·현자(現者)가 전부 보강돼서 전부 빨아들이기 때문이거든요, 삼각이니까. 삼삼(三三)은 구(九)거든, 벌써. 숫자적으로 따진다면. 거기서 쪼개고 또 쪼갠다면 수없이 그냥 많아지죠.
그러나 한번 이렇게 생각을 해 보세요. 색경을 여러 개를 놓고 한번 보고 오세요, 앞뒤로 놓고 옆으로도 놓고. 그러면 내가 몇 개가 되나? 그 핵의 힘이 그렇게 퍼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거기에서 이 삼각이라는 것은, 그것도 모두가 자기의 그 보강된 원자·핵·전자 이런 것이 자력, 끌어당기는 힘을, 즉 말하자면 이름 해서 그것도 붙인 거겠죠. 모두가 이렇게 돼 있기 때문에 이 지구도 이렇게 붙어 있겠지만 우리 힘이 그렇게 강하다면 그 거대한 게 다섯 대고 몇 대고 송두리째 없어지진 않았을 겁니다. 당기는 힘이 강하니까. 우리가 지금 공중에 비행기를 타고 가든지 이래 보세요. 만약에 그 바깥에다가 물건 하나를 내던져 보세요. 그 물건이 어떻게 돌아가나. 나침판이 없이 그냥 막 돌아가죠. 그렇게 힘이 세단 말입니다, 빨아 당기는 힘이.
그런데 산에 다니면서도 체험을 해 봤지만 모두 그렇게 용도에 따라서 쓸 수 있는 거가 뭐냐면, 내가 물질이 참 징그럽고 무섭다 하면 그 영(靈) 의식만 가지고 만나거든요, 물질 몸뚱이는 안 만나도. 그래 그게 싫으면, 백 리 안팎, 십 리 안팎만이라도 ‘아이, 우리 모습으론 보지 말자’ 하고 하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건 인간들이 사는 거나 벌레가 사는 거나 새들이 사는 거나 물에서 사는 거나 짐승들이나 다 똑같아요. 우리 사람의 의식으로는 ‘아이고, 구더기가 돼 가지고 더러워서 어떻게 사나.’ 그러죠? 안 그래요? 그러나 구더기 속에 들어가 본다면 구더기는 구더기 나름대로 살 만해요. 우리가 금 보듯이 똥도 그렇게 좋거든요. 그러니까 그 나름대로, 살림살이하는 그 나름대로 용도대로 주어진 그 삶이, 그렇게 그냥 사는 멋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인간으로서는 거기를 다 거쳐 왔기 때문에 만약에 계발이 된다면, 능숙하고 지혜롭고 첨단을 넘어가리만큼 그렇게 무(無)의 세계, 유(有)의 세계를 왕래할 수 있고 자유자재권을 갖는다 이런 겁니다.
그렇다면 무슨 문제가 있느냐, 지금. 옛날에 한국전쟁 났을 때도 접시비행기가 많이 나타났죠. 난 그걸 봤어요. 제가 그때 스물세 살인가 그렇게 됐을 무렵이거든요. 그런데 반짝 반짝 반짝 하면서 말입니다, 그냥 이렇게 낮게 딱 스쳐 가는데 뭐가 파괴가 된 줄 아십니까? 물질이 그냥, 그냥 거기서 파괴가 되는 겁니다. 아마도 그릇 굽는 가마에 들어가서 숨어 있다가 창문으로 내다본 것이 그거거든요. 많은 공부가 됐어요. 그래서 난 이렇게 생각해요. 모든 것이 부처의 스승 아닌 게 없고 또는 모든 것의 부처가 스승 아닌 게 없다고요. 항상 이런 말을 하지만 풀 한 포기도 벌레 한 마리도 그냥 볼 수가 없어요. 모두가 배움에 의해서 그것이 확립되고 조화가 되고 조절이 되고 지혜가 늘어나고 이러니까 그것이 스승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러니 그 모두가 생명들이 있어서 힘들이 강하면, 그 힘이 있다는 거를 입증하는 것은 뭐냐 하면, 그 삼각 해역에서 비행기가 없어졌다는 것도 입증입니다. 벌써 우리보다 앞서 진화된 생물이 있다는 겁니다. 접시비행기가 떠서 그렇게 다니고, 백 마일쯤이든 뭐 고걸 정해서 보진 않았지만 그만큼 파괴가 된다는 것만 해도 벌써 그것은 입증이 되는 겁니다. 우리보다 더 계발이 된 생물이 있구나 하는 걸 말입니다. 이 마음의 도리를 공부하면 꼭 그걸 봐야만 되는 건 아닙니다만 그러면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도 연구가 되고 안에서 일어나는 것도 연구가 되는 거거든요, 양면을 다. 한 쪽으로만 기울어져서 아니 되니까, 현실도 무시해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 버릴 게 없거든요. 결국은 현실로 나오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거죠, 뭐.
