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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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길은 당나귀를 타고/ 이은봉 | 실천문학사 | 6000원
인간의 다섯가지 욕망, 그 허무함에 대하여

이은봉은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1983년 <삶의 문학>에 평론을 발표하고, 1984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발간한 공동시집에 ‘좋은 세상’ 등 몇 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은봉은 시집 후기에서 “골짜기와 봉우리 사이를 허겁지겁 쫓겨 다니며 살고 있다. 거머리들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어지러운 정글 속, 길을 알고 앞으로 나가본 적이 별로 없다.”고 한다. 살아가기 힘든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은유하고 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정글’ 속에 내던져졌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그는 “조용한 마을로 건너가려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 ‘조용한 마을’에 당도하려면 ‘욕망의 과잉’을 잠재워야 하리라. 그래서 그는 욕망에게 선을 하라고 다그친다.
저고리 벗어라 브래지어 끈 풀어라
앵두알처럼 상큼한 네 입술 깨물어,
메밀묵처럼 쫄깃한 네 귓밥 물어뜯어,
아슬아슬한 소름끼치는 긴장,
너도 맛보아야 하리

속치마 벗어라 팬티 끈 풀어라
포도알처럼 촉촉한 네 젖꼭지로 하여,
아궁이 속처럼 검붉은 네 자궁으로 하여,
신음하는, 몸부림치는 기쁨, 너도 맛보아야 하리

욕망이여 더러는 너도 지겨우리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으리
쪼그라드는 사타구니 굽어보고 싶을 때, 있으리
콧물 훌쩍이며 살비듬처럼
떨어져 내리고 싶을 때, 있으리

끝내 고개 숙이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박달나무 지팡이여 꼬부라진 지팡이
끝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말간 눈물이여
너도 이젠 문드러져가고 있구나
조용히 닳아가고 있구나

욕망이여 너도 그만 禪좀 하거라
눈 감고 한 소식 좀 하거라 더러는 너도
부처님 가운데토막이고 싶을 때, 있으리
그렇구나 네 가슴 속, 치솟는 사랑 좀 보아라 땅 속 깊이, 우쩍우쩍 뿌리내리고 있구나.
- ‘욕망이여 너도 그만 禪좀 하거라’ 전문

인용한 위 시는 1, 2연에서 외적 욕망의 기표들인 브래지어, 입술, 귓밥, 속치마, 팬티, 젖꼭지, 자궁 등의 명사와 벗어라, 풀어라, 상큼한, 쫄깃한, 벗어라, 촉촉한, 신음하는, 몸부림치는 등 동사나 형용사 등 용언을 통해 육체적 욕망의 요지경을 드러낸다.
그러나 3, 4연에서는 육체적 욕망의 부질없음을 노쇠한 육체의 심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5연에서 화자는 ‘욕망’에게 “너도 그만 禪좀 하거라”고 다그친다. 욕망은 애착에 의하여 생기며, 우리의 생활은 그 욕망에 기초하여 유지된다. 사실 욕망 없는 삶은 죽은 삶이다. 다섯 가지의 욕망인 성욕, 식욕, 수면욕, 명예욕, 재물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이러한 욕망은 색, 성, 향, 미, 촉의 오경(五境)에 집착하여 일어나는 욕망이다. 이 다섯 가지 욕망에게 화자가 禪좀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 시와 같이 화자가 직접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딱딱한 철근 콘크리트 벽 뚫어 만든 구멍,
대가리 처박고 산 지 십 수년,
마침내 구멍 빠져나와, 지평선 시원한 산언덕, 보리수나무 아래, 가부좌 틀고 앉아 척, 하니 세상 바라본다

바라보며 눈 감는다 눈 감으면 어지러워라
압력밥솥 뒤집어쓴 채,
닭 내장 속같이 지저분한 또 하나의 구멍,
헤매고 있을 뿐!
아수라장 한 가운데.
히쭉히쭉 떠 흐르고 있을 뿐!
대가리 푹 처박은 채. - ‘구멍’ 전문
2007-06-05 오전 11: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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