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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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마음 높이’ 맞추기
얼마 전까지 P씨는 아들만 생각하면 뿌듯했다. 공부를 잘 하는 아들이 소위 일류대를 가는 것은 정해놓은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들은 때로는 주말이나 방학에 놀고 싶어 했지만 P씨는 거의 허락한 적이 없다.
“너는 공부를 잘해야 돼. 공부만이 최고다” 하면서 오직 공부만 끊임없이 강요했다. 다행히 성격이 유순한 아들은 힘들어 하면서도 고분고분 엄마의 말을 잘 따라와 주었다. 가끔 잠이 부족하여 힘없이 가방을 들고 나서는 아들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으나 아들을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된다고 믿었다.
주위의 엄마들이 “얼마나 좋으세요. 아들이 그렇게 공부를 잘 하니 정말 부럽네요”할 때는 기분이 날아갈 듯 행복했다.
누구를 만나도 “우리 아들은 전교 상위권에 들어요”하고 자랑하였다. P씨는 마치 자신이 공부를 잘 하고 인생의 성공이 보장된 것처럼 우쭐하고 기뻤다. ‘우리 아들은 정말 효자다’하면서 흐뭇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P씨의 가슴을 무너뜨린 일이 일어났다. 학교 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아들이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불러도 대답이 없어 방에 들어가며 “얘, 지금 몇 신지 아니? 어서 나와야지” 라고 야단쳤다.
그래도 아들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P씨가 이불을 걷자 갑자기 욕설을 퍼부으며 “난 죽고 싶어! 학교에 안가!”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 애가 내 아들이 맞는지 믿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 순간 아들은 과일 칼로 자해를 했고 어떻게 병원에 데려갔는지 악몽과 같았다.
그 후 아들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물론 죽고 싶다고 하면서 밥도 거의 먹지 않기 시작했고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다가가서 무슨 말이라도 하려 하면 생전 해 본적이 없는 욕설을 하거나 자해하려 하기 때문에 놔두는 수밖에 없었다.
P씨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엄마는 공부밖에 몰라. 엄마한테는 내가 아니라 공부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 거야. 나한테는 아무 관심도 없고 내가 얼마나 힘든지도 몰라. 이제 지긋지긋해. 죽고 싶어!”하는 말들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견딜 수가 없어 스님에게 아들 문제를 털어놓았다. 스님은 “보살님 다른 생각 말고 한 가지만 해 보십시오. 지금부터 법당에 가서 아들의 마음이 되어 보십시오. 초등학교 때부터 아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생각하며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아들이 되어 그 마음만 헤아려 보십시오” 라고 하셨다.
법당에서 깊이 마음을 모아 아들의 마음이 되어보았다. 어린 나이 때부터 놀지도 못하고 공부만 하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생각하니 갑가지 눈물이 솟구쳤다.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정말 놀고 싶고 친구들과 장난하고 싶고 더 자고 싶고…. 그럴 때 얼마나 야단쳤던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공부에 짓눌렸다는 말이 맞았다. 몇 시간을 법당에서 한없이 울었다. 왜 한 번도 아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을까, 가슴이 미어졌다.
저녁이 되어 집에 들어간 P씨는 아들 방으로 들어가 말없이 아들을 안고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다. 미안해, 미안해, 얼마나 힘들었니”하는 흐느낌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묵묵히 있던 아들도 같이 울기 시작했다. 함께 붙들고 우는 동안 보살님은 마음의 막혔던 부분이 터지면서 아들에 대해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롭고 깊은 사랑이 흘러나오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P씨는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입장이 되어 보는 둘 아닌 마음이 부족했다. 진정한 사랑은 나의 기준이 아닌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보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도 혹시 나의 기준과 잣대로 주위 사람들을 기대하고 평가하거나 나아가 내 생각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눈높이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둘 아닌 마음의 높이 맞추기가 아닐까.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7-06-19 오후 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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