그래서 여러분 육체도 당신 게 아니니깐 간수 잘해라 이겁니다. 자식들은 자기 것이 아니라 부모 겁니다, 육신이. 자기 육신을 간수를 잘못하면 그 부모가 아주 고통을 받고 그렇게 애를 쓰거든요. 몸을 간수 잘하는 것도 효도다 이거죠. 자기 몸뚱이라고 함부로 굴려서 부러지거나 뭐 다치거나 또는 병들거나 이런다면 그건 불효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계발을 하는 그만큼 앞으로 불국토가 다가온다는 거, 그리고 정신계의 목전에 도달해 있다 이겁니다, 지금. 정신계가 아니라면 지금 손도 대 볼 수 없으리만큼 앞으로 다가와요, 목전에 있다고. 그러니 인간으로 돼서 얼마나 급한 일입니까? 여러분이 여러분부터 알고 계발하기에 얼마나 급급하냐 이 소립니다. 지금 시대에는 말, 육체 이걸로써 해 나가는 시대가 아닙니다. 몸은 가만히 두고 정신력으로서 마음을 조절하고 들이고 낼 수 있어야만이 스스로서 움죽거리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걸 다 아시기 바랍니다.

유체이탈에 대해서

제게 너무나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낮에 좀 자려고 누워 있다가 ‘일어나야지’ 하면 제가 육신은 땅에 있는데 천정까지 올라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한 번은, ‘일어나야지’ 하면 분명히 내 육신은 그대로 있었는데 내 발을 보는 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 왜 너만 일어났어?’ 그러고 다시 누워서 육신을 다시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 때도 저는 분명히 눈을 감고 있었는데 벽을 보는 그런 게 있었습니다. 그러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요?
그래 그놈은 한두 명이 아닌 가운데 그놈이거든요. 그러니깐 그것이 총 종합된 한 놈의 기둥입니다. 그러니 어디에서 무엇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거기에 끄달리지 말고 속지 마세요. 모두 그놈한테서 화(化)해서 바꿔 가지고 나오는 거니까. 그래서 석존께서도 6년을 고행하실 때 어떠한 문제가 그림자같이 나와도, 화해서 나오고 미녀로 나오고 이래도 그거는 자기한테서 나온 거니까 개의치 않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항복받았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그 과정에 어떠한 문제로 나온다 하더라도 거기서 나온 거니까 속지 마시라 이겁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나고 들고 하는 모든 것이 다 그냥 지금도 그렇게 나고 들고 하죠. 여기에 이렇게 앉아서 저 미국으로 다녀온다고 하더라도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오는 것이 바로 빛보다도 더 빠르게 움죽거리는 그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것을 이렇게 나왔다고 딴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너니까!’ 하고 거기다 놓았을 때, 또 그렇게 어디로 나가 봤으면 하지도 말고 들어가 봤으면 하지도 말고 ‘너니까 나를 가르치느라고 그러는 거지.’ 그렇게 하고 말입니다. 이게 어디라도 갈 데가 있어야, 가게끔 정립이 돼야 아주 거침없이 그냥 갈 수 있는 거지, 가게끔 정립이 되지 않았는데 괜히 당신 마음이 그걸 가지고 농락한다면 그건 안 되는 겁니다. 그냥 모든 건 거기서 나온 거니까 거기서 해결하고, 또 나쁜 거는 좋게 해결을 하고 또 안 되는 거는 되게 하는 거고, 또 된 거는 감사하게 놓고, 바꿔서 나오는 거라도 걸리지 말고 그것이 한 군데서 나오는 거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그러하니까. 일체가 다 한 군데서 나오지 두 군데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악도 선도 한 군데서 나오지 두 군데서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악한 것이 그 구멍에서 나올진댄 좋은 걸로 바꿔서 나올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두 구멍이 아니라 한 구멍에서 나오는 거니까 악도 선도 맘대로 마음으로 바꿀 수가 있는 거죠. 그리고 당신이 있으니까 모든 게 있는 거지 없다면 없는 겁니다. 모두가 당신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그 놈이 바로 나의 근원처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을 그대로 믿고서는 그 자리에 다시 놓고 열심히 생활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천도재를 지내야 하는지?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20여 년이 훨씬 넘었는데, 작년쯤부터 어느 날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막 야단을 하고, 또 어느 날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또 자꾸 보이고, 그러다 어느 날은 두 분이 다 돌아가셨다고 꿈에 그럽니다. 그런 일들이 지금 15년 가까이 자주 꿈꿔져서 자꾸 관하는데도 해결이 나질 않습니다. 재사를 지내야 해결이 날는지요?
