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몽구는 1977년 월간 <대화>지를 통해 등단하여 시집 <십자가의 꿈> <자끄린느 뒤프레와 함께> <개리카를 들으며> 등의 시집을 냈다. 그는 등단부터 현재까지 사실주의 방법을 고수해온 시인이다. 그는 수년전부터 시에 음악을 제재로 가져오거나 구체적 인물을 인유하여 상업적 자본주에 처한 자신의 심정을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사찰 기행의 경험을 시에 자주 등장시키고 있다. 이 시집 3부에 ‘개심사의 까치밥’ 등 11편의 시를 싣고 있으며, 수종사, 정취암, 서산 마애불, 선암사 등의 사찰이나 불교유적 방문 동선을 확인할 수 있다. 시인이 사찰을 찾는 것은 상업 자본주의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고 새롭게 일어설 힘을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가 사찰을 순례하면서 쓴 시편들에서는 자아의 성찰과 함께 더러워진 세상살이를 정화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편편한 아스팔트길 버렸을 때/비로소 겨울 억새에 가려진/암자로 가는 길 드러났다/해발 오백 미터 바위 위에 앉은 /산사로 닿는 지름길이/산등성이에 뱀처럼 걸려있지만/주지 수완 스님은 빠른 길을 버리고/세배나 먼 길로 돌아오라고 한다/
산사의 불빛은 먼 별처럼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산짐승들의 반가운 울음이 들리고서야/절 마당으로 닿는 한 가닥 길이/부끄러운 속살처럼 보일 듯 말듯 드러났다/
지름길 놔두고 굽이굽이 먼데로 에둘러/산사로 닿는 길 닦은 사정을 헤아리기 어렵다가/새벽 예불 때에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미명의 어둠 속에서/지천명 맞은 나는/ 당장 눈앞에 희망의 꾸러미 내놓으라는 /비원 앞에 난감해 하는 부처의 모습이/안쓰럽게 촛불 너머에 어려보였다/새벽 산바람이 어리석은 사람을 일으켰다 - ‘정취암에 가서 4 ’ 전문
초반부에는 정취암으로 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현대 속도문명으로 은유되는 편편한 아스팔트 길을 버렸을 때 탈속으로 은유되는 암자로 가는 길이 드러났다고 한다.
거기에 수완이라는 실명의 스님을 통해 빠른 길을 버리고 먼길로 돌아오라고 했다며 현대의 속도 문명을 지적하고 있다. 2연에서 산사의 불빛이 먼 별처럼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적 경험의 서술이면서 현대와 암자, 속세와 탈속세와의 거리를 암시하고 있다.
화자는 3, 4연에서 지름길, 빠른길이 아닌 먼 길을 에둘러 산사에 간 인식에 이른다. 새벽 예불 때 지천명을 맞은 화자가 부처님에게 당장 눈앞에 ‘희망의 꾸러미’를 내놓라고 하자, 이에 난감해하는 부처님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어리석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세상 만사가 빠르게, 당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창작자의 시작 의도다.
박몽구는 선암사를 다시 찾아가서 동화작가 故 정채봉과의 기억을 되살리기도 한다.
이들은 제비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선암사 낡은 서까래와 단청을 보며 흐린 눈이 맑아졌다고 한다.
몇 년 만에 선암사를 다시 찾았다
한창 알이 패기 시작한 청보리 줄기처럼 긴
산문에서 승선교에 이르는 길 더듬은 끝에
왕벚나무 향기 진동하는 절 마당에 서서
정채봉 선생과 생전에 함께 했던
기억의 갈피를 뒤적거려본다
세 시간 넘게 송광사 뒤쪽으로
조계산 자락에 올라
사람 대신 제비들이 옹기종기 둥지를 틀고
절집의 낡은 서까래며 벗겨진 단청을 보며
우리는 흐린 눈이 맑아지는 순간을 맛보았다
- ‘선암사 왕벚나무 그늘’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