댁이 형성되기 전은, 바로 전에 살던 자기 조상이죠. 그것은 아버지(父)가 되죠. 그리고 지금 사는 모습으로서의 당신은 바로 자(子)가 되죠. 그렇기 때문에 그 뜻을 가르치기 위해서 아버지가 죽었다고 한 겁니다. 내가 항상 ‘죽어야 너를 본다’ 이러죠? 그럼 그거를 한번 바꿔 생각을 해 보세요. ‘내가 만약에 공한 도리를 알면 죽은 것이다’라는 거요. 또 어머니가 죽었다 이랬죠? 어머니가 죽은 거는, 하늘과 땅이 전체가 죽어야 되거든요. 그래야 자기가 생(生)하죠. 그런데 또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이 다 돌아가셨다고 그런다 그랬죠? 다 돌아가셨으니까 천(天)·지(地)·인(人)이 그대로 다 죽었으니 자기는 살아날 가망이, 새싹이 또 나온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자기 마음의 문이 좀 열린다 이 소리죠, 그게.
그걸 왜 부모에다 들이대고 뭐가 안돼도 조상의 탓으로 자꾸 돌리세요? 자기 조상의 탓이에요. 그러니까 자기 조상은 자기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부모의 모습으로 화해서 보여 주면서 그렇게 하는 거죠. 그러니까 생시도 꿈이고 꿈도 생시거든요. 그래서 지금 가르치는 것도 꿈이요, 꿈에 가르치는 것도 꿈이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꿈이다 생시다 할 거 없이 그런 꿈이 꿔지면 재사 지낼 걱정 하지 말고요, ‘아하! 이게 나의 채찍이로구나. 아, 이제 두 분 다, 자기와 자기가 다 죽었으니까, 둘 아니게 죽었으니까 문이 좀 열리게 되나 보다.’ 하고, ‘아휴! 참 감사하구나!’ 하고 감사하게 생각을 해야죠.

마음 편안하게만 살면 되는지?

예전에 교수 임용 건으로 찾아뵈었을 때 제 딴에는 분명히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되지 않아서 솔직히 처음에는 스님을 원망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아상과 아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그러한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스님, 이렇게 모든 것을 내 근본에 맡겨 놓고 편하게만 살아가면 되는 것인지요?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누구나가 다 먹고 살기 위해서 애쓰겠죠. 그런데 댁이 교수 자리가 나서지를 않아서 참 힘들다고 그랬죠? 그거를 더퍽 부처님께서 해 줬어 봐요. 댁이 지금 샛눈이라도 떠 갈 수 있다고 말을 하겠나.
하여튼 사람마다 먹고살기 위해서 그러겠지만 그렇게 극치적으로 그냥 안달복달하면서 그렇게 살지 마세요, 모두. 좀 너그럽게 하시고요. 인생이 한 철이에요, 한 철! 우리가 인생 한 철을 그냥 아주 급급하게 살죠.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것과 같이, 또 망망대해에 배 띄워 놓은 것과 같이 사는데, 그렇게 급급하게 살지 마시고 망망대해에 가다가 빠져 죽든, 살얼음판을 가다가 미끄러져서 엎어지든 젖혀지든, 그런 거 상관할 것 없이 자기는 그냥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으니까 주인이 알아서 다 하겠지 하고, 몽땅 그냥 맡기고 편리하게 놓으세요, 그냥.
그저 라면 한 그릇 먹으나 밥 한 그릇을 먹으나 하루 살기는 마찬가지예요. 내가 항상 그래요, 밥을 한 그릇 떠다 주나 눌은밥을 반 그릇 갖다 주나 나 먹기는 똑 마찬가지예요. 뭐, 그거 별다른 거 없어요. 더 좋은 거 해 먹자, 더 좀 맛있는 거 해 먹자 이러는 마음이 파란을 일으켜요. 그냥 생기면 생긴 대로, 우리 집에 들어왔으면 들어온 대로, 또 가면 가는 것 잡지도 말고 오는 것 막지도 말고, 생긴 대로 물 흐르는 대로….
물이 뭐라고 그러는 줄 아세요? ‘만물만생이 다 물속에서 살아도 다 그저 집이 돼 주면서 끝없이 유유하게 흘러가는 나를 보고 살아라. 나 같이만 살면 뭐가 걱정이냐?’ 하죠. 산은 산대로 나 같이만 살라고 그래요, 묵묵히. 그런다면 뭐가 걱정이에요, 한 철 날 놈의 거. 한 철 동안 공부하시는 게 세세생생으로 돌아가고, 세세생생에 돌아가는 그 자리의 권한으로 먼저 가신 위의 조상들도 다 건질 수가 있고 아래의 자식들도 다 건질 수가 있거든요.

너무나 급박하고 답답해요!

처음에 이 마음의 도리를 공부해 나갈 때는 모든 것이 순조롭고 환희로웠는데 지금은 제 앞에 아무것도 비치치 않는 어둠처럼 모든 것이 차단된 느낌입니다. 평탄대로의 길처럼 모든 게 원만했던 사업도 절벽을 만난 듯 가로막히고 연로하시기는 했지만 정정하셨던 어머님도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모든 게 급박하고 옴폐부득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계도 저의 근본에서 나온 것인지요?
세상은 뛰어가는 것도 없고 안 뛰어가는 것도 없어요. 그냥 뜸뿍뜸뿍 걸어요. 그것이 바로 쉴 사이 없이 돌아가는 이 진리와 같다는 얘기예요. 그 가운데서 우리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항상 아주 철두철미하게 내가 믿는 동시에, 그냥 그대로 활을 쏘면 정면에 쏴야지 설 쐈다가 그쪽에서 오히려 도로 살이 들어오면 내가 맞아 죽어! 그와 똑같아요.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얍삽하고 천차만별로 변질이 되고 변하고 그렇기 때문에 요런 걸 요렇게 생각도 하고, 사람이 착잡하고 괴롭고 고독하고 가난하고 이런다면 별의별 생각이 다 나지만 그렇게 됐을 때에 오히려 공부하기가 쉽다 이겁니다. 그것을 모조리 그냥 놓는 겁니다. 일체 만법을 확보해 돌아갈 수 있는 그 근원에다가, 근원에서 나오는 거니까 근원에다 다 놓는 겁니다. 맡겨 놓는 거다 이겁니다.
그래서 아주 그냥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이 벽을 뚫고 나갈 수도 없고, 요렇게 아주 급박할 때에 내가 공부하기가 쉬운 거예요. 그 급박하게 만들어 놓는 것도, 바로 어떻게 빠져 나갈 구멍이 없이 만들어 놓는 것도 자기 주인공이거든요. 자기가 자기를 공부시키기 위해서, 즉 말하자면 자기하고 자기가 살기 위해서 몸도 만들었는데, 자기가 살기 위해서 또 공부를 하는 거라고요. 공부를 시키는 거라고요. 그러면 빠져 나갈 구멍이 없이 만들어 놓는 거예요. 그럴 때에 어떻게 하나 이겁니다. 그러면 이 색(色)으로만 생각하고 사량으로 생각한다면 당장 죽겠으니까 내가 어떡하든지 빠져나가려고 애를 쓴다고요. 그건 소용없는 겁니다. 벌써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나 그걸 보느라고 그렇게 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사량으로 빠져나가려면 저런 창문이 문인 줄 알고 그냥 나가려고 애를 쓰죠.
그렇게 급박할 때 모든 걸 다 맡겨 놓는 그러한 그것이 바로 내 대로를, 이 벽도 봇장도 다 없이 그냥 확 뚫어 버리는 그러한 공부하는 과정이에요, 옴폐부득 못하게 됐을 때 말입니다. 사람이 가난치 않고 돈 있고, 친구들 많고 아, 내가 그냥 모든 게 풍족한데 뭐가 그렇게 답답해서 고놈의 거를 그렇게 하겠어요? 그러니까 아예 그냥 쪼세요! 진짜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 앞에는 요렇게 그냥 딱 조이게 만들어 놓고, 요렇게 옴폐부득 못하게 해 놨을 때, 요것이 홀랑 껍데기를 벗고서 우주 바깥을 벗고 나가나, 그렇지 않으면 그 껍데길 쓰고 껍데기가 빠져나가려고 애를 쓰나 그걸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참 묘하죠, 모두가 다.
그렇게 되면 언제나 여러분도 자기 자신이 너무나 모든 생활에 짓밟힌 것 같고 세상에서 버림받은 거 같고 그렇지만 이 나의 주인은 떳떳하고 도도하기에 그 자기를 그렇게 유(有)의 법이나 무(無)의 법이나 같이 도도하게 흐르기 위해서 자기를 그렇게 가르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체득을 못하면 ‘아하! 이건 내가 이렇게 되니깐 아이구, 아이구….’ 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안 되죠. ‘아하! 여기서 그러는구나. 그건 당신이 다 알아서 해. 내가 이 자리에서 앉아서 죽든 나가서 죽든 병이 들어 죽든 가난해서 죽든 나한텐 아랑곳없다, 네가 끌고 다니는 거니까. 알아서 해라.’ 하고 놨을 때에 비로소 주인이자 나를 끌고 다니는 시자가 되니, 이 몸뚱이는 시자라 그랬는데 고만 마음이 주인이자 시자거든. 시자이자 주인이고. 하, 이게 둘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배울 때 주인공이라고 했는데, 주인공이 바로 자기 시자이자 주인공이자 부처이자 자유인입니다. 그걸 깊이 한번 생각해 보신다면 이다음에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알 바가 생길 것입니다.
2007-06-21 오전 10: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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